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자 백신접종, 연기하지 말았어야 했다

입력
2021.02.18 00:00
27면
아스트라제네카 코로나19 백신 현품과 일체형 주사기. 연합뉴스

아스트라제네카 코로나19 백신 현품과 일체형 주사기. 연합뉴스


지난 15일 정부는 아스트라제네카 코로나19 백신의 65세 이상 접종을 충분한 근거가 확보될 때까지 잠정적으로 연기했다. 백신의 65세 이상 접종 여부가 특별히 관심을 모은 이유는 유럽 일부 국가에서 자료 부족을 이유로 사용을 보류하였기 때문이다.

우선 과학적 근거를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백신은 코로나19 감염 확률을 감소시키고, 입원이나 사망 등의 중증화를 줄이며, 다른사람에게 감염시킬 가능성을 줄이는 효과를 가져야 한다. 그리고 안전해야 한다. 최근 연구 결과를 보면 감염 예방 효과는 74.6% 이상 효과를 보이며 중증화 방지 효과는 매우 좋았다. 코로나에 감염되더라도 배출되는 바이러스의 양을 줄여 전파를 줄여주는 효과도 증명되었다.

그런데 이런 연구 결과의 대상자 가운데 70세 이상은 단 5%뿐이어서, 과연 노령자에게도 동일한 효과가 있는지가 쟁점이다. 물론 노령자에 대해 효과가 있다는 과학적 근거도 존재한다. 감염 예방에 중요한 항체 형성 능력은 고령자에서 크게 감소하지 않았다. 만약 65세 이상을 기준으로 효과가 급격히 감소한다면 그 이전의 50대부터 이런 경향이 관찰되어야 하지만 그런 현상은 발견되지 않았다. 또 영국에서 접종한 150만명을 검토한 결과 특별한 부작용은 발견되지 않았다.

정부는 백신의 안전성과 효과성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확보하기 위해 65세 이상 접종 연기를 선택했지만, 이는 오히려 백신에 대한 신뢰를 결정적으로 떨어뜨릴 수 있다. 이미 영국에서 접종 중인 백신이며, 세계보건기구(WHO)와 유럽 규제 당국이 승인한 백신이므로 그 효과와 안전성은 최소한의 기준을 넘었다고 봐야 한다. 정부 발표에서도 안전성, 면역 형성 능력에 대한 근거는 확보되었다는 표현이 수 차례 등장한다. 이 때문에 ‘안전하고 효과적이지만 근거가 모자라서 접종을 연기한다'는 말은 모순적으로 느껴진다. 이미 한 차례 고령층에게 접종이 연기된 백신을 나중에 어떤 근거를 바탕으로 접종을 권고할 수 있을지도 걱정스럽다.

이번 결정에도 불구하고, 아래와 같은 이유로 나는 이 백신이 큰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다음 유행까지 충분히 확보된 '유일한 백신'이라는 점이다. 3차 유행이 정점을 지났지만 아직 수백 명의 확진자가 발생하고 있다. 이번 주를 기점으로 사회적 거리 두기는 완화되었고, 규모와 시기의 예측은 어렵지만 4차 유행은 언제든 올 수 있다. 다음 유행에서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빠른 예방 접종이 필요하다. 65세 이상에 대한 접종을 보류한 나라는 거의 화이자 백신을 이미 도입하여 고위험군에 대한 접종을 하고 있다. 둘째, 백신의 효과는 유증상 감염 예방만이 전부가 아니다. 사망 등 중증코로나 예방도 중요한 효과다. 한정된 초기 도입분은 전적으로 사망자를 줄이고 의료체계를 보호하기 위한 목적이다. 이 백신은 이러한 목적으로 충분히 사용할 수 있다.

정부의 이번 발표는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미룬 것이다. 백신에 대한 신뢰와 조기 접종은 코로나 위기 극복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이지만 정부의 이번 결정은 신중한 판단이라기보다 백신 안전성의 문제로 오인될 가능성이 높다. 지금의 논란이 방역과 백신의 정치화에 따른 정치권과 언론의 책임이라는 의견도 있지만, 우리 사회에서 이런 의견 차이는 당연히 존재하며 이를 감수하는 것도 정부의 역할이다. 향후 백신 도입과 접종 과정에서 단기적 비판에 대한 두려움보다 장기적 이익을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하다.



정재훈 가천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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