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장을 위한 변명

입력
2021.02.09 18:00
26면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9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으로 출근하고 있다. 뉴스1

김명수 대법원장이 9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으로 출근하고 있다. 뉴스1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한다. 앞에서는 이 말 하고, 뒤에서는 딴 말하고.”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가 “불분명한 기억에 의존했다”는 김명수 대법원장의 ‘거짓 해명’ 사과에 대한 생각을 묻자 한 말이다. 대법원장과의 대화 녹취 및 공개에 대한 이유지만, 이 한마디는 ‘김명수 사법부’ 체제 이전 주류 법관들의 김 대법원장에 대한 불신과 반감을 함축한다.

□김 대법원장 취임 후 사법부는 격랑에 휩싸였다. 소장 판사들의 사법 농단 실체 규명 및 연루 법관 징계ㆍ처벌 요구가 높아지고 노장 법관들의 저항도 거셌다. 사법 농단이 공식 조사와 문건으로 뒷받침됐어도 고위 법관들은 “형사 조치는 부적절하다”며 집단 반발했다. 김 대법원장이 검찰 손을 빌리고서야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 전·현직 법관 14명이 법정에 섰다. 내부 반발에 밀려 사법부 힘에만 기대려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기소된 14명 중 4명이 1심, 2명이 1ㆍ2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것은 김 대법원장에겐 불리한 결과다. 하지만 이는 법의 한계로 사법 농단 행위를 처벌할 수 없다는 의미일 뿐, 재판 거래ㆍ개입의 실체는 공판을 거치며 선명해졌다. 특히 임 부장판사 1심 재판부가 판결문에서 그의 재판 거래ㆍ개입을 “법관 독립을 침해한 헌법 위반 행위”라고 6차례나 지적해 국회의 법관 탄핵소추 의결로 귀결된 것은 사법 개혁 측면에서 의미가 크다.

□법관 탄핵은 그 행위 자체로만 가부(可否)와 시비(是非)를 평가할 일이 아니다. 법관 독립과 직결되는 사안의 민감한 특성상 법관 탄핵은 전후 사정과 맥락을 모두 감안해야 한다. 사법농단에 대한 법적 처벌이 어렵다면 탄핵 사례를 통해서라도 반면교사로 삼는 것이 법관과 재판의 독립 보장이라는 사법개혁의 방향과 헌법 정신에 부합한다. 김 대법원장이 공언해온 ‘법관에 대한 부당한 외부 공격에 단호한 대처’가 진심인지, 사직으로 위기를 피하려는 사법 농단 연루 후배 법관을 주저앉히려 단 둘이 앉은 자리에서 말한 법관 탄핵 관련 언급이 진심인지는 아직 헤아리기 어렵다. 의문에 대한 답은 김 대법원장 임기가 끝난 뒤 그의 사법 개혁 성과에 대한 평가에 달렸다.

황상진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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