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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의 진자, 에코의 소설

입력
2021.02.11 04:3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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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 장 베르나르 레옹 푸코

프랑스 파리 판테옹 돔에 매달린 푸코의 진자. 현재 매달린 것은 '푸코의 진자'의 복제품이다. 위키피디아

프랑스 파리 판테옹 돔에 매달린 푸코의 진자. 현재 매달린 것은 '푸코의 진자'의 복제품이다. 위키피디아


"교회 천장에 고정된 긴 철선에 매달린 구체는 엄정한 등시성의 위엄을 보이며 앞뒤로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그때, 진자가 흔들리는 주기는 철선 길이의 제곱근과 원주율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을, 원주율이라는 것은 인간의 지력이 미치지 않는 무리수임에도 불구하고 그 고도의 합리성이 구체가 그려낼 수 있는 원주와 지름을 하나로 아우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니까 구체가 양극간을 오가는 시간은, 구체를 매달고 있는 지점의 단원성, 평면의 차원이 지니는 이원성, 원주율이 지니는 삼원성, 제곱근이 은비하고 있는 사원성, 원 그 자체가 지니고 있는 완벽한 다원성 등속의, 척도 가운데서도 가장 비시간적인 척도 사이의 은밀한 음모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었다."('푸코의 진자', 움베르토 에코, 이윤기 옮김, 열린책들)

프랑스 실험물리학자 장 베르나르 레옹 푸코(Jean Bernard Leon Foucault, 1819.9.18~1896.2.11)가 1851년 파리 팡테옹 지붕에 67m 길이의 밧줄로 28kg 황동코팅 납을 매달아 진자 실험을 감행한 까닭은 지구 자전을 실증해 보이기 위해서였다. 그는 장치 바깥에 계기판을 설치, 추가 한 면을 따라 오가는 듯 보여도 시간이 흐르는 동안 미세하게 시계방향으로 회전하며 오간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가령 극지의 자전축에 높다란 기둥을 세워 추를 매달아 흔들면 현장에서는 같은 면을 따라 오가는 듯 보여도 저위도에서 보면 추가 회전하며 움직인다는 걸 알게 되는 이치. 그 움직임의 가시성을 극대화하고 공기 저항을 최소화하기 위해, 그는 최대한의 높이에 아주 무거운 추를 달아야 했다.

그 엄정하고도 단순한 사실(현상)이 구현되는데 작동하는 보이지 않는 수많은 성질과 원리, 현실 공간의 변수들이 교차하며 만들어내는 저항의 허들 사이에서, 조금만 삐끗해도 이성은 길을 잃고 사이비 음모론의 허방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을, 에코는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1995년 복제품으로 교체돼 파리 팡테옹 돔에 매달린 푸코의 진자는 보이지 않는 것들에 취약한 인간의 이성을 경고하며 지금도 진동하고 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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