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갑차 앞에서 기념 촬영'... 미얀마 양곤은 겁먹지 않았다

입력
2021.02.15 19:00
수정
2021.02.15 21:21

도심에 軍병력 도열, 강경진압 예고했지만…?
시민들 병력 옆에서 평화시위 열흘째 이어가?
구금 연장된 수치 석방 여부 정국 최대 '뇌관'

15일 베트맨 복장을 입은 미얀마 양곤의 한 시민이 도심에 도열된 군용 트럭 옆에서 '군부 종식' 팻말을 들어 보이고 있다. 양곤=AFP 연합뉴스

15일 베트맨 복장을 입은 미얀마 양곤의 한 시민이 도심에 도열된 군용 트럭 옆에서 '군부 종식' 팻말을 들어 보이고 있다. 양곤=AFP 연합뉴스


미얀마 민주화의 성지이자 최대 도시인 양곤 중심가에 버젓이 장갑차가 배치됐다. 군부의 진압을 예고하는 상징물이지만 시민들은 겁먹지 않았다. 오히려 그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쳤다. "시민 불복종 운동(CDM)에 동참하라!", "군정을 종식시키자!"

15일 미얀마나우 등 현재 매체와 미얀마 주재 한국 대사관 등에 따르면 군부는 그간 양곤 인근에 주둔시켰던 군 병력과 장갑차를 전날 밤 시청과 중앙은행 등 도심에 배치했다. 군인들도 시위 현장에 등장했다. 군인과 경찰의 야간 주택가 순찰도 시작됐다. 간밤엔 8시간이나 인터넷이 끊겼다. 군부가 일촉즉발 상황을 연출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양곤은 1988년 민주화를 요구하던 수백명이 군부의 탄압으로 스러진 '88항쟁'의 성지라는 점에서 이날 도심 장갑차 등장은 의미가 남다르다.

그러나 양곤 시민들은 인터넷이 복구된 오전 9시쯤부터 다시 거리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군부가 전날 체포영장 없이도 시위 참가자를 체포할 수 있도록 개정한 시위법 시행령을 공표해, 연휴 시위 때보다 인원은 20~30% 줄었지만 열기는 그대로였다.

집회 방식도 평화 시위를 유지했다. 불복종 운동 동참 팻말을 든 어린 학생과 베트맨 복장을 한 청년부터 사신(死神) 메이크업을 한 총파업 가담 국립병원 간호사까지 각계각층이 자유롭게 마치 축제를 즐기듯 시위장에 모였다. 일부는 장갑차 앞에서 기념 사진을 찍고, 트럭에서 대기하던 군인들에게 "우리 목소리가 잘 들리냐"고 말을 걸기도 했다.

15일 어린 학생들이 미얀마 양곤 도심에 진입한 장갑차 앞에서 '시민 불복종 운동에 동참하자'는 팻말을 높이 들어보이고 있다. 양곤=EPA 연합뉴스

15일 어린 학생들이 미얀마 양곤 도심에 진입한 장갑차 앞에서 '시민 불복종 운동에 동참하자'는 팻말을 높이 들어보이고 있다. 양곤=EPA 연합뉴스

시위 현장에서 군부의 움직임은 아직 없다. 다만 군부는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의 자택 구금을 17일까지 연장하고, 이날 예정된 첫 재판도 미뤘다. 군부가 시위 현장에서 자제하면서 미얀마의 반(反)쿠데타 시위는 열흘째로 접어들었다. 수도 네피도와 북부 까친주 미치나, 서부 라카인주 시트웨 등에서도 시위가 이어졌고, 일부 지역에서 국지적 충돌도 빚어진 것으로 보인다. 현지 매체가 "제2의 도시 만달레이에서 보안군이 시위대 해산을 위해 총격을 가했다"고 보도했다.

현지에선 17일로 미뤄진 수치 고문의 구금 해제와 수출입법 위반 혐의 첫 재판이 향후 정국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군부가 시위 진압에 나선다면 자칫 파국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해외 공관들은 이미 자국민 단속에 나서고 있다. 미얀마 주재 미국 대사관은 이날 "군의 무력 사용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만큼 당분간 집에 머물라"고 공지했다. 한국 대사관 역시 교민들에게 외출 자제를 당부했다.

하노이= 정재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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