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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화의 존재감을 따지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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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존재감이 없다”는 강경화 전 외교부 장관을 향한 세간의 평가는 3년 8개월간의 재임 기간 내내 이어졌을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특히 2018~2019년 이어진 이른바 ‘한반도의 봄’ 정국에서 응당 나타났어야 할 외교부 장관의 역할이 보이지 않았다는 지적이 가장 많았다. 이제는 정설이 되어버린 그를 향한 이 같은 평가는 과연 합당한 것이었을까.
비핵화 협상 정국에서 그가 소외돼 있었던 점은 사실에 가깝다. 하지만 조금 더 잘 들여다보면, 강 전 장관 개인의 존재감이 없었다기보단 외교부 자체의 역할이 크지 않았던 측면이 커 보인다.
평양과 워싱턴을 오가며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의지를 양측에 전달한 인물은 정의용 당시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었다. 평창 올림픽에서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까지 걸린 시간이 불과 4개월이다. 외교 당국 간 협의를 거쳤다면, 어림도 없었을 시간이다. 단숨에 서로 만나겠다는 두 정상의 의지를 확인시켜야 할 물밑 플레이어가 필요했고, 문재인 정부는 국가안보실장에게 이를 맡겼다. 애당초 ‘톱다운(Top-down)’으로 설계된 협상 판에 외교부의 역할은 작을 수밖에 없었다.
같은 맥락에서 강 전 장관의 카운터파트였던 렉스 틸러슨·마이크 폼페이오 당시 미 국무장관의 존재감도 크지 않았다. 청와대-백악관 간 직접 소통 채널이 구축됐던 만큼 외교부-국무부 채널의 역할은 밋밋했다. 심지어 사상 첫 북미 정상회담 일정이 발표됐을 당시 틸러슨 국무장관은 아프리카 지역 순방 중이었다.
비핵화 협상 바람을 타고 남북관계를 견인했어야 할 조명균·김연철 당시 통일부 장관의 존재감도 크지 않긴 마찬가지였다. 한반도 훈풍의 주인공은 남북의 두 정상이었고, 누구도 “통일부 장관은 안 보이네”라고 하지 않았다. 존재감 타령은 공연히 강 전 장관에게 쏠렸다.
굳이 ‘옅은 존재감’의 이유를 찾아야 한다면, 현 정부 내부 소통에서부터 그가 배제된 탓도 있다. 지난해 9월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직후 열린 심야 장관회의에 강 전 장관은 참석하지 못했다. 누구도 강 전 장관을 부르지 않아서다. '패싱' 당한 게 아니냐는 야당의 질타가 나오자, 강 전 장관은 “국가안전보장회의에서 (서훈 국가안보실장에게) 정식으로 문제제기 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11월 박지원 국정원장이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총리를 방문했을 때도 비슷하다. 국정원장의 일본 총리 방문을 응당 미리 알고 있어야 할 강 전 장관은 당시 한 방송 인터뷰에서 “외교부와 충분히 협의된 것은 아니다”고 했다. 사실상 박 원장을 향한 불만 제기였다.
“왜 나를 배제했냐”고 상관(또는 동료)에게 따져야 하는 강 장관을 향한 ‘존재감 비판’은 과연 온당한 것일까. 강 장관을 비판하기 이전에 현 정부가 임명한 장관이 현 정부의 주요 정책 결정에서 배제된 이유를 따지는 게 올바른 순서가 아닐까. 출중한 실력을 갖췄지만, 세상이 그를 몰라줬다는 게 아니다. 한 나라 외교장관의 존재감이 의심될 정도였다면, 외교 정책을 결정하는 과정 자체가 잘못됐을 가능성도 있다는 얘기다.
지난주 외교부를 떠나는 그를 향해 외교부 출입기자들이 격려의 박수를 보냈다. 강 전 장관은 “이제서야 박수를?” 이라며 웃었다. '이제서라도' 그에 대한 그간 평가를 되짚어 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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