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성⸱귀경 전쟁 종식법

입력
2021.02.11 04:3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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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2018년 추석연휴 귀성전쟁의 한 장면. 경부고속도로 궁내동 톨게이트 부근 하행선 도로가 귀성 차량들로 빼곡히 차 주차장을 연상케 한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2018년 추석연휴 귀성전쟁의 한 장면. 경부고속도로 궁내동 톨게이트 부근 하행선 도로가 귀성 차량들로 빼곡히 차 주차장을 연상케 한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작년 추석 ‘불효자는 옵니다’ 플래카드에 이어 이번 설엔 ‘님아 ○○IC(나들목)를 건너지 마오’ 같은 현수막이 타지 자식들의 고향방문 저지에 나섰다고 한다. '만남보다는 마음으로 함께 해달라'는 당국의 심심한 당부도 있다. 그래도 설은 설이다. 어떤 가족은 줌(Zoom)과 같은 화상회의 애플리케이션으로 한자리에 모여 차례를 지낸다고 한다. ‘5인 이상 모임 금지령’ 저촉을 피하면서도 부모님 댁을 방문하겠다며 순번 예약제를 도입한 형제들도 있단다.

이런 노력 덕일까. ‘귀성 전쟁' 소식은 아직 들리지 않는다. 설연휴 하루 전인 10일에도 서울역은 한산했고, 경부고속도로도 예년만큼은 붐비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그러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가 물러나면 우리는 다시 ‘민족 대이동’ 대열에 합류하게 될 것이다. 서울이 고향이거나, 나고 자란 곳과 멀지 않은 곳에서 일터를 잡은 이들이 아니고서야 귀성·귀경 전쟁을 다시 치를 수밖에 없을 것이란 이야기다.

나라, 문화별로 다양한 이름의, 우리 설과 추석에 해당하는 명절이 있고, 그때 가족, 친인척 회동으로 그들의 도로도 몸살을 앓지만, 균형 발전을 이룬 선진국들의 몸살은 한국처럼 전국적이지 않다. 지붕에까지 귀성객을 싣거나 난민촌을 연상케 하는 기차를 타고 며칠을 달려야 고향에 닿을 수 있다는 나라의 이야기를 듣고 위안 삼는 이들이 있을까마는, 우리와 그들의 귀성·귀경 전쟁 배경에는 공통점이 있다. 나고 자란 고향에서는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없고, 좋은 일자리를 찾을 수 없어 고향을 등질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최근 부산, 울산, 경남을 중심으로 급물살을 타고 있는 동남권 메가시티 논의가 스친다. 요약하면 대학과 기업, 인재가 수도 서울과 그 주변 도시인 경기도로 몰리고, 이 수도권이 반세기 이상 멈출 줄 모르는 성장을 하는 사이 지방은 고사, 소멸 위기에 처했다. 이에 동병상련의 지자체들이 연대해 몸집을 키워서 수도권과 ‘맞짱’을 한번 떠보겠다는 것이다. 광역교통·관광·경제산업은 물론 시·도 단위로는 대응이 아예 불가능한 미세먼지, 원전사고 등의 재난에도 대응할 수 있는 협력체계를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수도권이 블랙홀로까지 불리는 현실을 감안하면 쉽지 않다. 그러나 작년 말 국회가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을 통해 복수의 지자체 위에 ‘특별지자체’를 만들 수 있도록 그 틀을 만들어놓은 만큼 동남권 메가시티 구축이 불가능하지는 않다. 대구시와 경북도는 이 협력의 단계를 뛰어넘어 아예 행정통합을 추진하고 있는 점도 주시할 필요가 있다.

지방의 규합과 이를 통한 도전 움직임에 수도권이 실눈을 뜨고 볼 필요는 없겠다. 매년 8만명에 이르는 청년들이 서울과 경기로 몰리면서, 열거하자면 입이 아플 정도로 많은 폐해를 겪고 있는 수도권이다. 서울로 가지 않더라도 나고 자란 곳에서 공부하고 취업해서 잘 살 수 있는 또 다른 ‘수도권’이 곳곳에 생겨야 수도권도 살 수 있다. 메가시티가 인구 1,000만 이상의 도시를 칭하는 말이긴 하나, 수도권에 대적할만한 동남·서남·동부권 메가시티가 생긴다면 귀경?귀성 내전은 끝나지 않을까.

정민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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