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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발적 망명자의 또 다른 이름, 이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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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이국에서 보내는 설에 딱히 명절 기분이 날 리 없지만 자라면서 몸에 새겨진 시간의 리듬 때문인지 한국 생각도 더 나고 가족도 더 그리워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미국 살림이 20년을 넘겼고 설과 추석은 언제나 학기 중이라 큰 명절을 한국에서 가족과 같이 보냈던 마지막 기억마저 흐릿하다. 한국의 가족들에게 언젠가는 같이 모여 즐거운 명절을 보내자는 인사를 하곤 했는데, 이제 그 빈 약속도 민망스러워 입이 쉽게 떼어지지 않는다.
2000년 처음 미국 땅을 밟을 때 2021년에 아직도 이곳에 살고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영원히 고국을 떠나 이민을 간다는 생각은 당연히 없었다. 나의 이민은 어느 한 시점에 내린 결정이 아니라 나도 모르는 사이 서서히 이루어진 긴 과정이었다. 더 정확하게는 지금도 지속되고 아마도 영원히 끝나지 않을 불확실성과 유동성의 과정이다. 많은 이민자들이 공유하는 경험일 것으로 짐작한다. 미국에서 20년을 살고 미국인과 결혼했고 미국 시민이 된 영국 문필가 크리스토퍼 히친스는 삶이 몇 주밖에 남지 않았다면 그 시간을 어디에서 보내겠느냐는 질문에 의심의 여지 없이 고향인 영국 다트무어에 갈 것이라고 했다. 그는 암 투병 끝에 휴스턴의 한 병원에서 생을 마감했다.
유학길에 오르던 젊은 나는 새로운 세상에서 얻을 것들에 대한 기대에 차 있었고 그 과정에서 무엇을 잃게 될지에 대한 생각은 전혀 없었다. 사실 아주 오랫동안 그런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내가 상실한 것들은 오랜 시간에 걸쳐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 사이 나도 변했지만 한국도 20년 전 내가 떠난 한국이 아니다. 언제부터인가 한국을 방문할 때 문학비평가 제임스 우드가 '소외의 가벼운 베일'이라고 부른 낯섦을 느낀다. 그렇다고 20년 넘게 산 미국 땅에서 그 베일이 사라진 것도 아니다. 서서히 진행된 이 ‘자발적 망명'의 과정에서 나는 한 고향을 잃고 새 고향을 얻거나 두 고향을 가지게 것이 아니라, 어느 곳도 진정한 고향이 아닌 경계인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는 어쩔 수 없이 에드워드 사이드가 ‘자아와 진정한 고향 사이의 치유할 수 없는 틈새’에서 생기는 ‘본질적 슬픔'이라고 부른 것이 있다.
물론 나의 자발적 망명이 큰 특혜라는 걸 알고 있다. 세계이민기구에 따르면 세계인의 3.5%만이 자기가 태어나지 않은 나라에서 사는 이민자라고 한다. 그중 글로벌 사우스에서 가난에 쫓겨 부유한 국가로 이주한 사람이 40%가 안 되고 약 10% 정도는 전쟁이나 재해 때문에 고향을 떠난 난민이다. 상대적으로 부유한 국가에서 다른 부유한 국가로 이주한 경우는 25%이다. 에드워드 사이드는 이민자를 망명자, 난민, 국외 거주자, 그리고 이주자로 구분했는데, 나는 이주자, 그 중에서도 무엇에 쫓겨서가 아니라 새로운 기회를 찾아 자발적으로 삶의 터를 옮긴 특혜받은 소수인 셈이다. 하지만 고향을 잃는다는 것은 그 소수에게도 깊은 상실감과 슬픔을 안겨주는 경험임을 이제서야 깨닫는다. 그러니 등 떠밀려 고향을 떠나 돌아가지 못하는 진짜 망명자들과 난민들이 겪는 존재적 상처의 깊이는 짐작하기도 쉽지 않다. 기후변화로 인한 인구 대이동이 이미 시작되었다고 한다. 기후변화 난민들이 겪을 그 상처는 기후변화로 우리가 치러야 하는 또 하나의 대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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