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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들었다 놨다...인구 78만 가이아나의 美中 ‘줄타기’ 외교

입력
2021.02.08 04:30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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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아나, '대만 대표부’ 설치 합의 돌연 파기
교역량 7배 美 외면, 인프라 공들인 中 선택
대만 존재감 높이려는 바이든정부 구상 차질
강력한? ‘타이베이법’ 있지만 처벌하기도 난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워싱턴=로이터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워싱턴=로이터 연합뉴스


중국에 맞서 대만을 중시하는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동맹 외교가 시작부터 일격을 맞았다. 상대는 미국의 텃밭인 카리브해에 위치한 '가이아나'다. 미중 사이에서 저울질하다 중국 편을 들면서 대만의 존재감을 높이려는 미국의 구상이 삐걱대고 있다.

‘대만 대표부’ 설치 합의 하루 만에 뒤집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베이징=신화 뉴시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베이징=신화 뉴시스


대만은 4일 가이아나에 대사관 격인 대표부를 설치할 예정이었다. 양측 합의에 따라 지난달 15일부터 이미 운영을 하던 터라 현판식만 남은 상태였다. 미 국무부와 가이아나 주재 미국대사관은 3일 환영의 뜻을 밝히며 분위기를 띄웠다. 15개 남아있는 수교국 가운데 9개국이 중남미와 카리브해에 몰려있는 대만으로선 이 지역에서 입지를 굳힐 호기였다.

중국이 어깃장을 놓았다. 중국 외교부는 4일 “대만과의 공식 교류나 기관 설립을 자제해달라”고 경고했다. 그러자 가이아나는 바로 대만과의 합의를 취소했다. 이에 중국은 “대만의 졸렬함은 마음을 빼앗지 못하고 웃음거리가 됐다”고 조롱했다. 사실상 대만의 뒷배인 미국을 겨냥한 셈이다. ‘외교 승리’라며 들떠있던 대만 외교부는 5일 “중국이 또다시 사악한 본성을 드러냈다”고 반발했지만 힘의 열세를 절감하며 분루를 삼킬 수밖에 없었다.

교역량 7배인 美 제치고 왜 中 택했나

조안 오우 대만 외교부 대변인이 4일 카리브해와 맞닿은 남미 가이아나에 설치할 대만 대표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타이베이=AP 연합뉴스

조안 오우 대만 외교부 대변인이 4일 카리브해와 맞닿은 남미 가이아나에 설치할 대만 대표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타이베이=AP 연합뉴스


미국은 인구 78만명에 불과한 가이아나의 ‘변심’을 예상하지 못한 듯하다. 최대 교역국 미국에 대한 의존도가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2019년 기준, 가이아나와 미국 간 무역규모는 20억 달러(약 2조2,470억원)를 넘어 중국과 교역량(3억1,900만달러)의 7배에 달한다.

반면, 드러난 경제지표와 달리 가이아나는 중국과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중국은 1972년 수교하면서 7,000만달러(약 786억원)를 원조했고 벽돌ㆍ방직ㆍ설탕 공장을 지어주며 가이아나 경제의 초석을 닦았다. 2000년대 들어서는 보크사이트, 목재 등 다양한 자원을 수입하면서 가이아나와 접촉면을 넓혔다. 특히 중국은 2018년 양해각서를 맺은 이후 가이아나를 시진핑(習近平) 주석의 역점사업인 일대일로(육상ㆍ해상 실크로드)의 카리브해 전진기지로 삼아 국제공항, 수력발전소, 도로, 디지털 등 각종 인프라 건설을 도맡으며 영향력을 키웠다.

그래픽=신동준기자

그래픽=신동준기자


이외에도 중국 국영 해양석유유한공사(CNOOC)는 가이아나 근해 660만 에이커에 달하는 스타브르크블록의 지분 25%를 보유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막대한 석유매장량 덕분에 가이아나의 경제성장률이 2019년 4%에서 2020년 86%로 급등할 것이라고 전망한바 있다. 미 외교안보 전문지 디플로맷은 7일 “가이아나에게 필요한 것은 무역보다 자금과 인프라”라고 지적했다.

바이든 정부, ‘타이베이법’ 강력하지만 적용 난감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 그는 5일 양제츠 중국 외교담당 정치국원과의 취임 후 첫 통화에서 "신장과 티베트, 홍콩을 포함해 인권과 민주적 가치를 지지할 것"이라며 "대만해협을 포함한 인도태평양지역의 안정을 위협하고 규칙에 근거한 국제사회의 체계를 무시하는 중국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워싱턴=AFP 연합뉴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 그는 5일 양제츠 중국 외교담당 정치국원과의 취임 후 첫 통화에서 "신장과 티베트, 홍콩을 포함해 인권과 민주적 가치를 지지할 것"이라며 "대만해협을 포함한 인도태평양지역의 안정을 위협하고 규칙에 근거한 국제사회의 체계를 무시하는 중국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워싱턴=AFP 연합뉴스


미국은 이런 상황에 대비해 지난해 3월부터 ‘대만 동맹 국제보호 강화법(타이베이법)’을 시행하고 있다. 대만이 다른 국가나 국제기구와 공식ㆍ비공식 관계를 증진하도록 지원하고, 대만의 안전과 번영에 손해를 끼칠 경우 미 정부가 해당 국가와의 관계조정을 검토하는 내용을 담았다. 국제사회에서 ‘하나의 중국’ 원칙을 내세워 대만을 억누르는 중국의 횡포를 저지하기 위한 것이다. 이에 법 통과 당시 중국은 “국제법 위반이고 내정 간섭”이라며 “강력한 보복조치를 불사할 것”이라고 반발했다. 타이완 뉴스는 “가이아나가 대만과의 합의를 어기고 베이징에 굽실거린 만큼 미국이 법에 규정된 징벌적 조치를 취할 것인지가 이번 사태의 초점”이라고 전했다.

차이잉원 대만 총통. 가오슝=AP 뉴시스

차이잉원 대만 총통. 가오슝=AP 뉴시스


하지만 바이든 정부가 실제 가이아나를 제재하긴 쉽지 않아 보인다. 미국의 외교 실패를 자인하는 격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진영의 공조를 통해 중국을 제압하려는 구상에도 어긋난다. 가이아나는 영연방에 속하는 국가다.

가이아나 정서가 미국에 호의적인 것만은 아니어서 ‘긁어 부스럼’이 될 수도 있다. 현지 언론들은 미국이 먼저 대만 대표부 개설을 대대적으로 홍보하자 “미국의 압력에 떠밀린 것이냐”며 반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앞서 카리브해의 섬나라 앤티가바부다의 가스통 브라운 총리는 “우리가 중시하는 건 실용주의”라며 “적이 없는, 모두의 친구”라고 강조했다. 미국이 코 앞의 카리브해 이웃국가들을 당연한 세력권으로 여기는 냉전적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베이징= 김광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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