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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소울'에서 엿 본 청년의 두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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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최근 펑펑 울어본 기억이 언제이신가요? 저는 보름 전 영화 '소울(soul)'을 보던 때였습니다.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작품인데요. '니모를 찾아서' '업(up)' '인사이드 아웃' 등 동화 같은 그림체에, 인생을 관조하는 깊은 철학을 담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어린이들이 보면 웃고, 어른이 보면 우는 작품이 많은 것으로도 알려져 있는데요. 이 작품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끅끅 소리를 내며 오열하던 제가 고개를 살짝 드는 순간, 영화관 내 모두가 어깨를 들썩이는 진풍경을 목격했을 정도니까요. 도대체 무슨 내용이길래 싶으시다고요?
영화는 두 명의 주인공이, 두 개의 세계를 오가며 벌어지는 일들을 그리고 있습니다. 우선 두 개의 세계부터 볼까요? 우리가 사는 현실 세계가 있고요. 영혼의 세계가 있습니다. 영혼 세계에는 관리자들이 있는데요. 망자를 저승으로 보내는 역할,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기 영혼들을 돌보아 지구로 보내는 역할 등이 있습니다. 비유하자면 저승사자와 삼신할머니일까요? 그런데 독특한 역할이 하나 있습니다. 망자와 아기 영혼들을 멘토 - 멘티로 연결해주고 모니터링하는 '교육 담당자'가 있다는 점이지요. 아기 영혼들은 살아 있는 동안 위대한 업적을 쌓은 멘토와 매칭되고요, 그들과의 교감 속에서 '살아야 할 목적'을 발견하게 되면, 태어날 자격을 부여받습니다.
영화 속 주인공은 바로 이 시스템 속에서 '교육담당자'의 실수로 잘못 매칭된 멘토와 멘티입니다. 멘토인 조 가드너는 위대한 업적은커녕 자신의 꿈조차 포기하려던 청년입니다. 꿈은 재즈 피아니스트이지만, 번번이 오디션에서 탈락하고 방과 후 교사로 살아가던 중이었는데요. 진짜로 꿈꾸던 오디션 합격 통보를 받은 날, 핸드폰만 보며 걷다 맨홀에 빠져 죽어 버립니다. 멘티인 영혼 22호는 세계적인 위인들을 멘토로 붙여줬을 때조차 "살아가는 건 끔찍한 일이야. 당신도 날 설득 못 시킬걸?"이라며 수많은 멘토를 나가떨어지게 하며 수천 년 동안 태어나길 거부한 문제아 영혼입니다. 이야기는 이 두 사람, '꿈을 이루기 전까진, 내 삶은 모든 게 무가치해'라고 생각하던 청년 조 가드너와 '삶이란 거 다 고통과 허망함으로 가득 찬 거 아니야?'라고 생각하던 아기 영혼 22호가 서로 티격태격하는 과정에서, 그들이 생각하는 '삶의 의미'가 점차 바뀌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누군가는 '꿈쟁이' 조 가드너에 이입해서, 또 다른 누군가는 22호가 딱 나 같다며 몰입하다, 그들이 각기 가지고 있던 편견을 깨며 비로소 각자 삶의 의미를 새롭게 정의할 때, 함께 깨닫고 눈물이 터져버리는 것이지요. 그래서 저는 누구에 감정이입해 울었냐고요? 그건 비밀입니다. 대신, 이 영화가 저를 포함한 그토록 많은 이들을 울린 이유에 대한 추측으로 글을 마무리하고 싶네요. 이 영화 속 두 주인공이야말로 한국 사회 청년들의 양극화된 모습을 대변하는 존재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뤄내야만 행복해진다"며 성취에 모든 것을 거는 청년, 또 한편에서는 "무슨 짓을 해도 달라지지 않는다"며 줄지어 세상을 떠나는 청년 말입니다. 너무 열심히 사는 청년, 무력감의 늪에 빠진 청년. 두 집단에 어쩌면 영화는, 사회가 전해주지 못한 '진짜 위로'를 건넨 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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