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말고 '복지부총리' 어때요?

입력
2021.02.08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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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찬진 참여연대 집행위원장이 지난 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코로나19 피해 노동자 소득보장, 자영업자 손실보상, 사회연대세 신설 제안 입법청원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찬진 참여연대 집행위원장이 지난 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코로나19 피해 노동자 소득보장, 자영업자 손실보상, 사회연대세 신설 제안 입법청원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에서 복지 논의란 늘 '다람쥐 쳇바퀴'다. 헬조선 탈출 위해 북유럽을 배우자 → 나라가 남미 꼴 난다 → 뭔가 사건 하나 터진다 → 돈도, 사람도, 컨트롤 타워도 없다 → 역시 북유럽 복지다 → 덮어놓고 퍼주다 거지꼴을 못 면한다 → 좌파 포퓰리스트들이 돈으로 표 사다가 나라를 북한에다 갖다 바치는 꼴을 국민이 가만 둬선 안 된다 → 다시 또 뭔가 사건이 하나 터진다 →…

그러니 김용균법, 중대재해법, 연초 한국일보 보도로 널리 알려진 방배동 모자의 비극, 정인이 사건 같은 이슈들이 한바탕 휘몰아쳐 지나고 나면, 이 사안들을 우리 사회가 소비하는 방식에 의문점이 남는다. 혹시 죄책감도 덜고 정의롭고도 싶은 중산층의 알리바이인 건 아닐까. 사람이 먼저라고 까불더니 막상 너희들도 별 수 없지, 그 말을 하고 싶은 게 아닐까.

이미 오래 전 키워드가 있었다. 동사무소와 복지부총리.

동사무소란, 디지털화로 서류 작업 중심의 행정 수요가 줄어들 테니 동사무소를 복지행정의 일선 기지로 쓰자는 제안이다. 그 얘긴 지난해 12월 28일자 칼럼 ‘주민센터로 오세요’가 있으니 패스.

다만 이 때도 ‘복지의 자격’을 따지느라 모욕을 더러 주는 모양이다. 화분에 물을 충분히 준다는 건 어느 정도 넘치게 준다는 말인데, 넘치는 순간 우리나라는 ‘남미 꼴’로 직행할 예정이라는 게 걸림돌이다. 그 덕분에 정말 위기의 끝자락에 놓인 이들에게 우리 복지는 ‘있는 동시에 없는’ 슈뢰딩거의 고양이 같다는 한탄을 듣곤 한다.

다른 하나는 복지부총리. 사건이 터지면 '처벌강화 같은 대증요법보다 제대로 된 컨트롤타워 아래 장기적 대책이 필요하다'고들 합창한다. 어찌나 단련됐는지 저 문장은 단 한번도 쉬지 않고 기계적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읊을 수 있을 정도다.

관료제에서 컨트롤타워란 대개 차관 위 장관, 장관 위 총리라는 식의 ‘한 끗’ 높은 직책을 뜻한다. 멀리 갈 것 없다. 코로나19에 대응하는 방대본, 중수본, 중대본 3단 구조는 ‘관료제에서 한 끗 차이란 무엇인가’를 웅변한다. 동시에 자본주의 사회에서 장기 대책이란 곧 돈이다. 부모께 효도하고 아이 잘 키우는 게 그저 사랑이기만 했으면 얼마나 좋겠냐만은 말이다.

그러니 ‘사회부총리’라는 타이틀을, 교육부 말고 보건복지부에다 주면 어떨까. 아니 아예 경제부총리 말고 복지부총리를 해보면 어떨까. 뻔한 살림에 뻔한 결론이 나온다 해도 '재정 때문에 안 돼’에서 ‘어떻게든 해볼 방법을 찾아보자’는 방향으로, 생각의 출발점이라도 조금 이동하지 않을까. 경제는 그 잘났다는 자유시장더러 제발 알아서 하라 그러고 말이다.

곳간열쇠 꽉 움켜쥔 심술쟁이 시어머니 같은 역할을 폄하하거나 부정하려는 건 아니다. 그저 인력과 예산과 컨트롤타워는 앞으로도 계속 부족하거나 없을 예정인 것 같아 하는 얘기다. 다른 일엔 전체주의를 척척 잘만 가져다 붙이더니, 자영업자 등의 손실보상 문제는 모른 척 하려는 전체주의의 또 다른 얼굴에 대해선 일제히 딴청 피는 풍경이 신기해서 하는 얘기다. 수사와 기소 분리도 관철 못 시킨 검찰개혁보다, 복지부총리제라도 했다면 세칭 ‘진보정권의 효능감’에 조금 더 도움되지 않았을까 싶어 하는 말이다.

마침 대선도 있으니, 이번엔 “경제 말고 복지부총리!”를 정치권에 요구해보면 어떨까.

조태성 정책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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