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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혼 오독하는 낡은 정치

입력
2021.02.18 18:00
수정
2021.02.18 23:32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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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훈 시대전환 서울시장 보궐선거 예비후보가 1일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주택재건축 현장을 찾아 '1인 가구를 위한 주택청약 방안 마련'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조정훈 의원실 제공

조정훈 시대전환 서울시장 보궐선거 예비후보가 1일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주택재건축 현장을 찾아 '1인 가구를 위한 주택청약 방안 마련'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조정훈 의원실 제공

‘결혼·출산 1억 지원’서 드러난 현실 인식
11년 전 후보들 시대적 의제 제시 못 해
뒤처진 진단으로 시정 이끌 수 있을까


문제는 돈이 아니다. 일과 자유가 우선일 뿐이다. 결혼하기 싫다는데 왜 자꾸 돈 줄 테니 하라는 것일까. 시골 어른의 닦달 같은 이 거대한 정책적 착각은 언제까지 계속되려나. 국민의힘 나경원 서울시장 보궐선거 예비후보의 결혼·출산 공약 논란에서 짚어야 할 대목은 이것이다. 시대를 읽는 정치인의 능력은 왜 중요한가.

서울시 청년이 토지임대부 주택에 거주하고 결혼, 출산하면 총 1억1,700만원의 대출이자를 지원한다는 나 후보의 공약은 곧 화염에 휩싸였다. 당내 경쟁자 오신환 후보는 ‘나경영’이라고 비꼬았고 “현금 지원한다고 저출산이 해결되지 않는다”며 공공보육 강화를 주장했다.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후보는 “행복이라는 가치가 들어가야 한다”고 비판했다. 가장 차별화된 대안적 시각을 보여준 것은 시대전환 조정훈 후보다. 그는 “언제까지 부동산을 무기로 결혼과 출산을 강요해야 하느냐”며 “혼자 살아도 잘 사는 서울을 만들겠다”고 했다. 그는 생산 인구 감소, 국가 경제 위축을 해결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저출산이 행복할 수도 있다고 외친다. 1호 공약도 ‘혼삶러(1인가구)를 위한 서울’이다. 그는 “2021년 서울시장은 ‘결혼하면 집을 준다’는 달콤한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혼자 사는 당신 곁에 함께하겠다’고 손 내미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나 후보는 자신의 공약이 결혼 장애 요인을 해결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2020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보고서에서 주거불안정이 결혼을 안 하거나 미루는 첫 번째(남성), 세 번째(여성) 이유로 꼽힌 것이 그 근거다. 하지만 이는 결혼 의사가 있는 19~49세 미혼들의 생각이고, 핵심은 결혼할 생각이 없다는 것이니 어쩌랴. 1월 엠브레인 조사만 봐도 19~49세 미혼 중 결혼이 필요하다는 이들은 44%에 불과하고, 결혼하면 더 행복할 것이라는 응답은 21.7%뿐이다. 아니, 결혼은 행복은커녕 위험이다. 2019년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20~39세 남녀 6,350명을 조사했을 때 청년기 삶의 과업 1, 2위는 일과 개인생활이었고, 여성의 50%(남성 25.8%)는 결혼이 원하는 직업 유지에 부정적이라고 봤다. 일과 자유가 우선인 이 시대 청년에게 결혼은 선택사항인 것이다. 특히 여성에게 불평등 가사, 며느리 의무, 독박 육아, 경력 단절까지 안겨줄 결혼은 제도화된 착취에 가까우니 1억원을 준다고 하겠는가.

정책입안자의 시대 오독은 폐해가 크다. 정부 저출산·고령화 기본계획이 오랜 투자에도 성과가 없는 것이 이런 시대착오의 결과다. 지난해에만 40조원의 예산을 쓰고도 인구 감소 원년을 기록했다. 차라리 그 돈으로 획기적 성평등 정책을 펴거나 조 후보처럼 1인가구 지원으로 근본적 전환을 해야 하련만 구시대 정치인과 관료들은 자기 생각을 고집하며 예산을 낭비할 뿐이다. 저출산 대책뿐이랴. 각종 복지제도, 노동조건과 여가, 성폭력, 소수자 차별 등에서 시민 인식보다 뒤처진 정치인들이 엉뚱한 정책을 내고 설화를 빚는다.

2011년 무상급식 논란으로 치러진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한국 사회에서 장대하게 이어진 복지 논쟁의 시작점이었다. 복지 이슈는 2012년 대통령 선거를 장악했고 재난지원금, 기본소득 공방으로 이어져 왔다. 하지만 2021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시대를 상징하는 의제나 미래 비전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10년 전 그때 그 사람들이 재등장했으니 놀랄 일도 아니다. 정권 심판 단일화, 부동산 재개발, 박원순 전 서울시장 평가 등 하나같이 구태의연한 이슈들은 투표율만 깎아먹을 듯하다. 당선되지 않더라도, 다른 후보를 자극하고 당선자에게 영향을 미칠 뉴페이스가 간절하다. 슬픈 서울시장 선거다.

김희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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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원뉴스스탠다드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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