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류독감? AI? 뭐가 맞나요...부처 간 ‘딴소리’ 하는 정부

입력
2021.02.13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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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식품부 "AI" vs 문체부 "조류독감"

조류인플루엔자(AI) 영향으로 계란 가격이 고공행진을 지속하고 있는 가운데 가격 안정을 위해 긴급 수입한 미국산 계란이 대형마트에 등장했다. 7일 서울 강남구의 한 대형마트에 미국산 계란이 판매되고 있다. 뉴스1

조류인플루엔자(AI) 영향으로 계란 가격이 고공행진을 지속하고 있는 가운데 가격 안정을 위해 긴급 수입한 미국산 계란이 대형마트에 등장했다. 7일 서울 강남구의 한 대형마트에 미국산 계란이 판매되고 있다. 뉴스1

"보도 시 '조류독감' 용어 사용을 자제하고, 법정용어인 '조류인플루엔자(약칭: AI)'로 사용해 주실 것을 요청드리니 적극 협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야생조류 분변에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바이러스가 검출되며 농가 방역에 비상이 걸렸던 지난해 10월 27일. 농림축산식품부는 한국기자협회·한국방송협회·출입기자단 등에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공문과 문자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AI 관련 기사를 작성할 때 흔히 사용하던 '조류독감'이란 표현 대신 '조류인플루엔자' 혹은 약칭인 'AI'를 써달라는 취지였죠.

이 같은 요청의 이유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독감'이란 통상 사람에게 나타나는 인플루엔자 감염증을 이르기 때문에 닭, 오리 등 가축에는 '감기' '독감'이란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또 AI와 독감은 원인 바이러스의 종류 자체가 다르다는 게 농식품부의 설명입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지난해 10월 27일 기자단에 보낸 문자.

농림축산식품부가 지난해 10월 27일 기자단에 보낸 문자.


여기에 농식품부가 특히 걱정했던 점은 따로 있었습니다. 바로 "사람에게 오는 독감과 같은 질병으로 오인해 축산물 소비 감소가 우려된다"는 점이었죠. 실제 '조류독감'이란 표현이 널리 사용됐던 2016, 2017년 AI 사태 때는 닭고기 매출이 10% 넘게 쪼그라들기도 했습니다. 이 때문에 AI로 육계가 대량 살처분돼 공급이 줄었지만, 수요가 더 크게 부진해 닭고기 가격은 오히려 내려갔습니다.

반면 올해는 양상이 조금 다릅니다. 농식품부 공식 자료는 물론, 언론 기사에서도 '조류독감'이란 단어를 찾기 어렵습니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해 농업인의 날 기념식 축사에서 '조류인플루엔자'라고 표현하며 힘을 실었습니다. 그 덕분일까요. 최근 고병원성 AI 발생 농장이 100곳에 육박하고 있지만, 닭고기가 팔리지 않거나 가격이 하락했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육계 살처분으로 공급이 줄면서 가격이 평년보다 10% 넘게 올랐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달 보낸 메일. 온라인 캡처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달 보낸 메일. 온라인 캡처


하지만 복병이 있었습니다. 바로 문화체육관광부가 다른 의견을 내고 있는 것이죠. 공공언어 개선 등을 담당하는 문체부와 국립국어원은 'AI'란 단어가 들어간 기사에 대해 "외국어를 잘 모르는 국민도 기사 내용을 분명하게 알 수 있게 해달라"며 AI를 '인공지능' 혹은 '조류독감'으로 바꿔 달라는 안내 메일을 보내고 있습니다.

국립국어원 관계자는 농식품부와 용어 통일이 되지 않았다는 지적에 대해 "당연히 법정용어(조류인플루엔자·AI)를 따르는 게 맞아 보인다"며 "시스템상에서 'A라는 용어는 B로 대체하라'는 식으로 반자동 처리해놓은 것이 있는데, 그 목록에서 (AI를) 뺀다든지 내부 회의를 거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공무원들이 왜 더 협조를 안 해주는지"라며 농식품부로부터 'AI를 사용해달라'는 공문을 직접 전해 받지 못한 것에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세종= 손영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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