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와전 정성껏 수집했다 한국에 기부한 일본인

입력
2021.02.20 10:00
13면

"한국 와전 가치 해외서도 인정한 것"
日 데즈카야마대 부속박물관에도 약 3,000점

편집자주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습니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 관계자들과 문화재 전문가들이 그 동안 잘 몰랐던 국외문화재를 소개하고, 활용 방안과 문화재 환수 과정 등 다양한 국외소재문화재 관련 이야기를 격주 토요일마다 전합니다.



문화재를 ‘자산(Cultural Property)’으로 인식하면 그것은 어떤 국가가, 혹은 어떤 개인이 소장하고 있는지가 중요한 문제가 된다. 하지만 문화재를 자산이 아닌 ‘자원(Cultural Resource)’으로 인식한다면 그것의 가치를 어떻게 공유하고 우리 삶의 수준을 높여주는 데 활용할 것인지 고민하게 된다.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 중에서도 일찍부터 자원으로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수집?전시?연구된 경우를 찾아볼 수 있다. 그 중 하나가 한국의 옛 기와와 전돌, 즉 와전(瓦塼)이다.

한국문화재를 소장한 여러 해외 박물관에서도 한국의 와전을 소장하고 있는 곳이 많은데, 이는 해외에서도 한국 와전의 역사적?예술적 가치를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가 옛 기와 하면 많이 떠올리는 ‘신라의 미소’ 인면문수막새도 한때 해외 소재 한국문화재였다. 일제강점기 경주에서 근무했던 일본인 의사 다나카 도시노부가 구입해간 이 기와는, 1972년 그가 국립경주박물관에 기증하며 한국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그리고 오늘날 신라인들의 미적 감각을 느낄 수 있는 대표적인 문화재 중 하나가 되었다. 현재 일본에는 이처럼 그 가치를 먼저 알아보고 수집해 간 한국 와전 컬렉션이 상당수 있다. 이 중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조사를 마치고 보고서를 출판한 한 컬렉션을 소개하고자 한다.

한국 와전을 사랑한 일본인, 이우치 이사오

“뭐라 말할 수가 없어요. 아쉬움을 넘어서 한일 친선과 양국의 학문을 위해 도움이 된다면 저로서는 매우 만족합니다.”

이우치 이사오

일본에서 한국 와전을 사랑하여 정성껏 수집했던 이우치 이사오가 1987년 자신의 한국 와전 컬렉션 중 1,082점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하기 위해 떠나보내며 오사카항에서 남긴 말이다(국외소재문화재재단 유튜브 채널 ‘돌아온 와전, 이우치 컬렉션’ 참조). 자신의 소장품을 기꺼이 고향으로 보낸 이우치 이사오는 한국의 와전을 모두가 그 가치를 공유해야 하는 자원으로 생각했음이 분명하다.

7,000여점으로 추정되는 이우치 이사오의 한국 와전 컬렉션 중 약 5,000점은 현재 세 곳에 나뉘어 있다. 두 곳은 한국의 국립중앙박물관과 유금와당박물관이며, 나머지 한 곳은 나라(奈良)에 위치한 데즈카야마대 부속박물관이다. 이우치 이사오가 수집했던 와전의 핵심은 이우치고문화연구실에서 1981년 출판된 ‘조선와전도보’에 실려 있는데, 2,229점의 수록 한국 와전 중 절반에 해당하는 1,082점이 바로 1987년에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된 것이다. 나머지 절반은 이우치 이사오의 둘째 아들 이우치 기요시가 2005년 한국에서 기와를 수집하고 연구한 유창종?금기숙 부부에게 인계하여 2008년 설립된 유금와당박물관의 소장품이 되었다.

이우치 이사오(1911~1992)의 생전 모습.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제공

이우치 이사오(1911~1992)의 생전 모습.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제공


이우치 이사오는 소학교 4학년 때 숙부에게서 한국 여행 선물로 신라시대 기와 조각을 선물로 받았음을 회고할 정도로, 옛 기와에 대한 동경을 어린 시절부터 갖고 있었다. 성장하여 내과의사가 되었지만 옛 기와를 수집하는 일을 놓지 않았다. 그러던 중 이우치 이사오의 한국 와전 컬렉션을 근본적으로 늘려준 것이 1964년 구입한 이토 쇼베의 컬렉션이다. 이토 쇼베는 일찍부터 한국 와전을 대량으로 구입하여 1931년 온시교토박물관(현 교토국립박물관)에서 자신의 한국 와전을 공개하는 ‘조선고와전전관’이라는 전시를 개최했다. 1만 여점의 한국 와전을 소장한 것으로 알려진 이토 쇼베가 사망한 이후 잊힌 이 컬렉션을 찾아나선 것이 이우치 이사오였다. 그는 1964년 교토 야세의 히나비타신사에 보관되어 있던 이토 쇼베의 한국 와전 컬렉션을 일괄로 구입했다.

이우치 이사오는 단순히 와전을 수집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이우치고문화연구실을 설립하여 자신의 와전을 직접 연구하고 연구자들에게 각종 정보를 제공하였다. 특히 와전에 대한 도록과 연구서를 적극적으로 출판하였는데, 앞서 언급한 ‘조선와전도보’는 낙랑부터 조선까지 한반도 전 시대의 와전을 포괄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이러한 성과를 이룬 후에 그가 택한 행보가 한국으로의 기증이었던 것을 통해 볼 때, 한국 와전에 대한 사랑이 단순한 호고(好古)에 그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일본 박물관 한국 와전 2,900점 보유...대부분이 이우치 이사오 소장품 구입한 것

한국으로 돌아온 와전을 제외하고 이우치 이사오가 수집했던 와전 중 가장 많은 수량을 소장하고 있는 곳이 앞서 언급한 데즈카야마대 부속박물관이다. 데즈카야마대 부속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한국 와전의 수량은 총 2,981점이며, 그 핵심을 이루고 있는 것이 데즈카야마대 고고학연구소에서 1980년대 구입한 이우치 이사오의 한국 와전 컬렉션이다. 현재 부속박물관에 있는 이우치 컬렉션은 2,746점으로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한국 와전 중 약 92%에 달한다. 나머지 235점의 한국 와전은 2004년 데즈카야마대 부속박물관 개관 이후 일본의 개인 소장가들로부터 기증받은 와전 등이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에서는 2017년 실태조사를 통해 데즈카야마대 부속박물관 소장 한국 와전을 전수조사 하였으며, 해당 결과 보고서로 ‘일본 데즈카야마대학 부속박물관 소장 한국문화재’를 작년 말에 발간했다.

통일신라 시대의 귀면문마루끝기와(앞면). 지붕마루 끝에 사용된 기와로 무서운 귀신의 얼굴을 장식하여 사악한 기운이 건물에 들어오는 것을 막고자 했다. 기와 뒷면에는 “월성채집 필당소장(月城採集 必堂所藏)”이라는 주서(朱書)가 남아있어 출토지와 초기 수집가에 대한 기록을 제공하고 있다. 데즈카야마대 부속박물관 제공

통일신라 시대의 귀면문마루끝기와(앞면). 지붕마루 끝에 사용된 기와로 무서운 귀신의 얼굴을 장식하여 사악한 기운이 건물에 들어오는 것을 막고자 했다. 기와 뒷면에는 “월성채집 필당소장(月城採集 必堂所藏)”이라는 주서(朱書)가 남아있어 출토지와 초기 수집가에 대한 기록을 제공하고 있다. 데즈카야마대 부속박물관 제공


데즈카야마대 부속박물관의 한국 와전 컬렉션은 고대부터 현대까지 한반도에서 끊임없이 변천을 거듭하며 제작된 기와와 전돌의 역사를 한눈에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일본 내에서도 뛰어난 한국 와전 컬렉션으로 꼽힌다.

특히 세가지 점에서 데즈카야마대 부속박물관 와전 컬렉션의 의의를 찾을 수 있다. ①한 컬렉션 내에서 시대별로 여러 문양들을 비교 분석할 수 있어서 와전의 역사적 변천을 확인할 수 있다. ②일부 와전은 출토 당시에 기록한 묵서가 남아있어 출토지 별로 분류가 가능하다. 이러한 유물들은 제작 시기와 지역에 기준이 되어 한국 와전 연구에서 비교 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 ③현재 북한 지역에 해당하는 곳에서 발굴된 낙랑, 고구려 와전도 포함되어 있어, 평소 유물을 실견하기 어려운 관련 연구자들에게 귀중한 자료를 제공해 줄 수 있다.

고려 시대 연화문벽전돌. 벽을 만들기 위해 쌓은 전돌의 측면에 물 위에 핀 연꽃이 표현돼 있다. 비슷한 무늬의 전돌이 개성 만월대에서 출토되었고, 고려시대 불교의 영향 하에 이렇게 도상화된 연꽃이 와전에도 적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데즈카야마대 부속박물관 제공

고려 시대 연화문벽전돌. 벽을 만들기 위해 쌓은 전돌의 측면에 물 위에 핀 연꽃이 표현돼 있다. 비슷한 무늬의 전돌이 개성 만월대에서 출토되었고, 고려시대 불교의 영향 하에 이렇게 도상화된 연꽃이 와전에도 적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데즈카야마대 부속박물관 제공


기와, 단순 지붕 구성 부재 아냐...당시 시각문화 일면 보여줘

박물관에서 깨져있는 옛 기와 앞에서 많은 관람시간을 보낸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박지원은 열하일기 중 일신수필에서 “중국의 장관은 깨진 기왓장에 있다”라며 실용적 가치의 중요성을 역설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깨진 기왓장도 쓰이는 곳이 있음을 주장하였다. 하지만 이는 결국 깨진 기와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이 버려진 물건이며 하찮은 것임을 의미한다.

그러나 기와와 단순히 지붕을 구성하는 부재로서만 기능을 하고 소비되었던 것이 아니다. 기와는 한반도에서 고대부터 제작되기 시작하여 각 시대마다 다양한 장식문양이 나타나는 매체였다. 지붕에서 반복되는 암키와와 수키와, 그리고 지붕의 각 부분에 맞춰 제작된 여러 형태의 기와들에서 주목해야 하는 점은 겉으로 보이는 면에 어김없이 표현된 문양들이다. 옛 사람들이 일상에서 가장 보게 되는 곳에 새겨진 기와의 문양들은 그 당시의 시각문화 일면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또한 와전의 형태와 문양을 분석하면 시대와 지역에 따라 양식을 구분할 수 있고, 그 변화의 양상을 통해 시대를 이해하고 지역간 문화의 전파 양상까지도 파악할 수 있다. 특히 고대는 현전하는 역사적 기록이 드물기 때문에 발굴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와전은 그 시대의 모습을 가장 정확하게 보여주는 자료로서 중요하다.

문화재가 지닌 가치는 그것을 보는 사람들의 인식을 통해 발현된다. 우리는 와전을 문화재로 접하게 되면서 그것이 지닌 가치를 더 많이 끌어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와전을 비롯한 국외 소재 한국문화재에 대해 우리가 더 많은 연구와 분석을 통해 그 문화재가 지닌 가치를 더욱 풍부하게 만드는 것이야 말로 우리 문화재를 아끼고 사랑하는 것이 아닐까? 이번에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의 실태조사 보고서를 통해 소개된 데즈카야마대 부속박물관 소장 한국 와전에 대해서도 향후 한?일 양국의 와전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켜 보다 많은 관련 연구들이 이루어지기를 희망한다.

김륜용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실태조사부 직원

김륜용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실태조사부 직원


김륜용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실태조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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