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집은 ‘사고 파는 것’이기 전에 ‘삶을 사는 곳’입니다. 집에 맞춘 삶을 살고 있지는 않나요? 삶에, 또한 사람에 맞춰 지은 전국의 집을 찾아 소개하는 기획을 수요일 격주로 <한국일보> 에 연재합니다. 한국일보>
아파트는 한시도 가만있지 못하고 뛰놀고 싶은 아이들의 본능적 욕구를 억압한다.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을 따라 연신 ‘뛰지 마’를 연발해야 하는 부모의 양육권도 함께 침해당한다. 한참 뛰어노는 어린 아들 셋(11세ㆍ9세ㆍ6세)을 기르는 장원영(46)·이욱현(41)씨 부부는 잃어버린 욕구와 권리를 되찾기 위해 지난해 5월 아파트를 떠나 경기 용인시 죽전동에 2층짜리 단독주택(연면적 177.70㎡ㆍ54평)을 지었다.
아래 위, 좌우로 나눈 집
인근 아파트 고층에 살았던 부부는 아이가 셋이 되면서 매일같이 “뛰지 마”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아래에 다른 사람의 삶의 공간이 있다는 생각은 자연스레 가족의 삶을 제약했고, 움츠러들게 했다. 부부는 “애들이 조금이라도 뛰면 주의를 줬고, 뛰지 않을 때조차 뛸까 봐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며 “아이들도 힘들었겠지만, 늘 불안하고 신경이 쓰여 저희 부부도 예민해졌다”고 말했다.
3년 전 우연히 멀지 않은 곳에 살던 아파트값과 비슷한 가격의 땅(대지면적 144.20㎡)을 발견했다. 남편 장씨는 “막연히 생각만 하고 부동산 사이트에 한번 들어가봤는데 마침 이 땅을 분양하고 있었다”며 “땅을 보고 난 뒤부터는 이미 머릿속에서 나만의 집을 짓기 시작했다”고 했다. 하지만 아내는 마뜩잖았다. “아파트가 불편해도 친한 이웃들이 많았고, 아이들도 다니던 학교와 친구들이 있어 살던 곳을 쉽게 떠나기가 어려웠어요. 집 짓는 것도 부담스러워서 처음엔 반대했지만 남편이 머릿속으로 집을 짓고 있다는 얘기에 하는 수 없이 들어줬죠.”
아파트에 살면서 부부가 가장 아쉬웠던 것은 분리된 공간이었다. 부부는 “다섯 식구가 방 3개인 아파트에 살다 보니 서로 많이 부대꼈다”며 “세 아이가 3층 침대를 둔 방에서 같이 자고, 공부는 거실에서 다 함께 하다 보니 서로 방해가 되고 생활습관이 흐트러지는 등 불편한 게 많았다”고 했다. 부부의 일상도 숨돌릴 틈 없는 육아와 집안일의 반복이었다.
부부의 요구조건은 간단했다. ‘어른과 아이의 분리된 공간’과 ‘세 아이의 방을 포함한 최소 방 4개’. 하지만 셈법은 복잡했다. 설계를 맡은 박정환 건축가(심플렉스건축사사무소 공동대표ㆍ홍익대 건축도시대학 교수)는 “보통은 1층에 주방과 거실을 공용 공간으로 두고, 2층에 가족들의 방을 만든다”며 “하지만 이 집은 건축면적(63.40㎡)에 비해 가족 구성원이 많아 일반적인 구조와는 다른 방식으로 풀어야 했다”고 말했다.
건축가는 공용 공간과 사적 공간을 층으로 분리하는 보통의 방식에서 한걸음 더 나아갔다. 아래 위뿐 아니라 좌우까지 더해 공간을 4등분했다. 아래 위로는 어른과 아이의 공간을 나누고, 좌우로는 공용 공간과 사적 공간을 분리하는 방식이다.
집의 좌측인 공용 공간에는 수직으로 긴 창을 냈다. 주택단지 초입에 들어선 집의 정면에서 보면 박공지붕(펼친 책을 엎어놓은 모양의 지붕형식) 꼭지점을 기준으로 반쪽이 전부 창이다. 남북으로 관통하듯 난 창은 남쪽으로는 채광을 확보하고, 북쪽으로는 녹음이 우거진 전망을 담아낸다. 건축가는 “단독주택의 이점 중 하나가 창을 자유롭게 쓸 수 있다는 점”이라며 “사적 공간은 사생활 보호를 고려해 창을 최소화하고, 공용 공간에서는 창을 크게 내 전망을 확보하면서 공간도 더 넓어 보이도록 했다”고 말했다. 1층 공용 공간은 주방과 커다란 테이블이 있는 식사 공간으로 사용된다. 손님들이 올 때에는 아이들은 2층으로 올려 보내고 어른들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2층 통창 앞으로는 작은 거실이 있다. 낮에는 주로 아이들의 전용 공간으로, 밤에는 가족들이 모이는 거실로 사용된다.
창을 최소화한 사적 공간인 부부와 아이들의 방은 아래 위로 분리했다. 1층 현관 우측에 부부의 방이 있다. 세 아이의 방은 2층으로 올렸다. 평소에 부부는 1층에서 주로 생활하고, 아이들은 2층에 머문다. 부부는 “층이 다르니까 아이들이 2층에서 뭘 하든 1층에 있으면 신경이 안 쓰인다”며 “아파트 평면이었다면 아이들이 뭘 하는지 다 보이니 잔소리를 많이 했는데, 여기서는 아이들도 부모 눈치보지 않고 더 자유롭게 지내는 것 같다”고 했다.
아파트에 없는 계단·다락·마당
분리된 공간을 잇는 것은 집 중앙에 놓인 계단이다. 1층 식당 중앙에 2층으로 올라가는 폭이 좁은 계단을 냈다. 계단은 아이들에게 최적의 놀이터가 됐다. 수시로 세 아이는 계단 칸칸이 앉아 놀거나 몇 칸을 한번에 뛰어오르고, 또 뛰어내린다. 네 발로 기어오르고 한 발을 접고 한 발로 퐁퐁 내려오기도 한다. 계단 왼쪽 벽에는 주방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작은 창도 있다. 세 아이는 참새처럼 창으로 머리를 쏙 내밀고 엄마를 부른다. 건축가는 “기능적인 공간이어서 뒤로 숨길 수도 있었겠지만 분리된 공간을 효율적으로 이어주기 위해 중앙에 배치했다”며 “면적이 좁아 계단 윗부분을 살짝 꺾었는데 오히려 아이들이 각도가 벌어진 공간마저도 잘 사용하고 있는 듯하다”고 설명했다.
지붕 밑에 2층 삼형제 방 위 자투리 공간을 살려 다락도 만들었다. 아이들은 가파른 사다리를 이용해 옆으로도 올라가고 뒤로도 올라간다. 다락에서는 장난감을 갖고 놀거나, 책을 읽는다. 거실이 내려다보이는 창으로 손을 흔들기도 한다. 그러다가도 각자의 방으로 자연스레 흩어진다.
분리된 공간이 생기면서 아이들도 달라졌다. 아이들이 주로 쓰는 2층은 아이들이 돌아가며 청소를 한다. 각자 방뿐 아니라 거실과 화장실도 아이들의 몫으로 남겨놨다. 부부는 “아파트에 살 때는 애들이 치울 때 미숙한 게 보이니깐 결국은 제가 하거나, 간섭을 많이 했다”며 “하지만 여기서는 공간을 분리하니 부모의 눈에 아이들의 실수가 잘 보이지 않고, 아이들이 실수를 해도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부부에게도 작은 재미와 행복이 늘어났다. 아내는 1층 테이블에 앉아 사시사철 바뀌는 창 밖의 가로수를 감상하는 재미에, 남편은 봄이 오면 ‘마당에 무슨 꽃을 심을까’ 하는 행복한 고민에 푹 빠졌다. 지난 한 해 코로나19 확산으로 다섯 식구는 종일 집에 머물렀다. 세 아이는 동시에 이렇게 외쳤다. “엄마, 우리 이사 안 왔으면 어쩔 뻔했어요.” 집 짓기를 반대했던 엄마의 대반전. “제가 가족 중에 이 집을 제일 많이 아껴요. (육아 부담이 줄어든) 제가 이 집의 가장 큰 수혜자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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