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자에는 작은창자와 큰창자가 있다. 작은창자는 위에서 전달된 음식물 대부분을 소화, 흡수하는 곳이고, 큰창자는 작은창자에서 넘어온 음식물에서 물을 흡수하고 남은 찌꺼기를 대변의 형태로 항문을 통해 내보낸다.
작은창자가 음식물을 소화, 흡수하는 곳이라고 큰창자로 전달되는 모든 음식물이 다 소화된 상태는 아니어서 큰창자까지 온 음식물에는 아직 영양분이 남아 있다. 이 영양분은 큰창자에 있는 세균들이 분해하여 사용한다. 이 분해 과정에서 가스가 생성되는데, 이것이 방귀의 주성분이다.
큰창자에 있는 세균을 몸의 건강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는 ‘좋은 균’, 몸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는 ‘나쁜 균’, 그리고 우세한 균의 편을 드는 ‘눈치 보는 균’의 세 부류로 구분할 수 있는데 이들 사이의 균형이 잘 유지되어야 창자의 상태가 건강하게 유지되고, 변비나 설사가 아닌 제대로 된 대변을 만들 수 있다. 대변은 배설되기 전까지 큰창자의 마지막 부분인 곧창자 즉 직장에 보관된다. 곧창자의 ‘곧’자는 ‘곧다’의 어간으로 잘룩한 부분이 없이 곧게 뻗은 겉모양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우리 사회에는 많은 문제가 생기지만, 대부분은 도덕, 윤리, 관습 등을 통한 사회적 합의를 통하여 해결한다. 그러니 이런 사회적 합의는 우리 사회를 더 건강한 사회로 만들고 유지하는 영양분을 소화, 흡수하는 기능이라 할 것이다. 가끔 법적인 판단이 필요한 경우가 생기는데 법적인 판단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고 법원에서 판사만이 내릴 수 있다.
법원에서 판사들은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윤리나 정치적 기준이 아닌 법이라는 기준을 이성적으로 엄격히 적용하여 판단하기 때문에 법원의 판단은 다른 어떤 판단보다도 권위가 있고 모든 국민이 승복한다. 판사들의 판단은 궁극적으로 이 사회의 투명도와 공정함의 기준을 정하는 것이다.
큰창자 안의 세균이 세 부류가 있듯 판사도 사람인지라 좋은 판사도 있을 것이고, 나쁜 판사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또 그 중간에서 힘 있는 쪽에 붙어서 눈치를 보는 판사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좋은 판사, 나쁜 판사로 구분하는 것은 실제 판사가 좋고 나쁜 것이라기보다는 그들이 내린 판단이 그것을 보는 사람들의 마음에 드느냐 들지 않느냐에 따른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법을 해석하는 것과 적용함에는 판사마다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판사들의 균형 감각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속담에 “곧은 창자다”라는 것이 있는데 거짓말을 할 줄 모르는 대쪽 같은 성격을 지닌 강직한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다. 곧창자는 겉은 곧지만 속에는 음식물의 찌꺼기인 대변을 모아둔 곳이니 솔직히 지저분한 느낌이 든다. 법원까지 가는 문제들 대부분이 사회에서 해결하지 못한 것들이고, 판사들은 심리 결과에 따라 사회에 해가 되는 범죄자를 사회로부터 격리하는 결정을 하는 것이니, 이런 측면에서 법원의 판사는 큰창자에 있는 세균들과 비슷하고, 재판 과정은 대변을 만드는 과정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대변은 곧창자에 저장되어 있다가 몸 밖으로 내보내는데, 이 과정을 배변이라 하고, 우리는 “똥을 눈다” 혹은 “대변을 본다”라고 표현한다. 정상적으로는 사람의 의지로 배변을 조절하기 때문에 아무 때나 아무 곳에서나 변을 보지는 않는다. 그런데 창자의 상태가 좋지 않으면 우리의 의지로 배변을 조절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즉 똥이 나오는 것을 참지 못하고 의지와 달리 항문을 통해 새어나오는 경우가 생기는데, 양이 적으면 “지린다”라고 하고 양이 많으면 “싼다”라고 한다.
최근 법관 중 한 명은 정치적 성향이 강하다고 국회에서 탄핵을 당하였고, 법원의 책임 있는 분은 그 일과 관련하여 거짓말을 한 것이 드러났다. 필자는 이번 일의 원인이 정치에 좌우되지 않는 강건하고 올곧아야 하는 판사들의 기준이 균형을 잡지 못하고 흐트러진 탓이라고 생각한다. 적나라하게 말하면 사법부가 균형 감각을 잃어서 똥을 지린 것이다. 왜 똥을 지렸는지 원인을 잘 파악하여 해결하지 않으면 다음에는 똥을 싸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 법조계가 나락으로 떨어질지 국민들의 믿음을 회복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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