윤석열이 내세운 중수청 반대 이유 "사회적 강자 처벌 못해"

입력
2021.03.02 20:0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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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갖은 압력에 굽히지 않으니 칼 뺏으려 해"
"검사들 분노… 수사·기소 분리 추세에 역행"?
"국민들 관심 갖고 지켜봐야" 여론에 호소도
靑 "검찰 정해진 절차 따라 의견 내야" 경고

윤석열 검찰총장이 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으로 출근하고 있다. 뉴스1

윤석열 검찰총장이 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으로 출근하고 있다. 뉴스1

윤석열 검찰총장이 2일 여당을 중심으로 속도를 내고 있는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 신설 입법 추진 움직임에 대해 공식적으로 반대 입장을 드러냈다. 윤 총장은 수사·기소 분리가 결국 검찰 폐지이고, 이로 인해 사회적 강자의 범죄를 처벌하지 못하면 국민들 피해만 커진다는 걸 반대 이유로 내세웠다. 수사·기소 분리가 세계적 추세라는 여당 주장에 대해서도 "진실을 왜곡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청와대는 일선 검사들 의견 수렴 과정에서 윤 총장 입장이 알려지자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검찰은 국회를 존중해 정해진 절차에 따라 차분히 의견을 개진해야 할 것"이라고 우회적으로 윤 총장에게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수사·기소 분리하면 기득권 반칙 대응 못해"

윤 총장은 이날 입장문을 통해 "중대범죄 대상 검찰 직접수사권 전면폐지를 전제로 한 중수청 신설 관련 입법 움직임에 대해 우려와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평소 헌법정신과 법치주의에 대한 소신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윤 총장은 1일 취임 후 첫 언론 인터뷰에서 중수청 설치 반대 입장을 이미 자세히 드러냈다. 윤 총장이 전면에 나선 이유는 상반기 안에 중수청 설치 법안을 통과시키겠다는 여당의 입법 드라이브에 위기감을 느낀 행보로 읽힌다.

윤 총장은 국민일보 인터뷰에서 여당 주장대로 수사와 기소가 분리되면 중대범죄 처벌이 어려워질 것이란 점을 설명했다. 그는 "수사는 재판을 준비하는 과정이다. 법 집행을 통한 정의 실현이란 결국 재판을 걸어 사법적 판결을 받아내는 일이다. 수사·기소·공소유지는 별도로 분리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수사와 기소가 분리되면 사회적 강자와 기득권의 반칙 행위에 단호히 대응하지 못하게 된다"고 강조했다.

윤 총장 핵심 참모로 분류되는 검찰 관계자는 이에 대해 "공동체 근간을 흔드는 기득권 세력 범죄는 검사가 직접 수사하고 공소유지하지 않으면 유죄를 받아내는 게 불가능하다"며 "검찰 수사권을 박탈하면 정치·경제·사회 분야에서 힘 있는 사람들에게 치외법권을 제공하는 것이고, 그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간다"고 설명했다.

"수사·기소 분리 추세 주장은 진실 왜곡"

윤 총장은 수사와 기소 분리가 세계적 흐름이라는 여당 주장에 대해서도 "어떤 경우에도 중대범죄에 대한 검찰 수사권을 부정하는 입법례는 없다"며 "이와 같은 주장은 진실을 왜곡했거나 잘 모르고 하는 말"이라고 맞받아쳤다. 그는 "미국과 독일은 검찰의 직접 수사권을 인정하고, 영국은 수사·기소가 융합된 특별수사검찰청(SFO)을 만들었다"고 언급했다.

윤 총장의 주장은 대검 간부들과 일선 검사들 사이에서도 중론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구승모 대검 국제협력담당관은 지난달 26일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에 글을 올려 "미국은 연방검사가 수사개시 결정권한을 갖고 처음부터 긴밀히 협의하면서 수사를 진행한다"고 설명했다. 지방검찰청의 한 검사도 "최근 범죄가 금융 등 전문적이고 복잡한 영역과 결부되는 경우가 많아 초기부터 검찰이 들여다보지 않으면 재판으로 끌고 가기 쉽지 않다"며 "그래서 갈수록 지능화되는 범죄에 대응하기 위해 수사와 기소의 융합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오히려 힘을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직을 걸고 막을 수 있다면 100번이라도"

윤 총장은 여당이 사실상 검찰을 없애려 한다며 반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중수청 설치는 검찰을 흔드는 정도가 아니라 폐지하려는 시도다. 갖은 압력에도 검찰이 굽히지 않으니 칼을 빼앗고 쫓아내려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윤 총장은 그러면서 "종전까지는 검찰에 박수를 쳐왔는데, 근자의 일로 반감을 가졌다고 한다면 할 말이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를 두고 윤 총장과 가까운 수도권 검찰청의 한 간부는 "문재인 정부 초기에 이른바 '적폐 수사'를 할 땐 검찰을 응원하다가,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월성 원전 등 정권에 불편한 수사를 하니까 수사권을 뺏으려 하는 것 아니겠느냐"며 "윤 총장도 여당의 이런 태도에 단호히 대처하겠다고 마음먹은 것 같다"고 밝혔다.

윤 총장은 실제로 "직을 걸고 막을 수 있다면야 100번이라도 걸겠다"는 말까지 하며 정면 대응의지를 드러냈다. 그는 특히 "전국의 검사들이 분노하며 걱정하고 있다. 국민들께서 관심 갖고 지켜봐 주기를 부탁드린다"며 여론에 호소하기도 했다. 그러나 청와대와 여당이 윤 총장의 '언론 플레이'에 불편한 감정을 드러내고 있어, 한동안 중수청 설치와 관련해 여권과 검찰의 대치 국면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상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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