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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명조끼 입으려는 찰나 전복" 극적 생환 선원이 전한 사고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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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경주 감포항 해상에서 뒤집힌 배 안에 갇혔다가 40시간 만에 극적 구조된 선원 류모(55)씨는 침몰될 당시에도 동생뻘인 외국인 선원들을 먼저 챙겼다. 그는 배가 심하게 요동치는 와중에도 취사장에 모여 있던 베트남 선원 3명과 중국동포 선원 1명에게 다가가 직접 구명조끼를 입히고 탈출을 지시했다.
류씨는 해경 조사에서 "선장은 기울어진 배를 어떻게든 바로 세워보려고 조타실에 있었다"며 "마구 흔들리는 배 안에서 벌벌 떠는 외국인 선원들을 챙길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었다"고 말했다.
그가 마지막으로 구명조끼를 꺼내 입으려는 순간, 길이 15.3m, 무게 9.77톤의 거룡호는 완전히 뒤집히고 말았다. 류씨는 곧바로 헤엄쳐 나오려고 했지만, 이번에는 갑판 위에 어지럽게 널려 있던 그물이 덮쳤다. 필사적인 몸부림 끝에 족쇄 같은 그물에서 겨우 벗어났으나, 여전히 사방이 캄캄한 배 안이었다. 허우적거리는 사이 물 밖으로 얼굴을 내밀 수 있었고, 숨도 쉴 수 있었다. 어둠 속에서 팔을 뻗어 여기저기 더듬다 보니 기다란 나무 판자가 잡혔다. 배 안에서도 선실 다음으로 가장 큰 공간인 어구 창고였다.
류씨는 "그물에 걸려 선박 안에 갇혔을 때는 '이대로 죽겠구나' 싶었는데 배가 뒤집히며 갇힌 곳이 창고였다"며 "나무 판자가 손에 잡히는 순간 선반이란 걸 알고는 곧바로 딛고 올라가 앉았다"고 말했다.
거룡호는 순식간에 뒤집혔다. 선령이 3년밖에 되지 않은 새 배였지만, 승선원 6명 누구도 긴급 조난요청버튼(VHF-DSC)을 누를 새도 없이 차디찬 바닷속으로 빠져 들었다. 선장 전모(61)씨가 19일 오후 6시46분쯤 휴대폰 최근 통화내역에 있던 지인에게 전화해 다급한 목소리로 "배가 침몰한다"고 겨우 알린 게 처음이자 마지막 조난신호였다. 선박에 장착된 위치발신장치(V-pass)가 끊긴 시각은 이보다 한 시간 앞선 오후 5시45분. 이날 동해상에 풍랑주의보가 발효된 시각은 오후 5시로, 갑작스럽게 기상이 악화되면서 약 2시간 동안 거센 풍랑 속에서 배가 들어갔다가 나가기를 반복한 뒤 침몰한 것으로 추정된다.
류씨는 거룡호가 뒤집히며 공기주머니로 바뀐 창고 안에 갇히는 바람에 산소를 확보할 수 있었다. 특히 사고해역 수온은 12.6도로 낮았지만, 선반 위에 올라 앉아 발끝만 물에 닿은 덕에 간신히 체온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는 컴컴한 창고 안에서 잔뜩 웅크리고 앉아 하릴없이 구조대원만 기다리면서도 끝까지 조타실에 있던 선장과 구명조끼를 입고 탈출한 외국인 선원들을 걱정했다. 배에 갇힌 지 40시간 만인 21일 오전 10시 23분쯤, 해경 구조대에 극적으로 발견된 후 온 힘을 다해 고속단정에 올랐을 때도 그의 첫 마디는 "우리 선원들은 어떻게 됐나요"라는 선원들 안부를 묻는 말이었다.
류씨는 헬기로 포항의 대형병원으로 이송됐고, 구조 당일 오후 응급실에서 의식을 회복했다. 22일에는 일반병실로 옮겨져 안정을 취하고 있다.
가족들은 그가 기적처럼 살아 돌아와 크게 기뻐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류씨는 아직 실종 상태인 선장과 선원들 걱정에 침통해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를 조사한 해경 관계자는 "류씨가 '선원들 모두 구명조끼를 입고 있었는데 왜 빨리 구하러 오지 않았느냐'며 원망하기도 했다"며 "다행히 MRI 등 각종 검사에선 별 이상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말을 거의 하지 않고 기분도 쳐져 있다"고 전했다.
한편, 해경은 거룡호 전복사고 나흘째인 22일에도 실종된 4명은 여전히 발견하지 못했다. 21일 류씨를 구조했고, 숨진 베트남인 선원 H(37)씨를 해상에서 찾았을 뿐이다.
해경은 추가 실종자를 발견하지 못함에 따라 이날 오전 7시 52분쯤 배를 선적지인 포항 구룡포항으로 예인하기 시작했다. 귀항 예정 시각은 23일 오전 3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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