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발 색깔 지도는 합법" 판결로 日 '블랙 교칙' 논란 재연

입력
2021.02.21 18:00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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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지법, "두발 지도 학교 재량 범위 내" 인정
흰색 속옷·양말 착용 등 획일적 교칙 재검토 요구
교칙 등 이유로 등교 거부 5,500명... 사회 문제화

일본 도쿄의 국회의사당을 방문한 일본의 중학생들이 교복 차림으로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 도쿄=로이터 연합뉴스

일본 도쿄의 국회의사당을 방문한 일본의 중학생들이 교복 차림으로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 도쿄=로이터 연합뉴스


최근 일본에서는 다양성을 존중해야 할 교육 현장이 오히려 학생들의 개성과 인권을 억누르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시대에 뒤떨어진 불합리한 교칙을 이르는 '블랙 교칙' 논란이 재연되면서다.

오사카지방법원은 16일 고등학교 시절 학교 측의 두발 지도로 등교를 거부하게 된 여성이 제기한 소송에서 학교 측의 손을 들어줬다. 태어날 때부터 갈색 머리인 여성이 교칙에 의해 검게 염색할 것을 강요 받았고 "검게 염색하지 않으면 학교에 올 필요가 없다"는 말을 들었다며 학교를 관할하고 있는 오사카부에 손해 배상을 요구했다.

재판부는 핵심 쟁점인 '염색 금지' 교칙에 대해 "정당한 교육 목적에서 정해진 합리적인 것으로 학교의 재량 범위 내에 있다"고 판단했다. 학교 측이 여성의 머리카락 뿌리가 검은색임을 확인하고 두발 지도를 한 것도 위법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다만 여성이 등교를 거부한 후 학교 측이 책상을 빼버리고 학생 명부에서 삭제한 것은 불법으로 인정했다. 이에 33만엔(약 350만원)의 배상 판결을 내렸다.

소송이 시작된 2017년부터 온라인 상에서는 불합리한 교칙을 폐지하기 위해 시민들이 모인 '블랙 교칙을 없애자!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서명운동 등이 진행됐다. 그러나 이번 판결로 국제 교류가 활발하고 염색과 파마가 일반화한 현 상황에서 두발 규제가 합리적인 교칙인지 재검토해야 한다는 견해가 다시 제기되고 있다. 염색이나 파마를 금지하는 일부 학교는 학생들에게 모발 색깔과 곱슬머리임를 확인할 수 있도록 모발증명서 제출을 요구하기도 한다.

지난해 문부과학성 조사 결과, 교칙을 이유로 등교 거부 중인 중·고생이 5,500명에 이르는 것으로 확인될만큼 블랙 교칙은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대표적으로 속옷 색깔을 흰색으로 규정하거나 옆머리를 짧게 자르고 윗머리를 내리는 '투블럭' 금지, 치마 아래 무릎이 드러나는 것을 금지하는 것 등이 꼽힌다. 지바현 지바시 내 시립 중·고 57개교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속옷 색깔에 대한 교칙을 둔 학교가 50%, 투블럭을 금지한 학교가 70%에 달했다.

불합리한 교칙을 개선하기 위해 학생들이 팔을 걷어붙이기도 한다. 지난해 나라현 덴리시의 한 중학교는 여학생에게만 흰색 양말 착용을 규정한 교칙을 변경했다. 여학생을 대상으로 교칙 폐지 여부에 대한 투표를 실시한 결과 찬성 210표, 반대 11표로 폐지 요구가 압도적이었다. 교칙 논의를 위해 학생과 학부모, 교직원이 3자 협의회를 구성한 학교도 있다.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도 교칙 완화를 가져온 요인으로 꼽힌다. 지난해 일부 학교는 흰색 마스크 착용을 요구했으나 마스크 부족으로 인해 다양한 색깔의 마스크를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 날마다 세탁이 어려운 교복에 바이러스가 묻을 수 있어 감염될 가능성을 우려해 체육복이나 사복 등교를 허용한 학교들도 생겨났다. 당연하게 여겨온 교복 대신 등교 복장을 스스로 선택하게 돼 자율성을 경험한 계기였다는 설명이다.

도쿄= 김회경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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