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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영화로 꿈을 꿨다, 아들 정이삭 감독은 영화로 꿈을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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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에덴의 동쪽’(1955)과 ‘벤허’(1959) 같은 할리우드 영화를 보며 아메리칸 드림을 꿈꿨다. 한국을 떠나 미국으로 이민을 갔고, 악전고투 끝에 정착했다. 아들은 미국에서 나고 자라 영화라는 꿈을 키웠다. 미국에 착근하려는 가족의 희로애락을 담은 영화로 아메리칸 드림을 이뤘다.
28일 오후(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와 뉴욕에서 동시에 열린 제78회 골든글로브상 시상식에서 최우수외국어영화상을 받은 ‘미나리’(3일 개봉)는 재미동포 2세 정이삭(43)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다. 가슴 벅찬 희망을 품고 미국에 왔다가 삶의 돌부리에 차여 넘어졌다가 일어나기를 반복하며 터전을 다진 이민자들의 삶을 반영한다. ‘미나리’의 수상으로 지난해 ‘기생충’에 이어 한국어 영화가 외국어영화상을 2년 연속 가져가는 진기록이 세워졌다. ‘미나리’는 미국 영화이나 한국어 대사가 50% 이상이라 외국어영화로 분류돼 논란이 됐다.
정 감독은 1978년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에서 태어났다. 농장 경영이 꿈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아칸소주 링컨으로 이주해 정착했다. ‘미나리’의 소년 데이빗(앨런 김)이 정 감독의 어린 시절을 반영한다. 정 감독은 졸업생 중 10~15% 정도가 대학 진학을 하던 시골 고등학교를 마치고 예일대에 입학했다. 생태학을 전공하며 의대 진학을 꿈꿨다. 4학년 때 아시아 영화에 빠지면서 인생 항로를 바꿨다. 유타대 대학원에서 영화를 전공했다. 아내와 자원봉사로 일했던 르완다 난민 캠프의 참담한 현실을 카메라에 담은 ‘문유랑가보’를 2007년 선보이며 감독이 됐다. 제작비가 3만달러에 불과한 ‘문유랑가보’가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되며 재능을 인정받았다. 정 감독의 아버지는 아들이 감독이 되자 매번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언젠가 ‘벤허’를 만들겠구나.”
정 감독은 ‘문유랑가보’ 이후 네 편의 영화를 더 만들었다. 작품성을 인정받았지만 삶은 녹록하지 않았다. 그는 “무책임하게 영화 만들기라는 꿈만 좇고 있다는 생각이 수년 동안 들었다”고 지난해 12월 미국 연예전문 매체 버라이어티에 보도된 봉준호 감독과의 대담에서 밝혔다. 정 감독은 자신이 “농사를 지으며 꿈을 좇는 (‘미나리’의)제이콥과 다르지 않다”고도 생각했다. ‘미나리’의 제이콥(스티븐 연)은 아내 모니카(한예리)와 상의 없이 농장 경영을 위해 갑작스레 아칸소주로 이주해 가족을 곤경에 빠뜨리고 가족 내 갈등의 불씨를 만든다.
영국 영화전문 매체 스크린 인터내셔널에 따르면 2018년초 정 감독은 한때 연출을 그만둘까 생각하기도 했다. “마흔에 이르러 좀 더 책임감 있게 살고, 가족을 돌보기 시작해야만 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때마침 인천 유타대 아시아 캠퍼스에서 교수로 일할 기회가 생겼다. 올해 8세가 된 딸에게 한국을 더 많이 보여주기 위해 한국행을 택했다. 한국으로 향하기 전 이야기 하나가 마음속에서 움텄다. “영화 한 편을 만들 기회가 한 번은 남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미나리’의 시작이었다.
정 감독은 비행기를 타기 전 시나리오를 탈고해 에이전트에게 넘겼다. 에이전트는 할리우드 스타 브래드 피트가 설립한 영화사 플랜B 관계자에게 시나리오를 보여줬고, 영화화 작업이 착착 진행됐다. 2019년 여름 미국 오클라호마주 털사에서 혹서를 뚫으며 25회차 촬영을 해 ‘미나리’를 완성했다. 정 감독은 지난달 12일 할리우드 리포터와의 인터뷰에서 “‘미나리’는 내 모든 걸 표현하고 싶었고 내 뒤에 무엇도 남기지 않은 영화”라며 “내가 영화를 다시 만들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미나리'에서 노인 순자를 연기하며 할리우드에 데뷔한 윤여정은 북미에서만 연기상을 벌써 26개나 받았다. 4월 25일 열릴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시상식 여우조연상 유력 후보로 거론되고 있기도 하다. 순자는 정 감독이 어린 시절 남다른 정서적 유대관계를 형성했던 외할머니를 바탕으로 한 인물이다. 정 감독은 지난달 26일 한국 언론과의 화상 기자회견에서 외할머니를 “6ㆍ25전쟁으로 남편을 잃고선 홀로 가족을 건사한 강한 인물”로 기억했다. 그는 “인천에서 교수로 일할 때 건물 밖으로 서해 갯벌에서 조개를 캐는 노인들의 모습을 보며 할머니를 떠올리곤 했다”고도 했다. 그는 “할머니 역시 갯벌에서 조개 등을 캐 가족 생계를 이었는데 덕분에 내가 이렇게 공부를 하고 이 자리에 있구나 생각이 들곤 했다”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미나리’는 골든글로브상 외국어영화상을 거머쥐며 오스카 수상 가능성이 더 커졌다. ‘미나리’는 작품상과 감독상 등 주요 부문 유력 후보로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선댄스영화제 미국 영화 부문 심사위원대상 등 이미 받은 상만 75개다. 차기작이 정해지기도 했다. 정 감독은 일본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의 할리우드 실사 영화를 연출할 예정이다. 가족의 사연이 영화 인생의 도약대를 마련해준 셈이다. 하지만 정 감독은 정작 가족에게 ‘미나리’를 보여주는 것은 “첫 상영보다 두려운 일이었다”고 한다. 자택에 있던 그가 골든글로브상을 수상하자 딸이 품에 뛰어들며 "(수상을 바라며) 내가 기도했어"라고 외쳤다. 정 감독은 "제 딸이 제가 이 영화를 만든 가장 큰 이유"라며 감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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