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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 그들만의 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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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한국일보>
탄핵소추 된 임성근 부장판사의 사법연수원 동기(17기) 140여명이 5일 발표한 김명수 대법원장 사퇴 촉구 성명서에서 주목할 대목은 “형사재판에서 무죄를 선고한 행위에 대해 탄핵소추를 했다”는 비판이 아니다. 대부분 판사·검사·변호사일 그들이 헌법 위반과 법률 위반을 구분 못 하는 게 의외지만 더 곱씹어야 할 것은 그 다음이다. 대법원장을 향해 “법원의 수장으로 자신이 지켜야 할 판사를 보호하기는커녕 탄핵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도록 내팽개쳤다”는 문장이다.
▦조직의 수장은 그 구성원이 어떤 비위를 저질렀든 감싸는 게 당연하다는 말인가 보다. 판사와 대법원장의 관계를 충성하고 보호해 주는 조직으로 여기는가 보다. 사법연수원 17기 140여명이 사법부를 대표하지 않겠으나, 사시 패스자들이 사법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 단편을 보여준다. 판결로서 법과 정의를 수호해야 할 법관의 임무는 뒷전이고, 대법원장은 지시하고 판사는 따르며 퇴임 후엔 변호사로 개업해 함께 잘사는 ‘공동체 의식’이 지배한다는 점이다.
▦대법원장이 보호해야 하는 것은 판사가 아니라 재판 독립과 헌법 가치다. 판사 신분을 법으로 엄격히 보장하는 이유가 바로 이를 위해서다. 김 대법원장이 정치권 눈치를 살피고 거짓 해명을 했다고 비판할 수는 있으나 청와대 요구에 따라 재판에 개입한 판사를 보호하지 않았다고 비난하는 것은 그들만의 의리에 매몰된 것이다. 왜 사법부는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성접대에 대해 뻔뻔하게 무혐의 처분을 내린 검찰처럼 하지 않느냐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좋게 말하면 가족주의, 심하게 표현하면 ‘조폭의 의리’라 할 이 문화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신화다.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말로 압축되는 봐주기, 연고주의, ‘우리 식구’ 문화는 때로 융통성 있는 일처리를, 때로 부정부패를 싹트게 한다. 그래도 사시 합격한 법 전문가라면 이를 넘어 사법농단에 대한 문제 의식, 공적 가치를 주장하리라 기대했었다. 자기들끼리 의리만 과시하는 엘리트 의식은 사법연수원 17기 성명이 남긴 반갑잖은 발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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