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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수-임성근 '몰래 녹취' 논란에 소환된 1992년 부산 초원복국집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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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법관 탄핵소추를 당한 임성근 부장판사의 김명수 대법원장 대화 비밀 녹음 문제를 두고 여야가 위법 공방을 벌이고 있죠. 국민의힘은 김 대법원장이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했다며 탄핵 추진을 검토하겠다고 했습니다.
이를 두고 더불어민주당에선 임 판사의 녹음 자체가 위법성이 크다며 역공을 펼치고 있습니다. 김 대법원장에게 임 부장판사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하라는 조언까지 했습니다. 1992년 대선을 뜨겁게 달궜던 '부산 초원복국집 사건'을 사례로 들면서 말이죠.
초원복국집 사건은 1992년 대선 때 벌어진 일로, 불법 도청으로 정치권이 발칵 뒤집힌 사건입니다. 박정희·박근혜 부녀 대통령을 모두 보좌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연루된 사건인데요. 김 전 실장이 박근혜 정부에서 청와대 비서실장에 임명될 때 이 사건을 꺼내며 부적절한 인사라는 지적도 나왔죠.
정치권에선 지금도 선거 때 지역 감정을 부추기거나 선거 개입 의혹이 불거질 때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사례입니다. 그런데 사실 관권 선거가 문제가 된 사건이었지만, 정작 희한하게도 당시에는 불법 도청에 초점이 맞춰지게 됩니다. 물론 이 또한 여론의 흐름을 돌리기 위한 당시 노태우 정권과 여당인 민자당의 '작전' 이었다는 평가가 많지만요.
당시 대선은 전두환·노태우 군사정권에 마침표를 찍고 실시되는 첫 직선제 대선이었습니다.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역사적인 획을 그은 선거였던 만큼, 선거 열기는 어느 때보다 뜨거웠죠.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이끌었고 삼김정치의 주인공인 고(故) 김영삼·김대중 후보가 맞붙었던 선거였죠. 여기에 현대그룹 명예회장인 고 정주영 통일국민당 대표도 뛰어들었습니다.
김영삼 후보를 돕던 김기춘 전 실장은 1992년 12월 11일 부산 초원복국집에 부산시장과 부산지검장,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 지부장, 기무부대장, 지방경찰청장 등 8명의 부산 지역 기관장들과 조찬 모임을 엽니다.
김 전 실장은 이들에게 지역 감정을 자극하며 김영삼 후보의 대선 승리를 위해 부산 기관장들이 힘을 합쳐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죠. 또 김영삼 후보와 표가 겹쳤던 정 후보를 비방하는 내용을 퍼뜨리기로 뜻을 같이합니다.
김 전 실장이 같은 해 10월까지 법무부 장관을 지냈던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관권선거로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 한국의 정치적 만국병인 지역주의까지 부추겼습니다. 김 전 실장은 이 자리에서 "우리가 남이가. 이번에 안 되면 영도다리에 빠져 죽자"며 필승을 결의했는데, '우리가 남이가'란 유행어를 남기게 됩니다.
검찰은 김 전 실장을 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는데, 엉뚱하게도 사건은 정권의 선거 개입이 아닌 '불법 도청', '비밀 녹음'으로 흘러가게 됩니다. 오히려 부산 민심이 김영삼 후보로 결집하며 김 후보 당선의 계기가 됐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죠.
당시 김 전 실장의 '우리가 남이가' 발언을 알린 건 다름 아닌 정 후보 측이었는데요. 국민당 측은 기관장들이 모이기 전에 초원복국집에 도청 장치를 설치했고, 그 녹취록을 깜짝 폭로합니다. 국민당 부산선거대책위 간부들이 안기부 부산지부 직원을 매수해 조찬 장소와 시간을 미리 파악한 뒤 장롱과 창문틀에 도청 장치를 설치했던 것이죠.
그런데 당시 정국은 김 전 실장과 김영삼 후보 측의 관권선거보다 국민당의 불법 도청이 더 큰 문제라고 봤습니다.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큰 도움이 됐는데요.
김 전 실장은 검찰이 자신을 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하자 자신의 표현의 자유와 참정권이 침해당했다며 헌재에 위헌 심판을 제기했습니다. 헌재는 김 전 실장의 위헌 제청을 받아들였고, 이로 인해 검찰 공소는 취소됐습니다.
녹취록이 공개된 직후 부산시장이 사임할 정도로 엄청난 파급력을 지닌 사건이었지만, 헌재의 판결로 관권선거 문제는 용두사미로 끝이 나게 됩니다. 지금도 관권선거 하면 떠오를 정도로 큰 사건이었지만, 김 전 실장은 법적 처벌은 피하게 됐죠.
뼈대가 사라지니 화살은 정 후보 측으로 쏠리게 됩니다. 당시 통신비밀보호법이 없었기에 국민당 측 인사들에게 주거침입죄가 적용됐습니다. 국민당 부산 지역 간부와 안기부 직원은 벌금형을 선고받게 됩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1993년 12월 불법 도청 처벌을 골자로 한 통신비밀보호법이 만들어지게 됐는데요.
이때도 그랬지만, 삼성 X파일 사건이나 정윤회 문건 사건 등 정부와 대기업의 비위가 담긴 녹취록과 문건 내용은 논란이 되지 않고 입수 경위 자체가 문제가 되는 일이 반복되고 있네요.
김한규 민주당 법률 대변인은 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부산 초원복국집 사건을 비교하며 임 판사의 비밀 녹음의 문제점을 지적했습니다. 김 대변인은 이날 '비밀 녹음은 적법한가'란 제목의 글을 올렸는데요.
그는 "국회의 탄핵안 결의를 막기 위해 (임 판사가) 대법원장과 대화 녹음을 공개한 것으로 보이는데, 다행히도 별 효과가 없었다"며 "이 기회에 비밀 녹음은 해도 괜찮은지 알려 드리겠다"고 적었습니다.
김 대변인에 따르면 임 판사의 비밀 녹음은 형사 처벌할 수 없다고 해요. 대화 당사자의 녹음은 법상 처벌 대상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위자료를 내게 될 수 있기에 위법성에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게 그의 설명입니다.
김 대변인은 "대화하는 사람 중 일방이 상대방 동의 없이 녹음해도 형사 처벌 대상 아니다. 대법원장과 고법부장이 대화 중 고법부장이 몰래 녹음한 경우"라면서도 "추가로 잘 모르시는 부분인데 대화하는 사람 중 일방이 상대방 동의 없이 몰래 녹음한 경우 민사적으로는 음성권 침해의 불법 행위"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음성권 침해라고 한) 하급심 판결이 여럿 나오고 있다"며 "이번 비밀 녹음의 경우 대법원장이 고법부장을 상대로 음성권 침해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면 일정 금액의 위자료를 받으실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죠.
김 대변인이 초원복국집 사건을 들며 임 판사의 비밀 녹음의 문제점을 지적한 건 같은 당 홍영표 의원을 위한 지원사격으로 보이는데요.
홍 의원은 4일 국회에서 진행된 정치·외교·통일·안보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임 판사가 대법원장의 대화를 불법 도청해 폭로했다"며 "이걸 보면서 정말 탄핵 소추한 걸 잘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어 "우리나라 최고의 법률 엘리트라고 할 수 있는 고등부장판사가 불법 심부름센터도 하지 않는 불법 도청을 해서 폭로한 건 충격적"이라며 "이런 분한테는 사법 정의가 아니라 인간적인 예의나 도덕이 없는 것 같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러자 당사자 간 대화 녹음은 문제가 없는데, 홍 의원이 임 판사를 비판하려다가 무리를 했다는 지적이 나왔죠. 김웅 국민의힘 의원은 이튿날인 6일 홍 의원의 발언을 문제 삼으며 불법이 아니라고 반박했죠. 김 의원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통신비밀보호법을 들며 "의원님 대화자 간 녹취는 불법이 아니에요"라고 말했습니다.
통신비밀보호법은 타인 간의 대화에 대한 녹음을 금지하기 때문에 대화 당사자인 임 판사가 녹음한 건 전혀 문제가 없다는 점을 든 것입니다. 김 의원은 그러면서 "타인 간의 대화가 무엇인지까지 알려드리자니 같은 의원으로서 너무 부끄러워 그만하겠다"며 홍 의원을 꼬집었습니다.
국민의힘은 김 대법원장을 향해 '사법농단의 몸통'이라며 사퇴하라고 촉구했는데요. 민주당은 국가공무원법상 임 판사의 사표를 수리하지 않는게 맞다며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향해 '반(反)헌법적 인사'라고 쏘아붙였습니다.
우원식 민주당 의원은 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제 식구를 감싸지 않았다고 대법원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김종인 위원장이야말로 반헌법적'이란 제목의 글을 올렸습니다.
우 의원은 "국가공무원법에 따라 징계 사유가 있는 공직자는 스스로 사표를 낼 수 없도록 정하고 있다"며 "임 판사는 국회가 탄핵으로 그 징계를 대신 한 것이다. 대법원장은 당연히 탄핵 심판 대상자의 사표 수리를 거부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이어 "헌법상 징계인 탄핵 대상이 파면 절차를 밟고 있는데 사직서를 처리하면 전형적인 제 식구 감싸기"라며 "김 위원장은 김 대법원장이 공범이 돼야 했다는 말이냐. 국회의 법관 탄핵 절차를 무시하는 그 주장이야말로 반헌법적"이라고 일갈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앞서 이날 오전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법령 근거도 없이 납득할 수 없는 사유로 사표 수리를 거부한 건 직권 남용"이라며 김 대법원장이 불법행위를 저질렀기에 스스로 사퇴해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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