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 시장이 꿈틀거린다

입력
2021.02.26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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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EU 탄소배출권 사상 최고가 기록
이상 한파·투기 자본, 가격 상승 부추겨
탄소중립 정책 강화, 탄소시장 무한 성장

유럽 최대 전기 가스 회사인 독일 RWE 석탄발전소 냉각탑에서 수증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유럽 최대 전기 가스 회사인 독일 RWE 석탄발전소 냉각탑에서 수증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친(親)환경은 돈이 된다. 그리고 점점 비싸진다. 대표 사례가 바로 ‘탄소배출권’이다. 올해 들어 유럽연합(EU) 탄소배출권 가격이 가파른 오름세를 이어가면서 투자자들의 관심이 폭주하고 있다. 친환경이 이제 단순한 이념적 선언을 넘어서 실체적 가치를 지닌 ‘자산’으로 평가받게 된 것이다.

23일(현지시간) 영국 경제주간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EU의 탄소배출권은 12일 톤당 40유로(약 5만원)에 거래되며 사상 최고치를 찍었다. 지난해 11월과 비교해 무려 60% 급등했다. 지난해 12월 EU가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1990년 대비 기존 40%에서 55%로 상향 조정한 데 이어, 기후변화 대응을 주요 국정과제로 선언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취임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에 속도가 붙고 경기회복 기대감이 커지면서 시장에 활기가 돌고 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기후변화 또한 가격 상승에 한 몫했다. 올 초 이례적인 북극발(發) 한파가 유럽 전역을 덮치면서 난방 수요가 급증했고, 전력회사들의 탄소배출권 구매가 늘었다. 게다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 재조정에 따라 지난달 EU의 배출권 경매가 중단돼 공급이 줄었다. 공급과 수요가 반비례하면 가격은 치솟기 마련이다.

돈 냄새를 맡은 금융회사와 헤지펀드도 움직였다. 탄소를 배출하는 업종도 아니면서 탄소배출권을 사서 어디에 쓸까 싶지만, 전력회사를 대신해 배출권을 거래하거나 옵션ㆍ선물거래에 투자해 쏠쏠한 수익을 거뒀다. 당연히 투기자본 유입은 배출권 가격 상승을 부추겼다. 현재 전 세계 230개 투자펀드가 EU 탄소배출권과 관계된 선물 상품을 운용하고 있는데, 2019년 말 140개보다 대폭 늘었다. 아직 투자펀드가 선물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에 불과하지만 성장세가 두드러진다. 가격 상승을 기대하고 매수해 보유한(롱 포지션) 물량도 지난해 11월 이후 두 배나 늘었다.

전문가들은 EU의 온실가스 감축 확대가 시장에서 거래되는 배출권 물량을 더 줄이고 가격은 더 끌어올릴 것으로 보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현재의 두 배 수준인 톤당 80유로(약 12만원) 수준까지 올라갈 거라는 전망도 나온다. 심지어 헤지펀드 앙듀랑 캐피털은 “이르면 올해 말 톤당 100달러(약 14만원)에 도달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2018년에도 EU가 탄소배출권 거래시장에 쌓인 잉여물량을 흡수하기 위해 배출권 비축제도를 도입하면서 공급이 줄어들자 가격이 1년 사이 3배나 뛰었던 전례도 있다.

지난해 국제 탄소배출권 시장 규모는 2,290억유로(약 310조)로, 2017년 대비 5배나 커졌다. 그 중 90%를 EU가 차지했다. 성장 가능성도 여전히 무한하다. 영국 에너지투자회자 노스랜드 어드바이저는 투자자들이 탄소배출권 거래를 ESG(환경ㆍ사회ㆍ지배구조) 투자로 인식하기 시작하면 더 많은 자본이 시장에 몰릴 것이라고 분석했다. EU가 2023년 탄소 과다배출국 제품에 탄소국경세를 부과하기로 한 것도 호재다. EU와 영국, 미국 등 서로 다른 탄소배출권 거래시장이 서로 연결되면서 시장 규모 역시 키울 수 있다. EU도 한국처럼 배출권 구매 부담으로 국외로 유출될 위험이 있는 업종에 배출권을 무상으로 제공하고 있는데, 2030년까지 ‘무상할당’ 업종 수를 175개에서 50여개로 축소할 계획이다. 매체는 “더 많은 업종이 탄소배출권 시장에 나오면 더 많은 자본이 시장에 유입되고 더 높은 가격이 형성될 수 있다”고 예상했다.

김표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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