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내는 기사
이 찬복 씨는 힘이 세다
이미 가입된 회원입니다.
만 14세 이상만 회원으로 가입하실 수 있습니다.
2월 하순은 이곳 경기 북부도 한 해 농사를 준비하는 시기다. 비록 50평 남짓 작은 텃밭에 과실수 몇 그루가 고작이지만, 일주일에 한 번 겨우 오는지라 나 같은 날라리 농꾼도 게으를 틈이 없다.
3개월 만에 처음으로 농막 가는 길, 마을의 전 이장 이찬복 씨를 만났다. 작은 사과농장을 경영하는데 가지치기를 하러 나왔단다. "이장님, 일 끝나면 잠깐 들르세요. 막걸리나 한잔 하죠." 이 씨와는 몇 해 전 텃밭 보토로 인연을 맺었다. 텃밭을 만들 당시 돌이 많아 흙을 사서 덮기로 했는데 그 일을 담당한 사람이 이 씨였다. 이 씨는 직접 15톤 트럭 20대 분량의 흙을 실어 내 밭에 뿌려주었다.
이듬해 지하수용 모터를 고쳐준 이도 이 씨다. 모터를 연결했는데 지하수가 올라오지 않는다! 농부 흉내조차 어설픈 인간이 모터인들 어찌 다루겠는가. 결국 이 씨한테 연락을 했다. "이장님, 혹시 모터 보시는 분 있을까요? 아무리 해도 물이 안 올라오는데……" "지금 가볼게요." 이 씨는 보자마자 어디가 문제인지 안다. 여기, 여기, 여기, 고무 패킹이 삐져나왔죠? 얼어 터져서 그래요. 그러고는 척척 나사를 풀어 패킹을 제자리에 맞춰준다. 모터 소리도 정상이 되고 물도 잘 나온다. "저기 봐요. 겨울에 물을 빼놓지 않아서 호스도 두 군데 찢어졌어요." "호스를 다 갈아야 하나요?" "찢어진 부분을 잘라내고 철물점에서 15㎜ XL밸브를 사다가 연결하면 될 거예요." "엑셀 뭐요?" "XL밸브. 15㎜ 호스 연결한다고 하면 줄 거예요."
농사, 운전, 농기구 수리, 산야초… 이 씨는 모르는 게 없고 못하는 일이 없다. 아파트에 틀어박혀 번역이나 하고 글줄이나 읽는 나로서는 상상도 못할 능력이다. 그 후 1년간은 툭하면 이장을 괴롭혔다. 산들에 쑥, 냉이, 달래 말고도 먹을 게 많다는 사실을 알려준 것도 이 씨이고, 텃밭에 울타리를 하라고 조언한 것도, 농막을 짓도록 주선한 사람도 이 씨였다. 전선을 건드린다고 소나무 가지를 쳐준 것도 이 씨다.
"이장님은 좋으시겠어요. 뭐든 혼자 힘으로 해결할 수 있으시니." 내가 부러워하자 이 씨는 막걸리부터 한잔 들이킨다. "돈이 없으니 그렇죠. 남는 건 몸하고 시간뿐인걸요." 이 씨는 마침 잘 만났다는 듯 신세 한탄부터 시작한다. "코로나 때문에 사과 판매도 반 토막이고 마을 체험농장도 수입이 하나도 없어요. 정부는 술집에는 돈을 주면서 농촌은 나 몰라라 하네요." 그러고 보니 자영업자 재난지원금 얘기는 있어도 농어촌 관련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곤도 고타로는 '최소한의 밥벌이'에서,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벗어나 밥을 먹고살 수 있는지 실험한다고 논농사를 시작했다는데 기껏 1, 2년의 삶이다. 어쩌면 내가 어설픈 도시농부 흉내에 만족하는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이 씨처럼 몸과 시간을 투자할 자신은 있어도… 그래서 먹고는 살 수 있는 걸까? 평생을 땅과 싸워온 이 찬복 씨도 어렵다는데? 여름 한창 때 슈퍼에 나가 보면 안다. 농부의 땀과 노력이 얼마나 헐값에 거래되는지. 고타로도 노동은 절대 자본을 이길 수 없다고 인정하지 않았던가. 나도 괜한 칭찬을 했다 싶어 애먼 막걸리만 연거푸 들이켠다. 결국 이 씨를 이 땅의 슈퍼맨으로 만든 것도 가난이다. 슈퍼맨이 되었어도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는구나.
신고 사유를 선택해주세요.
작성하신 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로그인 한 후 이용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구독을 취소하시겠습니까?
해당 컨텐츠를 구독/취소 하실수 없습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