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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수석 사표에 주목하는 이유

입력
2021.02.25 18: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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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수 파문 본질은 대통령 의사 패싱
후반기 대못 박기 위한 강경파의 폭주
신 재신임 여부 文의 제어의지 가늠자

신현수 파문의 본질은 민정수석 패싱이 아니다. 대통령 경시다.

문재인 대통령은 추미애 장관 교체 후 여러 방식으로 법무부-검찰 간 협조를 당부했다. 박범계 신임 장관에게는 ‘너무 나가지 말라’는 뜻을 건넸다. 적대와 배척에서 안정적 관리로의 변화를 시사하는 사인이었다. 박의 첫 인사는 이를 뭉갠 것이다. 대통령과 한 몸인 수석비서관 패싱의 의미도 같다. 그런데도 그의 반발에 민주당 강경파들은 ‘대통령 인사권에 대한 도전’ 딱지를 붙였다. 적반하장이다.

소동 끝 인사는 움찔했으나 집권세력 전반의 분위기가 바뀐 건 분명해졌다. 대통령이 사실상 검찰 개혁 속도조절을 당부한 이튿날, 어깃장 놓듯 중대범죄수사청을 밀어붙이자는 당내 공청회가 열렸다. 추는 대놓고 속도조절론을 비판했다. 반응의 속도와 강도로 보아 이 정도면 불경을 넘은 항명이다. 심지어 친문의 적자로 공인돼 온 김경수 지사마저 ‘대통령 말이라고 꼭 따를 필요는 없다’고 거든 것은 무엇보다 놀라웠다.

얼마 전 사면론도 같은 맥락이다. 대통령이 오랜 고심 끝에 내놓은 모처럼의 화해 제안이 진영 내부로부터 단칼에 면박당했다. 이런 일들이 부쩍 잦아졌다. 버릇없어진 아이들에게 수염을 쥐어 잡혀도 “허허” 할 수밖에 없는, 힘 빠진 노인의 어색한 표정이 겹쳐 보인다.

뜻밖인 건 열성 지지자들이다. 무오류의 절대자처럼 받들어 온 주군이 무시당하는데도 분노하는 기색이 별로 없다. 뻔한 데도 갈라치기 말라고 바깥에다 억지나 부리는 정도다. 오히려 검찰 장악 작업을 확실히 마무리하라고 항명자들을 응원하는 분위기다. 유난스러운 결사옹위 문화를 감안하면 그저 생경할 따름이다.

물론 민주체제에서 이견이 나쁜 건 아니다. 더욱이 정권 말기면 집권세력 내 분화는 늘 일어나는 현상이다. 원래 철학 없는 정치인들은 초반에는 대통령 인기에 기대고, 후반에는 인기 떨어진 대통령과 거리 두기로 생명 연장을 모색하는 법이다. 그럼에도 지금이 더 우려스러운 것은 과거 정권 때와는 전혀 다른 양상 때문이다.

집권 말기의 분화는 미래권력 측이 반대쪽 의견을 좀 더 수렴해 가는 방식으로 이뤄지는 게 통상적이다. 곧 다가올 선거에서 캐스팅보트를 쥔 온건층을 의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러다간 표 다 잃게 생겼다고 아예 딴살림 차려 나가버린 노무현 정권 때도 마찬가지였다. 지금은 정반대다. 대통령은 확실히 대립의 완화와 포용 쪽으로 방향을 틀려 하는데 당 주류는 더 강경한 노선으로 치닫는다. 입법권 장악의 대단한 힘을 확인한 만큼 이참에 확실하게 대못을 박아 두겠다는, 자못 스산한 결기마저 느껴진다.

중수청 문제도 그렇다. 문 대통령의 검찰독립 공약은 공수처와 검경 수사권 조정까지였다. 이 목표는 얼추 달성됐다. 그런데 말 타면 고삐 잡히고 싶다던가. 상황은 아예 검찰 해체로 가고 있다. 민주당에 장악되지 않는 검찰 때리기 아니고는 설명할 방도가 없다. 의도가 개입된 개혁이 성공한 예는 없다. 장담컨대 훗날 정권이 어디로 가든 정치 개입 논란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무차별적으로 대상을 확대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나라 곳간 걱정하는 이를 나쁜 사람 취급하는 행태들도 마찬가지다.

바뀐 입장이 어색하지만 현재로선 문 대통령이라도 제어하지 않으면 이 폭주를 어찌할 방법이 없다. 그나마 그게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취임 약속을 늦게라도 되살리는 길이자, 대선 총선에서 현 정권에 표를 주지 않은 절반 이상의 국민을 끝내 배제하지 않는 길이다.

지금 문 대통령의 신 수석 재신임 여부를 예의 주시하는 이유다.





이준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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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희한국일보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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