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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적 개인, 30호 가수 이승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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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치 않다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그의 예술적 영토가 훨씬 크다. 그의 독특한 캐릭터와 가창만 눈여겨봤다면, 그건 빙산의 일각만 본 것이다. 그가 음악 경연에서 노래한 커버곡 대신, 그의 자작곡들을 한번 검색해보라. 거기엔 당신이 감탄할 만한 지적이며 문학적인 텍스트들이 가득하다. '싱어게인(jtbc)'에서 우승한 30호 가수 이승윤 이야기다.
이승윤의 골든 타임은 그가 우승곡을 부를 때가 아니라, 자작곡 '게인 주의'를 맛보기로 들려줄 때였다. 나는 이 놀라운 감각의 노래를 듣자마자, TV 앞에서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리고 그가 보여준 느긋함과 자신만만함이 어디서 비롯됐는지 비로소 알게 됐다. 그는 오랫동안 들키지 않고 감춰져 있었던 주머니 속 송곳이었다.
노래는 시작부터 거침없다. "헤이 미스터 갤럭시 / 뭐 그리 혼자 빛나고 있어 / 착각은 말랬지 / 널 우리가 지탱하고 있어 / 별과 별 사이엔 / 어둠이 더 많아." 이건 가사라기보다 질투를 불러일으키는 한 편의 시다. '빛'과 '별'의 상투적 이미지를 휴지통으로 보내버리고 '어둠'에 온전한 주체성을 부여한다. 최근 한국 록의 언어 중 이토록 감각적이며 전복적 언어를 만난 적이 없다. 별이 아무리 잘난 척해도 어둠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통렬한 야유를 보내며, 이 사회의 굳건한 신화인 능력주의에 회심의 일격을 가하고 있다.
이 세계를 구성하는 것은 관계의 총체다. 선민을 위해 나머지가 배경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빛과 어둠을 등가(等價)로 노래하며, 어둠을 주변화하지 않는 이 대목은 단연 발군이다. 그가 경연곡으로 선택한 BTS의 '소우주' 가사와 비교하면 그의 감각이 더욱 도드라진다. BTS는 "별처럼 다 우린 빛나"라며 모든 평범한 삶들을 위로한다. 가사는 따뜻하지만 어떤 익숙함을 넘지 못한다. 이승윤은 이 익숙함을 깨고, 어둠 자체를 중심으로 끌어온다. 그의 통찰은 이런 것이다. 빛나지 않아도 괜찮아. 성공이라고 하는 것들은 다 관계에 기생하며 빚지는 거다. 그러니 잘났다고 까불지 마라.
노래는 이어진다. "게인을 더 높여봐 / 지글대는 주파수가 / 은하수를 다 채울 거야." 게인은 음향 신호의 증폭도를 말하는 용어다. 게인을 높이는 것은 감각의 내압을 높이는 행위다. 그 내압을 높여, 감각을 우주적으로 확장하겠다는 선언이 호기롭다. 이만한 배포를 가진 그를 이 시대 청춘의 적자(嫡子)라 해도 좋겠다.
이승윤의 비범한 감각은 다른 노래에서도 넘쳐난다. 사람을 지운 채 누군가를 사회적 영웅으로 박제하는 세태를 비판하고('영웅 수집가'), 시간의 구체성이 누락된 대강의 서사만을 모아 역사라 이름하는 역사주의에 냉소한다('관광지 사람들'). 그의 관심이 개인에만 머무르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 자신의 예술적 목표는 사회 공식과 통념에 균열을 내, 거기에 새로운 문장을 새기는 것임을 말하고 있다('달이 참 예쁘다고'). 그는 한 인터뷰에서도 늘 비틀어 가사 쓰기를 한다고 했다.
이승윤은 가요계에 오랜만에 등장한 문제적 개인이다. 나는 장차 그의 노래들이 이 사회에 한 권의 교양서가 되리라 믿는다. 그의 팬들은 이승윤이 구축한 텍스트로 들어가, 삶을 숙고하기 시작할 것이다. 부디 그가 벼락처럼 찾아온 명성에 휘둘리지 말고 자유롭길 바란다. 그의 노래 가사처럼. "뭐 그리 혼자 빛나고 있어 / 착각은 말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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