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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질병에 사악한 은유를 입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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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쩐지 펼쳐 보기 두려운 고전을 다시 조근조근 얘기해 봅니다. 작가들이 첫손에 꼽는 산문가, 박연준 시인이 '한국일보'에 격주 금요일 글을 씁니다.
사람들은 부정적이거나 두려운 것을 말할 때 비유를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시인이 아닌 사람도 누군가의 부고 앞에서는 시인이 된다. 먼 길을 떠나다, 영원히 잠들다, 흙으로 돌아가다, 작고(作故)하다(옛날 사람이 되었다는 뜻)... 우리는 왜 ‘죽었다’고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는가. 은유를 사용하는 자의 심리는 뭘까.
은유는 대상의 본질을 순화하거나 과장할 수 있다. 미화하거나 왜곡할 수 있고 미추의 기준을 뒤집어 놓을 수 있다. 은유에겐 그럴 능력이 있다. 이런 능력 때문에 예부터 시인들은 은유를 애용해 왔다. 시에서 은유는 각인 효과를 낸다. 탁월한 은유를 사용하면 100년이 지나도 살아남는 문장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시인 유치환 덕에 우리는 여전히 깃발을 보고 “소리 없는 아우성”이란 표현을 떠올리지 않는가. 한편 질병에 드리운 은유는 어떨까. 손택은 암에 걸렸던 경험을 떠올리며 '은유로서의 질병'을 쓰게 된 이유는 “사람들이 암을 앓은 사람들에게 낙인을 찍는다는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렇다. ‘각인’은 쉽게 ‘낙인’으로 변질될 수 있다.
“결핵을 둘러싼 신화와 암을 둘러싼 최근의 신화는 모두 개인이 자신의 질병에 책임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암을 둘러싼 이미지가 훨씬 더 인과응보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중략) 암이 감정을 표현하지 못해 생기는 병이라는 관점을 가질 경우, 우리는 암 환자를 비난하게 된다. 이런 관점은 연민을 드러내긴 하지만, 그와 동시에 경멸을 시사하는 법이다.” (75쪽)
질병에 은유를 덧입힐 때 질병이 야기하는 미신적 이미지나 낙인은 결국 “개인이 자신의 질병에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게 만든다. 사회는 마치 질병에 성격이 있는 듯, 혹은 어떤 성격이 질병을 일으키게 만든다는 듯 잘못된 믿음을 양산하고 퍼트린다.
문학작품에서 낭만적으로 묘사된 결핵부터 공포의 대상이었던 나병, 페스트, 매독, ‘죽음’의 다른 말로 인식되어온 암, 에이즈, 작금의 코로나19 까지. 당신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 질병의 이미지는 어떠한가. 모르는 사이에 각인된, 질병에 따라 떠오르는 ‘이미지(은유)’나 편견이 있지 않은가. 질병에 덧씌워진 수많은 은유들은 공포감이나 낭만성, 불안이나 혐오를 만들어냈다. 손택은 “어떤 질병에 특정한 의미- 즉, 언제나 도덕적이었던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 일”의 가혹함에 대해 꼬집는다.
“어떤 것을 ‘질병 같다’는 식으로 말한다는 것은, 그 무엇이 넌더리나는 것이며, 추악하다는 의미다. 프랑스에서는 얼룩진 돌의 외양을 일컬어, 아직도 ‘레프뢰즈 lepreuse(나병)’라는 단어를 쓴다.”(88쪽)
그동안 우리는 무언가를 가리켜 ‘사회의 암적인 존재다’, ‘병적이다’, ‘직업병이다’, ‘불치병이다’ 등 사회문제와 질병을 연결시키며, 병에 끊임없이 “사악한” 은유를 입혀 사용했다.
손택이 1978년에 집필한 '은유로서의 질병'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책이다.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 속 혼란을 겪고 있는 우리를 돌아보기 위해서라도 지금 읽어야 한다. 바이러스에 걸린 사람을 바이러스 취급하고 주홍글씨처럼 낙인을 찍어버리는 일이 빈번한 지금, 우리 태도를 돌아봐야 한다. “어쩌면 이 사회에는 악과 동일시될 수 있고, 그 ‘희생자들’에게 비난을 퍼부을 수 있는 질병”이 필요한 건지도 모른다고 일갈한 손택의 말에 등골이 오싹해진다. 우리가 비난을 퍼부을 대상이 전염병의 희생자(감염자)인가, 바이러스인가, 혼란을 잠재우지 못하는 사회인가, 정부인가. 정신 차리지 않으면 이성을 잃고 눈앞에 있는 타자를 혐오 대상으로 낙인찍으려는 사회에서, 누구라도 병에 걸릴 수 있다. 병은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닌 병일뿐이다. 병을 둘러싼 온갖 은유에 몸서리치며 또 다른 편향된 서사를 만들어내는 건 우리 자신이다. “질병을 은유적으로 생각하는 사고방식에 될 수 있는 한 물들어서는 안 되며, 그런 사고방식에 저항해야 한다”(15쪽)고 말하는 손택의 말을 새겨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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