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의 가치외교, 가볍게 봐선 안 된다

입력
2021.02.17 04:30
수정
2021.02.17 11:39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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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미 의회 상원 외교위원장 시절인 2001년 8월 한국 방문 당시 청와대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악수하는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미 의회 상원 외교위원장 시절인 2001년 8월 한국 방문 당시 청와대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악수하는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2021년 1월 6일. 미국 민주주의가 심각한 내상을 입은 날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탄핵안이 애초 예견대로 미 상원에서 부결됐지만 이미 그는 정치적으로 탄핵당했다. 이번 탄핵 절차는 결과와 상관없이 미국이 민주주의 지도국가로서 위신을 회복하려는 몸부림이었다. 공화당 매코널 상원 원내대표는 지난달 6일 의사당 난동 때 트럼프가 시위대를 칭송했다면서 “퇴임하며 우리의 제도들에 불을 질러 선거결과를 뒤집으려 했다”고 맹비난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초장부터 공세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과의 첫 통화에서 중국의 아킬레스건인 홍콩 인권활동가 탄압 문제와 신장 위구르족 참상을 끄집어냈다. 그는 시진핑과의 친분이 무색하게 위구르인 억압정책을 ‘집단학살(Genocide)’로 표현하는가 하면, ‘폭력배’라는 단어를 쓰며 시 주석을 비난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겐 야권지도자 나발니 독살 시도를 거론하고, 미얀마 군부쿠데타에 대해 “민주주의와 법치에 대한 직접 공격”이라고 규탄했다.

멀리는 우드로 윌슨 대통령에서 가깝게는 지미 카터 대통령까지 인권외교는 민주당 정부의 전통으로 여겨져왔다. 1977년 취임한 카터 전 대통령은 박정희 유신독재 정권에 인권문제를 들이대 강력한 압력을 가했다. 주한미군 철수 위협이 지렛대로 사용됐다. 한미정상회담 의제로 한국 인권문제가 포함됐고, YH사건과 김영삼 신민당 총재 제명 직후엔 글라이스틴 미 대사를 본국에 소환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실제 카터가 개입하면서 ‘3·1명동사건(유신정권 퇴진요구)’ 구속자와 긴급조치 위반자 16명의 석방이 이뤄졌다. 박정희 정권은 야당과 재야의 민주화투쟁을 ‘미국에 의지한 사대주의’로 매도하기도 했다.


1979년 6월 30일 당시 청와대에서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을 맞이하는 박정희 대통령. 한국일보 자료사진

1979년 6월 30일 당시 청와대에서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을 맞이하는 박정희 대통령. 한국일보 자료사진

그러나 미국 민주당의 인권외교는 편의에 따라 표변하는 이중성도 보여왔다. 유신정권 이상으로 포악했던 이란 팔레비 정권을 카터는 상대적으로 옹호했다. 냉전 시절 소련을 의식했을 것이다. 1977년 팔레비를 국빈으로 초대하고 한 달 후엔 직접 테헤란에 가서 양국 간 우의를 과시했다. 팔레비 왕정은 CIA와 이스라엘 모사드의 도움으로 ‘사바크’라는 초법적 정보기관을 만들어 반대파를 무자비하게 숙청하고 고문한 독재정권이었다.

미국의 양면성에도 불구하고 바이든 정부의 가치외교를 결코 가볍게 볼 순 없다. 대선과 의회 폭동으로 만신창이가 됐지만, 트럼프라는 선동가도 민주적 시스템을 거역할 수 없었다는 점이 여전히 미국 민주주의가 건재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와 인권을 정체성으로 삼는 문재인 정부가 바이든의 보편적 가치외교에 최소한 호응하면서 국익을 챙기는 게 현명하다. 바이든의 중국 인권에 대한 압박은 곧 북한이슈로 옮겨갈 것이다. 세계 민주주의 진영에서 유일하게 북한 인권 현실에 침묵하는 우리 정부의 선택은 한민족연대 공간에만 고립될 수 있다.

트럼프의 화려한 북미정상회담 시절 청와대와 백악관의 궁합은 맞아떨어졌을지 모르지만, 지금 바이든 정부는 전방위에서 한국을 의심하는 것으로 보인다. 당장 대북전단금지법에 관한 한국인권 청문회가 성사될 경우가 난감하다. 민주개혁진영 3기 정부로서 불명예를 돌파할 준비가 돼 있나.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싸워온 ‘김대중 정신’에 맞게 현 정부가 대처하고 있나. 의문이다.







박석원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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