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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다고 다 좋을쏘냐'...하늘 찌르는 마천루 논란의 역사

입력
2021.02.20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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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랜드마크·일자리 창출 등 선거 단골 공약
도시 미관 망치고·안전 문제 등 각종 논란도 되풀이


국민의힘 나경원 서울시장 예비후보가 15일 서울 마포구 누리꿈스퀘어 연구개발타워 스카이브리지에서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과 함께 상암 일대 정책 비전을 발표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국민의힘 나경원 서울시장 예비후보가 15일 서울 마포구 누리꿈스퀘어 연구개발타워 스카이브리지에서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과 함께 상암 일대 정책 비전을 발표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서울이 또다시 초고층 랜드마크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서울시장 보궐선거의 국민의힘 예비후보인 나경원 전 의원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앞다퉈 초고층 빌딩 건설 공약을 들고 나오면서입니다.

나 전 의원과 오 전 시장은 15일 나란히 서울 마포구 상암동을 방문해 "서울 서북권 숙원사업인 100층 이상 랜드마크 건설을 이뤄내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박원순 전 시장 시절 백지화된 상암 디지털미디어시티(DMC) 초고층 건설을 다시 추진하겠다는 겁니다.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핫이슈로 떠오른 부동산 대책 경쟁과 맞물리면서 초고층 랜드마크를 둘러싼 해묵은 논란이 되풀이할 조짐도 보입니다.

건축법은 높이 200m 이상 또는 50층 이상 건물을 초고층 빌딩으로 규정합니다. 이미 서울에는 ①타워팰리스3차(264m), ②여의도 63빌딩(249m), ③제2롯데월드 타워(555m), ④파크원 타워(338m) 같은 초고층 빌딩이 여럿 있고, 현대차그룹의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569m) 등이 건립 추진 중이죠.

초고층 빌딩 건설을 추진하는 쪽은 도시의 문화와 정체성을 나타낼 수 있는 랜드마크로서 상징성을 강조합니다. 서울시장 후보들이 마천루 건설에 '욕심'을 내는 것도 이를 통해 지역 관광과 산업을 활성화시킬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죠.

하지만 서울의 인구나 산업 규모 등을 감안할 때 과잉 투자라는 주장과 전체 도시계획 관점에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회의론도 만만치 않습니다.

정석 서울시립대 교수는 "마천루는 기본적으로 자기를 드러내는 건물"이라며 "때문에 특히 민간 기업에서 선호하고 건축 기술을 드러내는 과시용으로 일부 전문가 집단에서 좋아하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습니다.

정 교수는 그러나 "다만 도시는 갤러리가 아니기 때문에 지나치게 튀는 초고층 건물 건설은 다수 시민과 미래 세대를 위해서 도시의 다양한 요소를 아우르며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실제 제2롯데월드 타워와 GBC, 최근 서울시장 선거판에 소환된 상암 DMC 초고층 빌딩의 경우 계획 단계에서부터 도시 미관, 경제적 효과와 안전성 등을 둘러싼 논란에 휩싸였고, 일부는 여전히 진행중입니다.

그 논란의 기록을 살펴봅니다.


제2롯데월드 타워, 30년 공들인 신격호의 꿈

2009년 4월 1일 한국일보 지면

2009년 4월 1일 한국일보 지면

'제2롯데월드 허용 최종결정'. 2009년 4월 1일 한국일보 1면에는 정부가 높이 555m, 지상 112층의 제2롯데월드 건축을 허용했다는 소식이 실렸습니다.

기사에 따르면 전날인 3월 31일 정부는 민관합동 행정협의조정위원회를 열어 건축 고도를 203m 이내로 제한한 결정을 철회했습니다. 초고층 건물이 비행 안전에 지장을 줄 수 있다는 국방부 의견으로 제2롯데월드 건축을 불허했던 2007년 7월 행정협의조정위원회의 결정을 2년 만에 뒤집은 결정이었습니다.

당시 롯데는 "완공 후 상시적으로 2만3,000여명을 고용하는 효과가 발생하고, 파리의 에펠탑 같은 서울의 랜드마크로 외국인 관광객이 연간 150만명, 2억달러 이상의 외화 수입을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초고층 랜드마크가 일자리 창출과 지역 경제에 도움이 될 거란 기대였죠.

사실 제2롯데월드 건립의 시초는 1988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롯데그룹 신격호 회장은 "한국에 세계적인 랜드마크 타워를 건설하겠다"며 송파구 신천동 29번지 일대 8만7,603㎡를 서울시로부터 사들였어요.

이후 1994년 5월 서울시에 송파구 비행안전구역 바깥에 초고층 건축물을 지을 수 있는지 질의했고, "비행안전구역 밖 부지는 군용항공기지법상 해당 사항이 없다"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1995년 11월 최고 100층 높이 402m의 건물 설계안을 구에 제출했죠.

그러나 공군이 공개적으로 반발하면서 본격적으로 논란이 촉발됐습니다.

공군은 "제2롯데월드가 비행 안전을 위협한다"며 줄곧 반대 입장을 유지했고, 2006년 5월 서울시도 도시건축공동위원회에서 통과시켰던 건립 계획을 유보했어요. 이듬해 7월 결국 정부가 제2롯데월드 건립을 불허하기로 최종 결정하면서 제2롯데월드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는 듯했습니다.


MB, 취임하자마자 건설 허가...안전성 '논란'은 계속

2008년 5월 20일 한국일보 지면

2008년 5월 20일 한국일보 지면


하지만 2008년 이명박 정부 들어서 반전이 일어났습니다. 비행고도 제한을 이유로 타워 건설을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던 공군이 입장을 180도 바꾼 겁니다.

당시 기사에 따르면 이명박 당시 대통령이 취임 직후인 그해 2월 국방부 장관에게 제2롯데월드 건설에 대해 긍정적으로 검토하라고 지시한 것이 영향을 미쳤죠. 이후 공군은 롯데그룹이 비용을 부담한다는 것을 전제로 동편 활주로 각도를 3도 변경하기로 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첫삽을 떴지만 건설 과정도 순탄치 않았습니다. 공사장에서 여러 현장 노동자들이 사고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석촌호수는 수위가 낮아지고 건물에서 도로침하와 균열이 발견되는가 하면 주변 도로에서 다수의 싱크홀이 발생해 불안감을 높였습니다.

그런가 하면 롯데그룹이 제2롯데월드 건설과 관련해 정부로부터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도 끊이지 않았습니다. 이에 감사원도 나섰죠. 감사원은 결국 "이명박 정부가 제2롯데월드의 신축 허가를 내주는 과정에서 서울공항의 비행 안전성이 저해되는 점을 무시했다는 의혹은 근거가 없다"고 결론내렸습니다.


GBC를 최고 마천루로...정몽구의 꿈은 7년 만에 안갯속으로

2016년 서울 강남구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 부지를 방문한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 한국일보 자료사진

2016년 서울 강남구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 부지를 방문한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 한국일보 자료사진

현대차그룹이 서울 삼성동에 짓고 있는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 역시 화제가 됐습니다. 2014년 현대차 그룹은 무려 10조5,500억원을 들서울 삼성동의 옛 한국전력 부지(7만9,341㎡)를 사들입니다. 한전 부지는 서울 강남권에 마지막 남은 금싸라기 땅으로 평가받던 곳이었죠.

현대차그룹은 당시 한전 부지에 105층 규모의 초고층 GBC를 지어 한국판 아우토슈타트를 만들 계획이었습니다.

독일 볼프스부르크에 위치한 아우토슈타트는 출고센터, 박물관, 브랜드 전시관 등을 연계한 세계 최대의 자동차 테마파크입니다. 업무공간이 있는 폭스바겐그룹의 본사이면서 연간 200만명 이상이 방문하는 세계적인 관광명소가 됐죠.

현대차 그룹 역시 GBC를 건설해 서울 시내 곳곳에 분산돼 있는 계열사를 한곳에 집중시키고, 업무시설 외에도 숙박시설, 문화 및 집회시설, 관광휴게시설, 판매시설 등을 건설해 명소화한다는 구상이었어요.

계획대로면 제2롯데월드 타워보다 높은 최고 마천루, 세계적인 관광 명소가 탄생하는 것이죠. 정몽구 명예회장은 2016년 GBC 현장을 방문해 "GBC는 현대차그룹의 새로운 100년의 상징이자 초일류 기업 도약의 꿈을 실현하는 중심"이라며 강한 건설 의지를 보였어요. 이때만 해도 최고층 랜드마크의 탄생이 임박한 듯했죠.


강남구, 현대차에 "105층 계획 바꾸면 안 돼" 요구

강남구 삼성동과 송파구 잠실동 일대. 오른쪽 아래가 현대차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 부지다. 연합뉴스

강남구 삼성동과 송파구 잠실동 일대. 오른쪽 아래가 현대차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 부지다. 연합뉴스


하지만 최근 현대차 내부에서 변화의 기류가 감지됩니다. 당초 GBC를 105층 1개 동으로 건립할 예정이었지만 최근 70층 2~3개 동, 50층 3개 동 등으로 설계를 변경하는 안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고 합니다.

특히 이런 분위기 변화에는 지난해 10월 아버지 정몽구 명예회장에 이어 회장에 취임한 정의선 회장의 뜻이 적극적으로 반영됐다는 해석들이 나오고 있는데요.

이 같은 분위기가 전해지자 관할 지자체인 강남구와 구 의회가 반발하고 나섰습니다. 강남구 의회 소속 23명 의원은 17일 결의문을 채택하고 "현대차 그룹은 자사의 이익만 추구하지 말고, 수년간 주민들의 기대를 받으며 추친되어 온 대규모 개발 사업을 원안대로 진행해줄 것을 강력하게 촉구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현대차그룹은 명성과 실용성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할까요. 당초 계획대로 수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건립 비용을 부담하고서라도 서울서 가장 높은 빌딩의 상징성을 가져갈지 아니면 과감하게 비용절감이라는 실익을 선택할지 두고 봐야겠습니다.


백지화 '상암DMC 마천루', 기사회생 기로에

서울시 상암동 'DMC(디지털미디어시티) 랜드마크빌딩'의 용지공급 우선협상 후보사업자로 선정된 '서울랜드마크컨소시엄'(왼쪽)과 탈락한 `글로벌랜드마크' 측의 빌딩 조감도. 연합뉴스

서울시 상암동 'DMC(디지털미디어시티) 랜드마크빌딩'의 용지공급 우선협상 후보사업자로 선정된 '서울랜드마크컨소시엄'(왼쪽)과 탈락한 `글로벌랜드마크' 측의 빌딩 조감도. 연합뉴스

한때 서울시 최고층 빌딩이 될 것으로 관심을 끌다 결국 좌초한 '상암동 100층 랜드마크' 논란은 이제 시작입니다. 사실상 백지화 수순을 밞았다가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입길에 오르면서죠.

언론사와 미디어기업들이 입주해 디지털미디어시티(DMC)로 불리는 상암동의 '100층 랜드마크' 프로젝트의 시작은 20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오세훈 서울시장 재임기였던 2009년 이 일대에는 2015년 완공을 목표로 133층(640m) 높이의 초고층 빌딩 '서울라이트' 건립이 추진됐죠. 상암DMC 내 중심부 3만7,280㎡의 부지에 640m, 133층 규모의 초고층 빌딩을 짓는 사업이에요. 당시 서울시는 DMC에 랜드마크를 건립하기로 하고 대우건설 등 25개 출자사로 구성된 서울라이트타워에 부지를 매각하는 등 사업에 착수했습니다.

이후 사업성에 대한 회의론이 제기되다 결국 2012년 사업자의 토지대금 연체로 사업이 중단됐습니다.

5년 동안 방치되다시피했던 이 일대는 지난해 정부가 발표한 8·4 주택공급 대책에 주택 2,000가구 건설 부지에 포함됐습니다. 랜드마크 대신 임대주택을 짓는다는 소식에 이번엔 마포구 주민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나섰죠.

주민들이 주택 건설을 반대하는 데다 전임 시장 시절 중단됐다는 점이 반감으로 작용한 걸까요. DMC 마천루가 야권 후보들의 주요 공략지로 떠오르긴 했지만 수익성에 대한 회의론, 도시계획과의 일관성 등 여전히 논의해야 할 쟁점이 많습니다.

손효숙 기자
박서영 데이터분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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