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접종, 日은 민족주의? 이스라엘은 인도주의?… 기준은 '집단면역'

입력
2021.02.22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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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도국 재외국민 접종 방안 찾는 일본
이스라엘은 자국內 팔레스타인人 접종
명분보다 면역률 높일 수 있냐가 관건

지난달 4일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한 코로나19 백신 센터에서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백신 접종을 기다리고 있다. 예루살렘=AP 뉴시스

지난달 4일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한 코로나19 백신 센터에서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백신 접종을 기다리고 있다. 예루살렘=AP 뉴시스

해외 거주 자국민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직접 챙기겠다는 일본. 팔레스타인 사람이라도 자국 내에서 일한다면 백신을 제공하겠다는 이스라엘. 일견 한 나라는 민족주의, 다른 나라는 인도주의를 우선하는 듯하지만, 따져 보면 결정에 적용된 기준은 그런 거창한 명분이 아니다.

21일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최근 일본 외무성은 각국 코로나19 접종 상황 및 의료 체계를 조사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해외에 사는 자국민이 백신 접종에서 소외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자국민에게 맞힐 백신을 확보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 개발도상국에서 현지 의료 서비스에 불안을 느끼는 재외국민들이 본국 정부의 지원을 기대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는 게 일본 외무성 관계자 전언이다.

이스라엘은 반대다. ‘팔레스타인 자치기구’(PA) 성명을 인용한 19일 AFP통신 보도에 따르면 이 나라는 자국 내에 일자리를 갖고 있는 팔레스타인 노동자 10만명에게 코로나19 백신 주사를 접종해 주기로 했다. 이스라엘 보건부는 팔레스타인 측과 바이러스 논의를 위한 모임을 가졌다고 성명을 통해 전하며, 이 모임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인들이 한 영토 단위에서 살기 때문에 열린 것”이라고 그 배경을 설명했다.

드러난 현상은 대조적이다. 일본의 경우 자국민을 살뜰하게 품는 행태인 반면, 이스라엘은 인류 모두가 직면한 위기 앞에서 평소 맞서 싸우던 적까지 포용하는 모습이다. 백신 구매가 국가 단위로 이뤄진다는 사실을 감안할 경우 지구적인 분배 불균형의 완화라는 명분 측면에서 이스라엘의 시혜적 행위가 더 바람직해 보인다.

그러나 들여다보면 현상의 뿌리는 같다. 코로나19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전선은 국적이 아니라 지역이다. 유행을 억제하려면 하루라도 빨리 지역 내 집단 면역을 달성해야 한다. 문제는 지역을 관할하는 국가의 재력이다. 선진국은 외국인을 접종 대상에 포함시킬 여유가 있지만 개도국은 역부족이다. 일본 정부의 접종 지원 대상이 주로 개도국에 사는 자국민이 될 거라는 예상이 나오는 이유다. 이스라엘 정부도 “팔레스타인 영토에 코로나바이러스가 퍼지면 이스라엘도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성명에서 언급했다. 결국 백신 주사를 맞을 수 있느냐는, 국적이 어디냐보다 어디에 사느냐가 관건인 셈이다.

권경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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