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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 있는 판결이 정답은 아니다

입력
2021.02.24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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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 모습1. 오대근 기자

지난 4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 모습1. 오대근 기자

2014년 2월 서울고법에서 내린 판결은 ‘잠시’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눈물을 닦아줬다. 쌍용차 대량해고 사태로 해직된 노동자 153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해고무효확인 소송에서 1심 판결을 뒤집고 노동자 손을 들어준 것이다. 예상을 깬 판결에 해고 노동자들은 눈물을 흘렸고 박수를 쳤다. 재판부는 이례적으로 “마지막 인내의 시간이 그리 길지 않기를 바란다”며 위로의 말까지 건넸다. ‘긴박한 경영상 이유가 있었다’는 철옹성 같은 사측 논리를 깬 재판부의 용기에 찬사가 쏟아졌다.

그러나 해고 노동자들의 기쁨은 길지 못했다. 9개월 후 대법원은 긴박한 경영상 이유를 받아들여 다시 회사 측 손을 들어줬고, 판결은 이후 그대로 확정됐다. 사법부가 사회적 약자를 외면했다는 비판이 잇따랐지만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비슷한 경우는 또 있었다. 2008년 3월 서울중앙지법은 사내 비리를 고발한 뒤 ‘왕따’를 당하다 해고된 정국정씨에게 ‘잠시’ 위안이 되는 판결을 했다. 정씨가 회사를 상대로 낸 고소 사건에 대해 무혐의 처분한 검사들에게 소송을 제기했는데, 법원이 ‘뜻밖에도’ 정씨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다. 판사는 검찰 결정이 합리성을 결여한 위법한 판단이므로 정씨에게 1,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검사 고유 권한인 불기소 처분 결정에 대해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첫 판결로 유사소송이 잇따를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검사들 횡포에 억울함을 호소했던 정씨는 그날 하루 종일 눈물을 훔쳤다고 한다.

하지만 정씨의 기쁨도 거기까지였다. 9개월 뒤 판결은 뒤집어졌고, 법원은 끝내 정씨 눈물을 닦아주지 않았다. 검사의 불기소 처분이 도저히 수긍 못할 정도는 아니라는 게 법원 판단이었다.

어렵게 내린 판결을 손쉽게 뒤집어버린 판사들은 욕을 먹었지만, 욕한다고 세상이 바뀌지는 않았다. 약자 입장을 배려한 용기 있는 결정과 획기적 판결은 잠시 눈물을 쏟게 하고 응어리를 도려냈을 뿐이다. 양손으로 스프링을 최대한 잡아당길 순 있지만, 그 상태를 계속 유지할 순 없다. 힘을 빼는 순간 제자리로 돌아가게 마련이다.

쌍용차 해고 노동자도 정씨도 이제는 알았을 것이다. 법률 문구는 시대에 뒤떨어질 수밖에 없고, 그 문구에 따라 판단하는 판사는 기본적으로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는 걸 말이다. 아무리 진보적인 판사도 판결할 때는 진보적일 수가 없다. 사회적 약자의 눈물을 닦아주려면 정해진 틀을 벗어나야 하지만, 그런 용기 있는 결정에만 기대선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

쌍용차 해고 노동자와 정씨는 이런 말도 들어봤을 것이다. 상식적이지 않은 결정과 판결을 해도 판사는 늘 할 말이 있다. “법이 이런 걸 어쩌란 말인가. 판결이 상식적이지 않다고 탓하기 전에 법을 잘못 만든 국회를 탓해야 한다.”

그렇다. 획기적 판결을 갈망하고 용기 있는 판결에 여전히 찬사를 보내고 있다면 아직 갈 길이 멀다는 뜻이다. 한두 사람의 용기만으론 세상을 바꾸지 못하기 때문이다. 눈물을 쏟게 하는 판결이 이례적이란 평가를 받지 않으려면 제대로 판결하기 전에 제대로 법을 고치고 제대로 법을 만들어야 한다. 입법의 값어치는 결코 사법보다 떨어지지 않는다. 요즘처럼 사법부 신뢰가 땅에 떨어졌을 때는 더욱 그렇다.


강철원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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