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형감 잃은 언론 자유 제한

입력
2021.02.16 18:00
수정
2021.02.16 18:16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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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노웅래(가운데) 더불어민주당 미디어 언론 상생TF 단장이 9일 오전 국회에서 회의 결과를 설명하고 있다. 오대근 기자

노웅래(가운데) 더불어민주당 미디어 언론 상생TF 단장이 9일 오전 국회에서 회의 결과를 설명하고 있다. 오대근 기자


더불어민주당이 인터넷상 가짜뉴스를 근절하겠다며 징벌적 손해배상 도입을 추진, 언론 자유 위축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이 제도는 인터넷 이용자가 고의적인 거짓이나 불법 정보로 명예훼손 등의 피해를 입히면 손해액의 3배까지 배상토록 한다는 게 골자다. 특히 기존 언론뿐만 아니라 포털, 1인 미디어, 유튜버 등 이용자 전반을 대상으로 삼고 있어 뉴미디어 생태계 자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 민주당은 가짜뉴스 폐해의 심각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현행 제도에서 가짜뉴스를 처벌하는 규정이 약한 게 아니다. 인터넷에서 타인을 비방할 목적으로 거짓으로 명예를 훼손하면 7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명예훼손을 형사 처벌하는 나라가 선진국에 거의 없는데도 한국은 형법에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까지 두고 있으며, 인터넷상 명예훼손에 대해선 가중 처벌까지 하고 있다. 여기에 징벌적 손해배상제까지 도입되면 온갖 고소 고발이 난무해 뉴미디어 전반이 활기를 잃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 국경 없는 기자회(RSF)가 매년 발표하는 세계언론자유지수에서 한국은 2020년 기준 42위다. 박근혜 정부 때 보단 순위가 높아지긴 했으나 한국의 경제 규모를 고려하면 부끄러운 수준이다. RSF가 보고서에서 “구조적 문제가 남아 있다”며 지목한 게 명예훼손죄다. 보고서는 “명예훼손은 여전히 7년 징역 처벌이 가능한데, 이를 비범죄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국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실시되지만 우리처럼 명예훼손이 형사처벌 대상은 아니다. 여권이 이를 도입하려면 표현의 자유와 명예훼손 간 균형을 위해서 법 체계 전반을 손질해야 한다.

▦ 민주당이 지난해 통과시킨 대북전단금지법을 두고서도 미국 의회에서 표현의 자유 침해 우려가 제기됐다. 미국 국무부 동아태 부차관보에 임명된 정박 브루킹스연구소 한국석좌도 기고문을 통해 한국 정부가 국민의 자유를 선택적으로 억압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번 논란은 인권과 민주주의를 강조하는 바이든 새 행정부가 문재인 정부를 바라보는 또 하나의 프리즘이 될지 모른다.



송용창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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