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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에 대한 반감은 많은데, 저쪽도 찍을 사람이 없어 고민이라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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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용창의 정치행간’은 의회와 정당, 청와대 등에서 현안으로 떠오른 이슈를 분석하는 코너입니다. 정치적 갈등과 타협, 새로운 현상 뒤에 숨은 의미와 맥락을 훑으며 행간 채우기를 시도합니다.
“야들(문재인 정부)은 조금 더 공정 안 하겠나 싶어 나도 좋아했쓰요. 근데, 잘못했으믄 잘못했다카마 되는데, 와 잘못했다는 말을 못 합니꺼. 남들은 부동산이라 카든데, 내가 볼 때는 공정성 문제라.”
택시기사 김기동(64세·가명)씨의 목소리에는 여권에 대한 안타까움과 어떤 원망이 배어 있었다. 부산시장 보궐 선거를 두 달여 앞둔 5일 밑바닥 민심을 닥치고 들어보겠다고 나선 길에서 접한 첫 민심이었다. 공교롭게 그는 더불어민주당의 유력 후보인 김영춘 전 의원 지지자였다. 예전에 데모도 하고 노무현 대통령 일도 도왔던 그지만 선거 전망은 퍽 어두웠다. “영춘이가 학교 후밴데도, 친구들 모임서도 국민의힘 찍겠다는 아들이 많아예. 민심이 워낙 돌아서갖고…” 그러니까 부산 민심이 국민의힘 쪽으로 기울었고 그게 공정하지 못한 여권의 태도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김씨의 얘기는 부산의 여권 지지자들이 처한 어떤 곤란한 심경을 대변하는 듯했다. 여론조사에서 1위를 달리는 박형준 국민의힘 예비후보를 두고 “그쪽 사람들은 벌써 시장 다 된 것처럼 돌아다닙디다. 그 양반은 MB 때 이미 권력 맛을 본 사람인데, 그런 사람들은 이제 뒤로 물러나야 하는 거 아입니꺼”라고 목소리를 높이다가도 여권에 대해선 “조국부터 지금 김명수까지, 참 답답하다”며 풀이 죽었다. 그렇다고 영 희망을 접은 건 아니었다. “정부에 대한 반감이 많은데, 막상 저짝(국민의힘)서도 찍을 사람이 없어서 고민이 많을 겁니더. 저짝서 사람을 잘못 뽑으면 영춘이한테도 기회가 올 수 있습니다.”
김씨 말대로 정부에 대한 반감은 중구 자갈치시장에서 곧바로 확인됐다. 3대째 자갈치 시장에서 장사를 하고 있다는 정모(44)씨는 “이리 장사가 안 되는 것은 처음”이라며 “전에는 종업원을 10여명 뒀는데 지금은 우리 가족만 일한다”고 씩씩댔다. 옆에 있던 다른 상인의 입에선 속된 욕설도 나왔다. ‘지금 경기가 안 좋은 건 코로나 때문인데, 정부가 그나마 잘 대처하는 것 아니냐’고 묻자 정씨는 “코로나 전부터 안 좋았쓰예. 코로나도 의사들이 한 거지, 저거가 잘 한 겁니꺼”라고 반박했다. 다른 상인은 “세금도 많이 때렸다”고 거들었다. 조세 당국이 징수 목표액에 맞추기 위해 예전에는 눈감아주던 거래까지 훑어 거둬들였다는 주장이다. 한 상인은 “TV도 싹 다 장악을 당해서 우리 얘기는 나오지도 않는다”면서 “요즘은 유튜브만 본다”고 말했다. 인근에서 만난 60대의 한 시민도 버럭 언성을 높였다. “부동산 잡는다꼬 그리 해쌌더만, 이래 가 젊은 사람들 집 한 채 마련하겠습니까. 서울서 집값 오른다케도 부산은 안 그랬는데, 택도 없이 몇 억씩 올라가고.”
이들은 오랜 국민의힘 지지자였다. 원인과 과정이 어떻든 코로나19 때문에 경기는 최악이다. 그러니 모든 불만은 현 집권세력으로 향할 수 밖에 없어 보였다. 분노에 가까운 이들의 드센 목소리에 민주당 지지자들이 있다 하더라도 말을 꺼내기 어려운 분위기였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해 4월 총선에서 180석의 압승을 거뒀지만 부산에서는 오히려 6석의 의석이 3석으로 쪼그라들었다. 2016년 총선과 2018년 지방선거 때 민주당에 곁을 내줬던 부산이 보수 진영으로 돌아선 신호였다.
왜 부산에서 여권에 대한 반발심이 컸던 걸까. 연제구에 사는 권모(44)씨는 예전 김해영 전 민주당 의원, 오거돈 전 시장을 찍었으나 지금은 “이미 돌아섰다”고 말했다. 민주당에 대한 비판은 신랄했다. “일방적이다” “잘못했다는 말을 안 한다” “저거가 하면 로맨스다”는 식이다. “야당때 윤석열이를 그리 감싸더만, 여당 돼서 저거 아픈 데 찌르니까 하는 거 보이소.”
요컨대 내로남불이나 일방적 독주에 대한 불만이다. 50대의 황모씨도 “소통을 잘 할 줄 알았는데, 해가 갈수록 소통이 안 된다”고 비슷한 불만을 들었다. 국민의힘 지지자들이 주로 경기나 부동산 등 경제 문제를 제기했다면, 민주당을 찍었다가 돌아선 사람들은 변심의 이유로 민주당의 오만한 태도부터 거론했다.
언론들이 많이 지적해온 여권의 이런 문제를 유독 부산 사람들이 민감하게 받아들인 이유가 있을까. 부산 시민들이 민주당을 찍어줬던 맥락을 되짚으면 실마리가 나온다. 권씨는 “오거돈 시장이 여러 번 나와 떨어졌는데, 한번 밀어줘야 한다는 분위기가 있었쓰예. 그 때는 야당이 너무 못했다 아입니까. 근데 오 시장이 가덕도 노래만 부르다가 성추행으로 나가고, 한 일이 뭐 있습니까. 뭐 잘났다고”라고 말했다.
이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이렇다. 부산이 2018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을 밀어줬지만 그렇다고 야당인 국민의힘을 버린 것은 아니었다. 비유하자면 부산 입장에서 국민의힘은 능력 없는 장남이었고 민주당은 그간 매몰차게 대한 차남이었다. 눈 밖에 있던 차남이 잘 해보겠다고 하니 한번 기회를 준 셈이었다. 하지만 숫제 능력도 없으면서 오만하고 장남까지 무시한다는 것이었다. 대구경북이나 호남에선 자식 같은 정당이 하나 밖에 없지만 부산은 다르다. 믿는 구석이 있으니, 민주당에 대해 더욱 호된 채찍질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이런 기류 탓에 민주당 지지자들 내에서도 이번 보궐 선거에 큰 기대를 걸지 않는 분위기가 엿보였다. 부산에서 오랫동안 활동했다는 한 당원은 “어차피 임기 1년 밖에 안 되는 이번 시장 선거에 왜 후보를 냈는지 모르겠다”며 “여당이 자숙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부산 민심을 달래는데 더 나았을 것이다”고 씁쓸해했다.
그렇다고 민주당에 역전의 기회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한국 정치, 특히 선거전에서 2개월은 긴 시간이다. 특히 돌아선 부산 민심을 돌리기 위해 민주당이 꺼낸 카드가 가덕도 신공항 건설이란 초대형 지역 개발 사업이다. 국민의힘으로 마음을 정한 이들은 “뻔한 수법이다”거나 “그게 서민들이랑 무슨 상관이 있냐”고 반발했지만 선거전이 본격화하면 어떤 효과를 보일지 예단하기 어렵다.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한 부동층 역시 상당하기 때문이다.
직장인 유동인구가 많은 해운대구 센텀시티의 한 카페 앞. 30대의 직장인 대여섯명이 보인 첫 반응은 “잘 모르겠다” 였다. 보궐 선거에 관심이 없다는 투였으나 정권 심판론 역시 이들에겐 관심 밖이었다. 직장인 이모(32)씨는 “그래도 부산 발전에 적합한 사람을 뽑아야하는데, 그게 누군지 모르겠쓰예”라고 말했다. 서면에서 만난 20대 젊은층도 “관심 없다”거나 “모르겠다”는 반응이었다.
민주당 측이 내심 기대하는 것은 바로 이런 부동층이다. 선거 프레임이 정권심판론 대신 부산 발전에 적합한 인물 대결로 간다면 여권에 승산이 있다는 계산이다. 가덕도 신공항을 제대로 빨리 밀어붙일 수 있는 쪽은 결국 집권 여당이 아니냐는 호소가 먹힐 수 있다는 것이다. 국민의힘이 최근 한일 해저터널을 띄운 것은 이에 대한 맞짱식 견제구인 셈이다.
국민의힘이 마냥 안심할 수 없는, 더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다. 무엇보다 지지자들조차 대놓고 “참말 무능한 정당이다. 이런 좋은 기회를 살리지 못한다”거나 “인물이 없다. 찍을 사람이 없어 걱정이다”고 말하고 있어서다.
당내 경선이 사실상 본선전이란 생각에 네거티브 경쟁이 과열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벌써부터 특정 후보에 대한 흑색 선전도 암암리에 벌어지고 있다. 한 당원은 “우리끼리 싸우다가 골병이 들지 않을까 걱정”이라며 “그게 최대 선거 변수”라고 말했다. 당장은 부산 민심이 민주당에 대한 견제 심리로 국민의힘으로 쏠려 있지만, 국민의힘 내부 진흙탕 싸움이 전면에 등장하면 부산 발전에 적합한 인물론이 힘을 받을 수 있다.
젊은 세대들에게도 국민의힘은 여전히 구태 정당으로 비친다. 금정구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강담은(29)씨는 “정상적인 사람도 그 당에 들어가면 이상한 소리를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강씨는 “미국에 대해서도 할 말을 하고 우리 이익을 지키는 나라가 됐으면 좋겠는데, 거기는 아무 소리도 못하면서 툭하면 빨갱이라고 한다”며 “한쪽으로 너무 치우쳐 있고 자기 욕심만 챙기는 것 같아 싫다”고 잘라 말했다. 국민의힘으로서도 아직 갈 길은 멀어 보이는 상황이다.
부산=송용창 논설위원 hermee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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