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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비 진흙탕 길을 함께 걸었다

입력
2021.02.09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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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1907 서프라지스트 '머드 마치'

1907년 2월 9일 영국 '전국여성참정권운동연합' 회원들의 참정권 쟁취 진흙탕 행진 모습. 런던뉴스, 위키피디아.

1907년 2월 9일 영국 '전국여성참정권운동연합' 회원들의 참정권 쟁취 진흙탕 행진 모습. 런던뉴스, 위키피디아.


서프라지스트(suffragist)와 서프라제트(suffragette)는 여성 참정권 운동가를 가리키는 언어적 유물로 더러 혼용되지만, 20세기 초 영국서는 뚜렷히 대비되는 용어였다. 전자는 의회 로비 등 평화적·합법적 수단으로 선거권을 획득하고자 1897년 출범한 '전국여성참정권운동연합(NUWSS, National Union of Women's Suffrage Societies)' 회원들을 가리키던 중립적 용어였고, 후자는 NUWSS의 온건 노선이 못마땅해 '말이 아닌 행동!(Deeds Not Words!)'을 슬로건으로 1903년 분가한 '여성정치사회연합(WSPU, Women's Social and Political Union)'의 전투적 활동가들을 두고 언론이 '극소수'란 뜻의 어미 'ette'를 붙여 만든 용어였다. 서프라제트들은 다수인 NUWSS와 차별화하는 취지로이 용어를 적극적으로 씀으로써, 용어에 스민 경멸적 뉘앙스를 탈색시켰다. 두 단체는 서로 경계하고 때로는 비판하면서도, 대의에는 대체로 동조하고 연대했다.

여성 참정권이 결코 '소수(ette)'의 요구가 아니며, 집단적 연대의 평화 투쟁이 서프라제트의 방화나 파괴 등 폭력적 수단보다 더 강력한 호소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한 NUWSS의 첫 대규모 군중 행사가 1907년 2월 9일 런던에서 열렸다.

겨울 폭우 속에 런던 하이드파크에 모인 40여 단체 회원 여성 3,000여명은 피카딜리를 지나 유서 깊은 엑스터 홀(Exeter Hall)까지 진흙탕 길을 행진하며 구호를 외치고 여성참정권예술가연맹이 제작한 전단지를 배포하고 깃발을 펄럭였다. 그 행렬을 이끈 이가 NUWSS의 리더이자 2018년 런던 의회광장의 첫 여성 동상으로 선 밀리센트 포셋(Millicent Fawcett, 1847~1929)이었다. 배우 겸 작가 캐서린 프라이(Katharine Frye)는 그날 일기에 "마치 옛 순교자의 일원이 된 듯한 고양감을 느끼며 우리는 함께 걸었다"고 적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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