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 보다 SNS' 미얀마 Z세대의 자유열망, 군부 벽 허물 수 있을까

입력
2021.02.24 12:00
쿠데타 이후 미얀마의 운명은

편집자주

국내외 주요 흐름과 이슈들을 해당 분야 전문가들이 깊이 있는(deep) 지식과 폭넓은(wide) 시각으로 분석하는 심층 리포트입니다

22일(현지시간) 미얀마의 최대도시 양곤의 한 교차로에 군부 쿠데타 반대 시위대들이 모여들고 있다. 이날 군부의 유혈진압 위협에도 미얀마 전역에서 총파업이 벌어져 수백만 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양곤=AP뉴시스

미얀마 상황은 현재 유혈사태로 확산되고 있다. 군부도 시민들도 물러설 기미가 없다. 과연 미얀마의 운명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 것일까.

이익공동체가 된 군부

2월 1일 새벽, 미얀마 군부는 쿠데타를 감행했다. 군부는 작년 11월 총선에서 약 860만명의 유권자가 다수표를 던지거나 투표 부정을 저지르는 등 약 1,050만건 이상의 선거부정이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선거부정으로 인해 사회가 혼란해졌고, 결국에는 연방이 분열할 위기를 맞았으며, 국가를 수호하는 차원에서 부득불 군부가 임시로 정권을 이양했다는 논리이다.

이번 총선에서도 투표일 몇 달 전부터 유권자 명부의 문제가 제기되었으나 군부의 발표대로 대규모 수준은 아니었다. 선거위원회의 편향성과 역량의 문제는 비판받아야 마땅하겠지만, 군부의 주장을 뒷받침할 명백한 근거는 없어 보인다. 오히려 2010년 군부가 주도한 총선은 명백한 부정선거였고, 2015년 총선에서도 투표 일주일 전까지 일부 유권자 명부가 누락되었다. 무엇보다도 선거 과정이 연방의 분열을 일으킬 수준이었는가? 수개월 내 군부는 날조된 선거부정 진상 보고를 발표하겠지만, 이미 빈대를 잡기 위해 초가삼간을 다 태워 버렸다.

8일(현지시간) 민 아웅 흘라잉 미얀마군 최고사령관이 쿠데타 감행 이후 첫 대국민 연설을 하고 있다. 그는 지난해 11월 총선에서 '선거 부정'이 있었기에 이번 쿠데타는 정당하다고 주장했다. 네피도=AP뉴시스

군부는 자신들의 계보를 ‘부모와 자식 관계’라고 하니 하극상이나 파벌화는 있을 수 없다. 바로 경제공동체라는 군부의 또 다른 이름이 일사불란한 결속을 유지하는 동인이다. 1950년부터 복지와 자생을 목표로 탄생한 군부 기업은 1990년대 초 정부가 시장경제체제로 변화를 꾀하면서 그야말로 문어발식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13개의 지역사령부는 해당 지역의 위수를 넘어 천연자원과 지하자원을 모두 통제한다. 국방부, 내무부와 함께 국경부 장관에 현역 군장성만이 진출하는 이유를 여기서 찾을 수 있다. 군 장성 개인이나 가족도 경제활동에 참여한다.

차기 정부에서 군부는 정치권력으로부터 더 멀어지면서 그들이 가진 경제적 기득권도 축소될 것을 잘 안다. 더군다나 민 아웅 흘라잉(Min Aung Hlaing) 군사령관의 공식적인 사퇴가 거론되는 상황이었고, 군부의 막대한 정치 경제적 역할을 계승할 마땅한 후계자가 없으니 그로서도 물러날 수도 없는 처지이다.

Z세대의 등장과 시민불복종운동

가재도구를 시끄럽게 두드리는 일에서부터 촛불 시위, 빨간 리본, 그리고 홍콩과 태국을 거쳐 미얀마로 전해진 세 손가락 경례는 군정에 저항하는 미얀마 국민의 상징이 되었다. 1960년대까지 부유함을 누렸던 노년층, 군부에 저항했던 88세대로 대변되는 중장년층, 그리고 정치발전의 성장통을 경험 중인 청년층 등 3세대가 어우러지고 있다. 숫자 2가 다섯 개 겹치는 2월 22일, 30개 이상의 도시에서 총파업을 했고, 이제 반정부시위는 혁명이 되었다.

21일(현지시간) 양곤에서 시위대가 독재에 대한 저항의 상징인 '세 손가락 경례'를 하며 촛불시위를 하고 있다(왼쪽). 젊은 세대뿐 아니라 노년층도 시위에 적극 동참하고 있다. 양곤=로이터 연합뉴스·SNS 캡처

미얀마는 2011년 형식상 민정 이양을 했고, 대대적으로 문호를 개방했다. 외국기업의 진출뿐만 아니라 미얀마인들이 산업화의 상징으로 자랑하는 고가도로가 도시 곳곳에 세워졌다. 상상을 초월하던 휴대전화 심 카드의 가격은 식사 한 끼 수준으로 안정화되었다. 책과 신문, 불교 경전을 탐독하던 젊은이들은 인터넷의 세계에 빠져들었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는 공간의 한계를 허물고 관심사의 다양화를 가져왔다. 2020년 1월 기준 2,200만명에 이르는 미얀마의 인터넷 사용자는 모두 SNS 계정을 가지고 있다. 전기보급률이 30%를 약간 상회하는 반면, 인터넷보급률은 41%로서 그야말로 인터넷 없이 살 수 없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지난 10년간 미얀마 국민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았다. 자신들의 의견과 판단을 자유롭게 표출했고, 군부뿐만 아니라 정부를 비판하는 인터넷 언론의 글도 국민의 의식 수준을 한 단계 높였을 것이다. 그동안 미얀마 국민이 누렸던 자유와 평화의 열매가 바로 시민불복종운동이다. 국민의 의지에 따라 선출된 권력을 지키고자 하는 결연한 의지에서 한 뼘 자란 정치의식을 엿볼 수 있다. 무기를 두려워만 하던 과거 미얀마 국민은 온데간데없다. 시민을 진압하러 온 장갑차에 군부 독재를 반대한다는 스티커를 붙이는 대범함도 보았다. 소수지만 세 손가락 경례로 이반을 선언한 경찰, 교사를 비롯한 공무원의 업무 거부는 시민불복종운동의 성패를 가를 것이다. 이미 몇 명의 사망자가 나왔고, 더 잔인한 진압이 예상되는 가운데 국민 스스로 피로감을 느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미얀마 군부가 사흘째 인터넷을 차단한 지난 17일(현지시간) 양곤 시내 도로에서 시위대가 구금 중인 아웅산 수치 고문의 사진이 담긴 플래카드를 들고 쿠데타 규탄 시위를 벌이고 있다. 양곤=AFP 연합뉴스


미국과 중국, 그리고 아세안

2007년 미얀마 반정부시위 당시 중국은 미얀마에 국민의 요구를 경청하고 필요한 정치개혁을 주문했다. 그러나 미얀마 군부는 중국이 그들을 영원히 지켜주지 않으리라 판단했고, 3년 뒤 민정 이양을 위한 총선을 실시했다. 아웅산 수치 정부는 예상을 깨고 군사정부보다 중국과 더 우호적인 관계로 나아갔다. 로힝야족 학살 문제로 미얀마뿐만 아니라 아웅산 수치가 서방세계의 비난을 받자 기댈 곳은 중국뿐이었다. 그래서 중국은 안절부절못하고 있다. 안정적인 집권에 성공하면 군부는 아웅산 수치 정부와 맺은 각종 계약을 원점에서 재검토할 수 있고, 반대로 아웅산 수치가 돌아오면 중국의 미온적 태도에 섭섭함을 토로할 수도 있다. 강대국이 약소국을 상대로 헤징(보험들기 전략)을 하는 이례적 상황을 목격하고 있다. 중국은 누가 미얀마 정권의 주인이 되느냐보다 자국의 이익 추구에 관심을 둔다. 2007년 사례도 있으니 내정불간섭 원칙만이 중국의 유일한 해답이다.

미얀마 제2의 도시 만달레이에서 17일(현지시간) 시위대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사진을 들고 미얀마 군부 쿠데타에 대한 중국의 지원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중국은 오랜 기간 미얀마의 핵심 무기 공급처이자 투자자로서 미얀마 군부의 '뒷배'라는 의심을 사고 있다. 만달레이=AP연합뉴스

미국은 복잡하다. 바이든 행정부의 “복원” 또는 “복귀”는 명확하지만 당장 미얀마 사태에 개입하여 얻을 수 있는 직접적이고 사활적인 이익은 없다. 과거 민주화 지연과 인권 탄압을 명분으로 실시해 온 포괄적 제재도 실패했고, 중국이 있는 한 앞으로도 그런 전략은 무용할 것이다. 쿠데타에 책임이 있는 군 인사에 대한 표적제재도 상징적 조치일 뿐이다. 더욱이 쿼드(Quad)의 일원인 인도가 다른 3국과 달리 미온적이어서 동맹의 참여를 강조하는 미국의 고민은 깊어진다.

아세안의 ‘맏형’격인 인도네시아가 미얀마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섰다. 2014년 태국 쿠데타 당시에도 인도네시아가 문제해결을 자청했지만, 성과는 빈손이었다. 근본적으로 아세안은 회원국의 내정을 간섭하지 않는 원칙, 즉 주권에 대한 논의 자체를 하지 않기 때문에 이번에도 큰 기대를 할 수 없다. 그러나 미국과 중국 등 강대국이 아세안을 강제할 수 없는 구도에서 아세안의 태도는 미얀마 군부에 적지 않은 부담감을 준다. 반대로 미얀마가 다시 불량국가로 낙인찍히면 국제사회에서 아세안의 부담도 가중된다. 따라서 군부가 현 상황을 수습하여 집권 기반을 마련할지라도 아세안은 서구식이 아니어도 미얀마만의 정치개혁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안정을 통한 현상 유지보다 점진적인 개선을 주문하리라 본다.

미얀마에서 발생한 군부 쿠데타는 신생 민주주의 국가의 허약함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면서 민주주의를 복원하기 위한 비용이 민주주의를 지키는 비용 이상으로 들어간다는 교훈을 준다. 나아가 강대국이 즉각적이고 실효적인 처방을 제시하지 못하는 딜레마에 처한 광경은 역설적이게도 미얀마가 더 이상 동남아의 약소국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장준영 사이버한국외대 교수

한국외대에서 미얀마 군부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미얀마를 포함한 동남아의 정치 변동과 국제 관계를 연구해 왔다. 저서로 '하프와 공작새: 미얀마 현대정치 70년사' '미얀마의 정치경제와 개혁개방: 성과와 과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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