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티는 끝났다"… 지구촌 코로나 청구서는 '증세'

입력
2021.03.02 05:30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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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법인세 19%→23%로 인상 계획
코로나19로 국가 총부채 2조파운드↑
美,? 남미서도 법인·부유세 논의 활발

마스크를 쓴 한 영국 여성이 1월 3차 봉쇄령이 내려진 런던 거리를 걷고 있다. 런던=EPA 연합뉴스

마스크를 쓴 한 영국 여성이 1월 3차 봉쇄령이 내려진 런던 거리를 걷고 있다. 런던=EPA 연합뉴스

파티가 끝나면 청구서가 날아온다. 감염병의 역습이 초래한 경제 추락을 어떻게든 이겨내기 위해 지난해 돈을 마구 뿌렸던 세계 각국이 국민에게 속속 청구서를 내밀고 있다. 구멍이 뻥 뚫린 재정을 메우려 ‘증세’에 팔을 걷어붙인 것이다. 가장 먼저 고지서를 받아 든 부류는 기업과 부유층. 본격적인 백신 접종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세는 다소 꺾였지만, 재원 확보 논의는 이제 막 불이 붙었다.

외신에 따르면 영국 정부는 3일(현지시간) 발표할 예산안에 법인세 및 소득세 인상 계획을 포함할 것으로 알려졌다. 법인세율을 현행 19%에서 2024년까지 23%로 4%포인트 올리는 안이 핵심이다. 정부라면 신중하기 마련인 세금 인상을 과감히 택한 건 나라 빚이 너무 많아져서다. 공격적인 코로나19 부양책 시행으로 지난해 4월부터 올해 1월까지 영국의 국가채무는 무려 2,706억파운드(424조원) 늘었다. 총 부채도 2조파운드(3,099조원)를 넘어섰다. 올해 재정적자 역시 4,000억파운드(약 627조원)까지 치솟을 것으로 예상된다. 리시 수낙 영국 재무장관은 “이미 2,800억파운드 이상을 지출했고, 감염병 종식 후에도 더 많은 돈이 들어가야 한다”면서 증세 당위성을 강조했다. 경제를 되살릴 불씨를 꺼뜨리지 않으면서도 적자는 관리해야 하는, 재정 운용의 묘를 발휘해야 할 때란 의미다.

영국 정부는 ‘온라인 판매세’와 일회성인 ‘초과이익세’를 물리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지난해 매출이 2019년 대비 매출이 51%나 뛴 아마존처럼 코로나19 봉쇄를 틈 타 유례없는 호황을 누린 온라인 기업들에 고통 분담금을 내라는 것이다.

물론 재계의 반발 등을 감안하면 정부 구상대로 증세안이 시행될지는 미지수다. 벌써부터 멜 스트라이드 전 재무장관이 의장을 맡은 재무부 선정위원회는 “지금은 세금 인상에 나설 때가 아니다”라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성급한 증세가 경제회복을 더 더디게 하는, 역효과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많다. 재계는 법인세율이 1%포인트 인상될 때마다 기업 세금 부담이 30억파운드(약 4조7,000억원) 늘어날 것으로 본다.

지난달 영국 런던 소호의 한 상점이 폐점 소식을 알리고 있다. 런던=EPA 연합뉴스

지난달 영국 런던 소호의 한 상점이 폐점 소식을 알리고 있다. 런던=EPA 연합뉴스

만만찮은 반발 여론에도 증세는 글로벌 유행이 될 조짐이 완연하다. 어떤 정부도 재정적자 후폭풍을 해결할 비책이 마땅치 않은 탓이다. 미국은 일찌감치 주(州)별 증세를 예고한 상태다. 뉴욕주는 연 100만달러(11억9,000만원) 이상 고소득자에게 연방정부의 소득세와 별개로 부과하는 8.82% 세율을 3~5년간 한시적으로 인상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보유 재산에 세금을 부과하는 ‘부유세’ 신설도 검토하고 있다. 미네소타주는 연소득 100만달러 이상의 소득세율을 10.85%로 올리려 하고, 주정부 차원에서 소득세를 매기지 않았던 워싱턴주도 최근 2만5,000달러(2,770만원) 이상 자본소득에 7% 세금을 부과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스페인 역시 지난해 10월 대기업과 고소득자 증세 내용이 담긴 예산안을 공개했다. 근로소득이 30만유로(3억9,400만원)를 넘는 고소득자 세율을 45%에서 47%로 올리고 연간 20만유로(2억6,000만원) 이상 자본이익에 대해선 3%포인트씩 세금을 인상하기로 했다. 음료 부가가치세도 10%에서 21%로 인상한다.

미국은 연방정부 차원에서 법인세 인상에도 시동을 걸었다. 전임 정부와 달리 조 바이든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증세를 활용한 소득재분배에 나서야 한다는 입장을 명확히 했다. 법인세율 인상(21→28%), 고소득층에 대한 소득세 최고세율 인상(37→39.6%)을 공약한 만큼 증세가 조만간 정책 테이블 위에 오를 전망이다.

가뜩이나 극심한 ‘빈부 격차’가 코로나19로 더 벌어진 중남미에서도 부유세는 요즘 주된 논쟁 이슈다. 중도좌파 성향의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정부는 전체 납세자의 0.8%인 최상위 부자 1만2,000명에게 이른바 ‘백만장자세’로 불리는 부유세를 부과하기로 했다. 이들에게 돈을 걷어 코로나19 의료장비 구입비로 쓰겠다는 계획이다. 볼리비아에서도 지난해 11월 정권을 잡은 루이스 아르세 대통령이 부유세 도입을 약속한 뒤 의회에서 관련 법안이 통과됐다.

허경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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