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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회용 컵 '잉크 로고' 1㎝만 새겨도 재활용 물건너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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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를 사지 않을 권리]<5>플라스틱 커피컵
기후위기와 쓰레기산에 신음하면서도 왜 우리 사회는 쓸모없는 플라스틱 덩어리를 생산하도록 내버려 두는 걸까요. '제로웨이스트 실험실'은 그 동안 주로 소비자들에게 전가해온 재활용 문제를 생산자 및 정부의 책임 관점에서 접근했습니다.
도시의 거리에서 몇 걸음만 걸어도 즐비하게 보이는 커피전문점. 출근 시간과 점심시간이면 일회용컵을 손에 든 직장인들을 보는 것은 우리의 일상이다. 커피 전문점에서 스터디를 하고, 친구의 생일이면 휴대폰을 이용해 간단히 커피 이용권을 선물로 보낸다. 매년 일회용 플라스틱컵을 25억~33억개가량 사용하는 ‘커피 공화국’답다.
국내에 ‘아메리카노’를 대중화한 커피전문점 스타벅스가 처음 이화여대 인근에 자리잡은 지 올해로 22년. 그러나 재활용 측면에서 일회용컵은 ‘무정부 상태’나 다름없었다. 환경부에 따르면, 일회용컵의 재활용률은 5% 미만일 것으로 추정된다. 사무실과 집, 약속 장소에 수북이 쌓여 있던, 우리의 일상에서 수없이 마주치는 컵 95% 이상이 그냥 묻히거나 소각된다.
매년 수십억개의 일회용컵을 쏟아내면서도 여태 재활용조차 제대로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플라스틱 커피컵의 재질을 통일하고, 잉크로 로고를 그리는 대신 플라스틱 자체를 변형시켜 양각으로 로고를 새기면 해결될 문제지만, 이 간단한 것조차 방관하는 것이 기업과 정부이다.
한국일보 기후대응팀은 한국순환자원유통지원센터(KORA)의 자문을 토대로 커피전문점 등 10곳의 일회용 플라스틱컵을 모아 재활용이 가능할지 평가해봤다. 10개 업체 중 재활용이 가능한 곳은 단 1곳뿐이었다.
서울 중구 한국일보 본사를 중심으로 매출액과 다양성, 인지도를 고려해 커피전문점 4곳(스타벅스ㆍ투썸플레이스ㆍ이디야커피ㆍ블루보틀)과 제과점 2곳(파리바게뜨ㆍ뚜레쥬르), 패스트푸드점 2곳(버거킹ㆍ롯데리아), 기타 음료제조 업체 2곳(공차ㆍ스무디킹)을 골랐다. 모두 체인점을 다수 보유한 대형 프랜차이즈다.
재활용 가능 평가 기준은 KORA의 조언에 따라 2가지 조건을 모두 만족해야 하는 것으로 정했다. △로고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페트(PET) 재질을 사용해야 한다. KORA는 폐기물 회수ㆍ재활용 시스템을 관리감독하는 공익법인이다. 지난해 12월부터 환경부로부터 연구용역을 받아, 재활용이 잘 되는 일회용컵의 기준(표준용기) 마련을 위한 조사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우선 잉크 로고의 유무와 크기를 따져봤다. 플라스틱은 다른 화학물질이 들어가지 않고 투명 상태일 때 재활용이 가장 잘 되는데, 로고의 잉크는 재활용 가치 전체를 망친다. KORA에 따르면, 잉크가 1cm만 들어가더라도 재활용품의 품질이 시장 경쟁력을 갖지 못할 정도로 떨어진다. 현재 재활용 체계에서 로고가 있는 일회용 플라스틱컵은 1kg에 겨우 20원을 받는다고 한다. 잉크를 화학약품으로 지우거나 기계로 잘라내는 방법도 있지만, 제조원가조차 건지기 어려울 정도로 비용이 올라 현실성이 없다.
평가 결과, 대상업체 10곳 중에서는 파리바게뜨를 제외한 9개 업체가 잉크로고를 사용했다. 로고의 평균 크기는 약 27.2㎠. 대부분 자사 로고를 5~20㎠ 크기로 넣는 데 그쳤지만, 컵의 거의 전체를 잉크로 색칠한 업체도 있었다. 컵은 각 업체의 가장 작은 사이즈를 기준으로 모았고, 로고의 크기는 측정의 편의성을 위해 전체 로고를 다 덮는 직사각형 면적으로 계산했다.
스무디킹은 거의 컵 전체를 로고로 뒤덮고 있었다. 약 138㎠를 초록색ㆍ하얀색 잉크로 칠했다. 컵에 인쇄된 문구에는 “환경을 위해 기존의 스티로폼 재질 컵을 재활용 가능한 플라스틱으로 바꿨다”고 적혀 있었다. 그러나 이 컵은 전혀 재활용을 할 수 없다. 버거킹도 컵의 앞뒷면을 흰색과 주황색으로 널찍하게 칠해 무려 약 50㎠를 차지했다.
스타벅스 컵엔 하얀색 로고가 약 23.7㎠(지름 약 5.5cm 원) 크기로 새겨져 있었다. 10개 제품 중 3번째로 컸다. 뒤편엔 검은색으로 음료 제작에 참고하기 위한 레시피 선을 그어뒀다. 또 메뉴를 정확히 표기하기 위해 별도의 스티커를 부착했는데, 잘 떼어졌으나 이 역시 소비자가 시간을 들이지 않으면 재활용을 가로막는 요인이 될 수 있다.
롯데리아는 빨강ㆍ하양ㆍ주황이 섞인 로고와 하얀색 문자도안을 컵 앞뒤로 적어 약 19.5㎠를 차지했다. 다음으로는 이디야가 파란색ㆍ하얀색 문자도안을 컵 앞뒤로 16㎠ 크기로 적었다. 이 뒤로 △공차 12㎠(자주ㆍ하양) △투썸플레이스 5.5㎠(자주ㆍ하양) △뚜레쥬르 5㎠(초록ㆍ하양) △블루보틀 2㎠(파랑) 순이었다.
잉크로고를 아예 쓰지 않은 곳은 파리바게뜨뿐이었다. 파리바게뜨 컵은 본체에 어떤 로고도 표기하지 않았고, 뚜껑 부분에만 회사를 상징하는 대문자 ‘B’를 플라스틱 모양을 변형해 양각 형태로 넣었다. 잉크를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재활용이 가능하다. 이디야의 경우, 상대적으로 판매량이 적은 엑스트라 사이즈(대용량) 음료에 대해서만 이 같은 방법을 사용했다.
재질은 8개 업체가 PET를 사용했다. 대상 업체 10곳 중 6곳이 2018년 PET로 재질을 통일하기로 한 자발적 협약에 참여했으며, PET를 사용하지 않는 공차ㆍ블루보틀은 모두 협약에 참여하지 않은 기업이다.
공차는 폴리프로필렌(PP) 재질을 사용했다. PP는 원래 재활용이 잘 되는 재질이지만, 대부분이 PET를 사용하는 일회용컵에 쓰일 땐 재활용 체계에 혼선을 일으킬 수 있다. 일회용컵이 작고 투명해 재질을 확인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플라스틱은 크기가 크거나 재질이 확실한 것들만 재활용된다. 재활용 업체 직원들이 폐플라스틱을 손수 재질별로 분류하는데, 폐기물에 비해 직원 수가 적어 '확실한 것'만 선별하고 나머지는 버리기 때문이다.
일회용컵은 크기가 작고 투명해 분리배출표시를 알아보기도 힘든데다, 재질마저 제각각이어서 거의 그냥 버려지게 된다. 반면, 투명 PET병은 일회용컵처럼 작고 투명하지만 재질이 통일돼서 재활용률이 높다. KORA는 PET의 재활용성이 좋고 이미 많은 업체가 이 재질을 쓰고 있는 만큼, 일회용컵 역시 PET로 통일돼야 한다고 보고 있다.
공차는 또 뚜껑 대신 비닐을 사용해 용기에 접착하는 ‘실링’ 방식을 택했는데, 비닐의 재질을 별도로 표기하지 않아 어떻게 분리배출해야 할지 알기 어려웠다. 빨대 없이 음료를 마시기도 어려운 구조이며, 몸체만 플라스틱으로 분리하려 하더라도 비닐이 손으로 떼어지지 않아 윗부분을 가위로 잘라내야 했다.
블루보틀은 생분해성 플라스틱의 종류인 폴리락틱애시드(PLA)를 사용했다. 블루보틀에 따르면, 이 PLA는 옥수수 전분을 활용해 만든 것으로 일반 플라스틱보다 빠르게 썩는다고 한다. 블루보틀은 친환경 정책의 일환으로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고 전했다.
블루보틀의 PLA 컵은 미국 플라스틱 업체 '월드 센트릭'에서 제작한 것인데, 특정 분해 시설 하에서만 100% 분해가 가능하다고 설명돼 있다. 산업퇴비 시설에서 가능하다고 하지만, 블루보틀 측도 분해 환경을 정확히 설명하지 못했다.
의도는 좋다고 해도 한국의 재활용 처리체계가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다. KORA 관계자는 "국내엔 PLA를 재활용하는 체계가 없기 때문에 이를 사용하면 재활용을 하지 않고 매립을 하겠다는 것"이라며 "매립 시 100% 분해가 돼야 하는데 실제로 가능할지 확신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또한 일회용컵 재질의 통일을 저해해서 자칫 재활용 체계에 혼선을 줄 수 있는 측면도 있다.
스타벅스는 “로고는 브랜드 마케팅을 위한 수단"이라면서도 "환경 영향을 고려해 초록색이었던 로고를 흰색으로 바꾸고 크기도 줄였다"고 해명했다. 또 "텀블러 이용 고객에게 음료 요금을 할인해 주는 등 친환경 정책을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초록색 잉크나 흰색 잉크나 재활용을 방해하기는 마찬가지이고, 로고 크기를 아무리 줄여도 잉크 로고가 있는 한 재활용은 어렵다.
공차는 “자발적 협약 당시 환경부로부터 참여 요청을 받지 않아 PP 재질 용기를 계속 사용했다"며 "PP는 재활용이 되는 재질”이라고 답했다. PET로 통일하기 위한 자발적 협약에는 21개 업체가 참여했고 환경부가 독려했었다. 스무디킹도 "3년 전 지금의 컵을 도입하던 당시 로고 문제를 인지하지 못했다"며 "올해 상반기 중으로 생분해성 컵을 도입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버거킹은 "본사 가이드라인에 의해 전 세계에서 같은 컵을 쓰고 있다"며 "로고·소재를 고려해 신규 디자인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일회용컵의 재활용 문제는 로고 크기를 약간 바꾸는 것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며 "컵이 매장의 폐플라스틱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만큼 업체들의 적극적인 협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재활용 가능한 일회용컵이 늦어도 올해 상반기에는 도입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내년 6월부터 일회용컵만을 별도로 수거하는 체계가 마련되는데, 지금처럼 컵이 제각각이라면 굳이 비용을 들여 수거한 소득이 없다는 것이다.
환경부는 내년 6월부터 일회용컵 보증금제를 시행한다는 계획이다. 일회용컵에 일정액의 보증금을 부과하고 컵을 반납하면 돌려주는 제도다. 반납은 보증금제를 적용받는 매장이면 어디든 가능해, 스타벅스 컵을 버거킹에 반납해도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다. 정확한 보증금 액수는 정해지지 않았다.
각 매장이 회수한 컵은 '자원순환보증금관리센터'가 전담으로 모아 한꺼번에 재활용할 계획이다. 막대한 사용량을 고려한 특별 감독인 셈이다. 현재 소주병 보증금은 100원가량인데 회수율이 95%를 웃돈다.
문제는 이렇게 컵을 수거해도 로고가 있고 재질이 다르면 지금의 문제가 그대로 반복된다는 것이다. 정미란 환경운동연합 활동가는 "이미 인지도가 있는 기업들이 재활용을 막아가면서까지 컵에 로고를 넣어야 할지 모르겠다”며 “컵홀더에도 로고가 그려져 있는 만큼 컵에서는 로고를 빼도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정부도 지난해 12월에야 표준용기 마련을 위해 연구용역을 발주했지만, 지나치게 한가하다는 비판을 받는다. 일회용컵 재고량을 감안하면 제도 시행 1년 전부터는 표준용기가 도입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실제 이디야는 2019년에 잉크로고가 없는 무인쇄컵을 도입했음에도 “여전히 일부 매장은 로고컵 재고를 사용하고 있을 수 있다”고 응답하고 있다.
환경부는 “재활용성을 고려하여 규제대상 일회용컵을 규격화하기 위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며 "업계의 재고품 소진 등을 고려하여 가능하면 올해 상반기 내에 구체적인 안을 마련하고 업계 의견을 수렴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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