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세상 떠난 중학생이 남긴 글

입력
2021.02.25 04:30
수정
2021.02.25 11:25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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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2011년 대구 학교폭력 피해 중학생이 극단적 선택을 하기 7시간 전 엘리베이터 안에 앉아 있는 사진과 유서가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와 관심을 받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2011년 대구 학교폭력 피해 중학생이 극단적 선택을 하기 7시간 전 엘리베이터 안에 앉아 있는 사진과 유서가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와 관심을 받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매일 남몰래 울고 제가 한 짓도 아닌데 억울하게 꾸중 듣고 매일 맞던 시절을 끝내는 대신 가족들을 볼 수 없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눈물이 앞을 가리네요. 제가 없다고 슬퍼하시거나 저처럼 죽지 마세요. 저의 가족들이 슬프다면 저도 슬플 거예요. 부디 제가 없어도 행복하길 빌게요. 우리 가족을 너무 사랑하는 막내 올림."

며칠 전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10년 전 극단적 선택을 했던 중학생의 유서가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었다. 또래 학생들로부터 1년 동안 심한 폭력과 따돌림을 당하던 열세 살 학생이 가족에게 남긴 4장짜리 글이었다. 자신을 때리고 괴롭힌 또래들이 잘못을 저질렀음에도 자신이 했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는 부분에서 가슴이 먹먹해졌다.

최근 인기 배구 선수들이 과거 학생 시절 함께 운동했던 학생들을 때리고 괴롭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학교 폭력이 또 한번 이슈로 떠올랐다. 특히 프로 스포츠 선수를 비롯해 배우, 가수의 이름이 입길에 오르내리면서 뉴스들이 쏟아지고 있다.

문제는 "누가 때렸대" "누구도 가담했대" 처럼 가해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점이다. 일부 팬들은 "설마 때렸을까" "왜 지금 나왔는지 의심스러워" 같은 의심까지 한다. 사람들의 반응도 '가해자의 또 다른 과거 파헤치기' 나 '진실 공방'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

물론 사실 관계를 따져야 한다. 폭력을 행사하지 않았는데도 비판 받는 억울함은 없어야 한다. 피해자라 주장했던 이들이 뒤늦게 "사실이 아니다"며 말을 뒤집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이 이어진다면 연예인 스캔들처럼 "그런 일이 있었지"라는 식으로 흐지부지 되고 마는 것은 아닐까 걱정스럽다.

많이 늦었지만 고칠 것은 반드시 고쳐야 한다. 무엇보다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진심 어린 사과와 용서를 구해야 할 것이다. 정부와 관련 단체는 학교 폭력 가해자를 대상으로 처벌이 엄중하게 이뤄지게 해야 한다. 제도를 새로 만들고 그에 따라 해당 분야 전체가 당장 큰 피해를 입더라도 자신의 잘못은 남이 아닌 결국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메시지를 분명히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앞서 말한 중학생의 유서와 엘리베이터 안에서 눈물 흘리던 모습이 공개된 뒤 온 국민이 슬퍼했고 분노했다. 그리고 정부는 학교폭력 태스크포스(TF)를 꾸렸고, 국회는 학교폭력예방법을 개정했다. 학교폭력이 일어나면 위원회를 열어 가해자를 처벌하고, 학교전담경찰관을 배치하도록 한 것이 이때부터였다.

비록 부족하지만 이런 법과 제도는 나름의 역할을 해왔고 평가받아야 한다. 대신 이참에 다시 한번 점검해서 현실이 제대로 반영되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단체 운동하다 보면 그럴 수 있지" "그때는 팀 실력 키우려면 종종 체벌이 필요하기도 했어"는 식의 감싸기를 멈춰야 한다.

위로와 공감이 필요한 것은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다. 피해자들은 과거 일을 꺼내면서 "이건 아니지 않느냐"라는 말을 빠뜨리지 않는다. 그들은 폭력을 당한 이후 그 고통을 고스란히 몸과 마음에 담고 살아왔노라고 했다.

사회는 자신의 아픈 과거를 어렵게 꺼낸 피해자들의 용기에 작은 위로가 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10년 전 그 중학생이 남긴 마지막 말은 더 이상 존재해서는 안 된다.

"제가 그러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라는 걸 밝혔으니 여한이 없어요."

박상준 이슈365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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