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

단독

김명수·임성근 사태, 할 말 많지만 '잠잠한' 법원... 판사들 속내는?

입력
2021.02.09 04:30
4면
구독

법원 내부망 "정치화 우려" 글 고작 2건
정치논리 오독 우려… 입장 자제하는 듯
대표성 없는 익명 카페엔 "김명수 사퇴"

김명수 대법원장이 8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으로 출근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김명수 대법원장이 8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으로 출근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김명수 대법원장의 ‘탄핵 발언’ 논란에 야권과 보수층을 중심으로 사퇴 압박까지 나오고 있지만, 의외로 법원 내부는 잠잠하다. 물밑 논의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눈에 드러나는 방식으로 판사들이 집단적 목소리를 내거나 행동에 나설 조짐은 아직 포착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이 같은 ‘침묵’의 주요 원인으로는 우선 사회적 논쟁과 관련, 법관의 공개적 의사 표명이 ‘정치 논리’로 오독될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꼽힌다. 또, ‘임 부장판사 탄핵 심리’가 헌법재판소에서 이미 시작된 상황에서 어떤 식이든 의견 표출은 부적절하다는 인식도 있다.

8일 법조계에 따르면 이번 파문에 대해 법원 내부망(코트넷)에 게시된 글은 정욱도 대구지법 부장판사와 윤종구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각각 작성한 2건이 전부다. 앞서 정 부장판사는 지난 4일 현 상황의 ‘지나친 정치화’를 우려하는 글을, 윤 부장판사는 5일 ‘법관 사임은 기본권’이라는 취지의 글을 썼다. 동조든 반박이든, 해당 게시글 2건에 달린 댓글도 아예 없다. ‘관망 모드’가 대다수 법관들의 기류인 셈이다.

8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 '김명수 자진사퇴' 등 김명수 대법원장을 비판하는 근조 화환이 놓여 있다. 뉴스1

8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 '김명수 자진사퇴' 등 김명수 대법원장을 비판하는 근조 화환이 놓여 있다. 뉴스1

한국일보 취재결과, 일선 법관들은 공개적인 입장 표명이 ‘정치적 편가르기’로 해석될 것이라는 점을 우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두 고위 법관에 대한 실망감과 분노가 상당하면서도, 사법부 내부 진통이 증폭될까 봐 발언 자체를 자제하고 있는 것이다. 원로법관으로 자리를 옮기는 김창보 서울고법원장도 이날 이임식에서 이번 사태를 염두에 둔 듯, “격화된 사회의 갈등과 대립이 재판 과정에 그대로 투영돼 재판 결과를 진영 논리로 해석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물론 판사들의 익명 온라인 카페인 ‘이판사판’에는 김 대법원장을 겨누는 강성 논조의 글도 일부 올라오고 있다. 6일 ‘대법원장님 사퇴하십시오’라는 제목으로 “법원을 욕보이고 계시니, 양심이 있다면 사퇴하라”고 직격탄을 날린 글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상당수 법관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대표성이나 신뢰성이 있는 게시판이 아니다”라는 평가절하는 물론, “익명성 뒤에 숨어 그게 뭐냐”는 냉소적 반문까지 나온다. 지방 법원의 한 판사는 “대법원장 사퇴까지 거론할 정도의 사안이면, 판사가 무책임하게 익명의 그늘에 숨어선 안 된다”며 “김 대법원장이 사표 반려 과정에서 엉뚱한 말을 한 건 맞지만, 자신에 대한 탄핵 논의가 일자 사표를 내려 한 임 부장판사가 더 큰 문제”라고 말했다.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지난 4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사진은 2014년 당시 임성근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가 서울구치소를 둘러보고 있는 모습. 뉴시스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지난 4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사진은 2014년 당시 임성근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가 서울구치소를 둘러보고 있는 모습. 뉴시스

‘사안의 본질은 임 부장판사 탄핵 심판이고, 헌재 결정을 지켜봐야 한다’는 인식도 퍼져 있다. 재경지법의 한 판사는 “중요한 건 임 부장판사의 재판개입에 대한 판단이고, 그에 비하면 대법원장 발언 파문은 오히려 곁가지”라고 강조했다. 같은 법원의 다른 판사도 “대법원장 발언의 부적절성과는 별개로, 임 부장판사의 사표 반려는 옳았다”며 “그때 사표를 수리했다면, ‘법원이 국회의 법관 탄핵제도를 사문화시키겠다’고 선언한 셈이 됐을 것”이라고 했다.

다만, 두 차례의 사과 이후 침묵을 이어가는 김 대법원장을 향해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을 다시 내놓아야 한다”고 요구하는 목소리도 적지만은 않다. 지방법원의 한 판사는 “대법원장이 임 부장판사에게 ‘나도 탄핵감은 아니라고 본다’며 립서비스를 한 게 더 충격이었다. 해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때문에 판사들의 ‘실명 비판’이 시작되면, 김 대법원장의 거취 논의가 법원 내에서도 불붙을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다. 법원행정처도 김 대법원장의 사표 반려 행위가 적절했는지 따져보기 위해 ‘법관의 의원면직 제한에 관한 예규’를 검토하고 있어 향후 또 다른 변수가 될 수 있다.

최나실 기자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