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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폐 공간에 있었고 손 묶여… 강간 시도 남성 혀 깨문 건 정당방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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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혀 절단은 여성이 즉각적으로 유효하게 방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성폭행 저항 과정에서 남성의 혀를 깨물어 절단한 여성에 대해 검찰이 정당방위를 판단한 사건과 관련해, 피해 여성 측의 불기소 이유통지서에는 혀 절단 행위가 정당방위로 인정된 이유가 자세히 적혀 있었다. 밀폐된 차량에서 청테이프로 결박돼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에서 혀를 깨문 행위에 대해선 죄를 물을 수 없다는 것이다.
지난해 7월 19일 친구들과 부산으로 여행을 떠난 여대생 김수정(가명)씨는 생면부지의 30대 남성이 만취 상태인 자신을 차량에 태워 산길로 이동한 뒤 강제로 키스를 시도하자, 그의 혀를 깨물어 절단했다가 남성으로부터 중상해 혐의로 고소를 당했다.
가해 남성은 여성 동의 하에 키스한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불기소 통지서에 따르면 남성은 처음부터 불순한 의도를 갖고 여성에게 접근한 것으로 밝혀졌다.
16일 한국일보가 입수한 피해 여성의 불기소이유 통지서에 따르면, 남성은 일요일 새벽 4시 거주지에서 나와 부산 서면의 유흥가로 향했고, 6시쯤 이 일대에 도착한 뒤 2시간 동안 여기저기에 차를 대고 거리를 배회했다. 남성은 오전 8시쯤 의류매장 앞에서 술에 취해 앉아 있는 여성을 발견하고 접근한 뒤, 8시 30분쯤 다시 여성에게 다가가 "데려다주겠다"며 조수석에 태웠다. 여성은 차량 안에서 “기사님 어디 가세요?”라고 묻는데, 만취 상태에서 남성 차량을 택시로 착각한 것으로 보인다.
남성은 잠든 여성을 태우고 운전하다 편의점 등을 들러 소주 3병과 청테이프, 콘돔을 구입했다. 구입 직후엔 부산 황령산 등산로에 차를 세웠다. 데려다 주겠다며 여성을 태워놓고선, '카 섹스'로 유명한 외진 장소로 향한 것이다.
차량 안에서 청테이프로 여성을 결박한 남성은 강제로 키스를 시도했다. 여성이 반항하며 혀를 자르자 청테이프를 제거한 뒤 부산 광남지구대로 향했다. 여성이 자신의 혀를 절단시켜 중상해를 입혔으니 처벌해달라고 신고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남성의 적반하장식 행각은 경찰과 검찰의 치밀한 수사로 들통났다. 편의점 결제 내역, 군데 군데 남겨진 조수석의 청테이프 자국, 조수석과 뒷자석에서 발견된 혈흔, 차량 블랙박스에 녹음된 음성은 남성을 성폭행 범인으로 가리키고 있었다. 검찰은 “남성이 여성을 청테이프로 결박한 후 강제 키스를 시도했고, 여성이 이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남성의 혀를 자른 것으로 인정된다"고 밝혔다.
검찰은 불기소 통지서에서 여성의 혀 절단은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려는 남성의 부당한 행위를 막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규정했다. 만취해 잠든 피해 여성은 전혀 모르는 사이인 남성과 밀폐된 차량에 단 둘이 있었으며, 청테이프로 결박돼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에서 입 안에 남성의 혀가 들어오자 본능적으로 혀를 깨물었다고 본 것이다. 검찰은 "혀 절단 행위는 여성 입장에선 즉각적으로 유효하게 방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보이기 때문에 죄가 되지 않는다"고 결론 내렸다.
검찰 판단은 법조계와 여성계의 전문가 의견과도 대체로 일치했다. 여성이 처음 본 남성에게 인적이 드문 곳에 세워진 차량 안에서 강제로 키스를 당해 도움을 요청하기 힘든 상황이었고, 혀 절단 이후엔 공격 행위를 멈췄기 때문에 과잉방위로 보기도 어렵다는 설명이었다. 두 사람이 평소 친분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구조요청이 가능한 공개된 장소에서 성폭력이 발생하지 않은 점도 혀 절단을 정당방위로 봐야 하는 이유로 꼽았다.
정춘숙 국회 여성가족위원장은 “그 동안 피해자가 가해자로 둔갑하는 황당한 일들이 벌어져온 걸 감안하면 새로운 장면이 열린 것”이라며 “성폭력 사건에서 피해자가 적극적으로 대응한 게 정당방위로 인정 받은 의미 있는 결론”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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