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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부캐없는 직장인도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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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세대를 중심으로 자신만의 '부캐(한 사람이 다양한 캐릭터를 가지고 각각에 맞는 활동을 하는 것)'를 만드는 게 유행이다. 부캐를 개발해 자신의 취미나 재능을 살리는 활동을 만들고, 그것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일은 ‘사이드 프로젝트’ ‘N잡’ ‘사이드허슬’ ‘딴짓’ 등의 이름으로 불린다. 프립, 에어비앤비 트립, 하비인더박스, 딴짓클럽 등 이런 활동을 장려하는 플랫폼도 많아졌다.
회사 밖에서 자신의 새로운 아이덴티티를 찾는 일, 그 일로 미래의 커리어까지 다듬어 가는 일은 바람직하고 언뜻 유쾌해 보이기까지 한다. 이런 플랫폼 광고에는 퇴근 후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하는 젊은 청년의 환한 미소가, 러닝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평범한 직장인의 활기가 느껴진다. 잡티를 깨끗하게 지워주는 셀카 앱처럼, 광고 속 매끈하게 다듬어진 가상의 현실이 내게 손짓한다. 여기 와서 억눌려 있던 당신의 새로운 자아를 ‘선택’해 보라고, 당신의 가능성을 ‘실험’해 보라고 말이다.
그러나 MZ 세대에게 부캐는 정말 ‘취향’이자 ‘선택’이기만 할까? 예능 속 연예인들의 부캐처럼 MZ 세대의 부캐 라이프는 재치있는 BGM 속에 과도한 분장을 곁들인 놀이 같을까? 좋아하는 일을 목적없이 하는 낭만적인 활동이라면 좋겠지만, 청년들이 워라밸과 정시퇴근을 외쳐가며 확보한 시간은 불안한 내일을 준비하는 제2의 직업 훈련소가 될 때가 많다. ‘요가 강사 자격증을 따면 이 회사에서 잘렸을 때 생활비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생기는 건 아닌지’ ‘내가 가진 직업이 미래에 가장 먼저 사라질 직업으로 꼽혔는데 이참에 코딩이라도 배워둬야 하는 건 아닌지’ ‘반려동물 유튜브 채널에서 얻는 수익이 내가 받는 월급보다 많아진다면, 이 재미없는 회사 당장 때려치워야지’ 여섯 시가 땡 치기 무섭게 짐을 싸서 다른 ‘일터’로 떠나는 신입사원이 고깝게 보일지라도 너무 티 내지 말자. 사이드프로젝트는 자아실현의 장일뿐 아니라 불안한 미래를 위한 보험이자 생존을 걱정하는 세대의 피할 수 없는 전략이 되었으니까.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직장이 없는 시대가 온다'를 쓴 새라 케슬러는, 10년 후에는 세계 인구의 절반이 프리랜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은 프리랜서 중 약 70%가 35세 미만이라고 한다. 앞으로 프리랜서가 될 청년 세대는 100세 시대를 살게 될 것이라고 하지만, 아직 우리나라 노동 시장은 60대에 정년을 맞아 은퇴하는 패턴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은퇴 후 남은 날들을 충분히 버틸 돈을 모을 수도, 한 직장에서 평생 머무를 수도 없는 이들은 그래서 자신만의 다른 대안을 준비한다. 온라인에 상시 대기하며 커다란 프로젝트의 일을 조각조각 분할해 수행하는 테스커가 되거나, 좋아하는 일을 사이드잡 삼아 조금씩 수익을 올리며 ‘언젠가 독립할 그날’을 기다린다.
청년들의 부캐 만들기가 밖에서 보기엔 마냥 ‘놀이’같을 수도 있고, 회사 밖에서 수익을 노린다는 것 자체가 ‘배신’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취미니 긱경제니 하는 것들이 굶어본 적 없는 세대의 배부른 욕심처럼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청년들이 부캐에 골몰하는 건 단순히 재밌어서가 아니다. 유례없는 불확실성 앞에 선 인간의 합리적인 선택이다. 깃발 없는 세상에서 자신만의 생존 전략을 찾아 쉼 없이 발을 구르는 청년들에게 응원을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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