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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저래 생각만 많아지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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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기의 체험이나 배움은 얼마나 질기고도 강한 힘을 발휘하며 우리 삶 곳곳에서 제 존재를 드러내는지. 나는 아직도 탱자나무를 보면 참새를 잡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힌다. 가시만 앙상한 겨울 탱자나무 울타리에 그물을 쳐놓고 참새가 걸려들기만 목놓아 기다리던 어린 날의 기억 때문이다. 불쑥불쑥 떠오르는 유년기의 기억이나 그때 터득한 습성에 기대어 살아가는 내 모습을 확인할 때마다 놀란다.
스무 해 전 부모님과 일본 여행을 갔다. 부모와 내가 처음으로 함께한 해외여행이자 두 분의 첫 일본 나들이였다. 이틀째 되던 날, 교토 인근 오래된 마을을 구경하던 때로 기억한다. 흡사 아이 같은 시선으로 주변 풍경을 보던 엄마가 말했다. "참 좋다. 오래전부터 내가 살고 싶었던 데가 바로 이런 마을이거든." 뜬금없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웬만해서는 속내를 표정으로 드러내지 않는 엄마는 뭘 보고 저리 행복한 미소를 짓는 걸까? 주변을 둘러봤지만 내 눈에 그곳은 그저 깔끔하고 오래된 일본의 시골 마을이었다. 나는 뜨악한 표정으로 엄마 쪽을 바라만 보았다. 한데 옆에 있던 아버지마저 회상에 잠긴 듯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고는 "그러게 말이지." 맞장구를 치는 게 아닌가.
사태 파악의 실마리를 찾은 건 다음 날이 되어서였다. 그때까지 조용히 구경만 하던 두 사람이 여행 사흘째로 접어들면서 일본 말을 한두 마디씩 내뱉기 시작했다. 뚜껑 열린 팝콘 냄비처럼 두 사람의 일본어는 무섭게 불어나서, 한나절 만에 현지 노인들과 주고받는 대화로 변했다. 광복 이후 55년 동안이나 쓰지 않았던 일본어를, 그 시간의 먼지만큼이나 낡고 녹슬어서 나이든 일본인이나 알아먹을 1940년대의 그 나라 언어를 부모님은 신기하게도 되살려내고 있었다.
그날 저녁, 부모와 둘러앉아 긴 이야기를 나눴다. 난생처음 시간을 내어 내 부모의 아이 적을 상세히 캐묻는 자리였다. 그러니까 1930년대 중반에 태어난 우리 부모가 가장 먼저 글로 터득한 언어가 바로 일본 말이었던 거다. 아버지는 소학교 3학년, 한 살 어린 엄마는 2학년 여름방학 때 광복을 맞았고 둘 다 더는 일본어를 배운 적이 없다고 했다. '왜정시대'를 떠올리는 것만으로 징글징글했기 때문이다. 다만 교육의 힘이 참으로 세다고, 그 시절 글로 깨치고 2~3년 공부했던 일본 말이 50년 넘은 세월을 뚫고 여기서 이렇듯 튀어나올 거라고는 상상조차 못 했다며 두 분은 혀를 내둘렀다. 내가 짐작했던 대로, 전날 두 사람을 아련한 회상에 잠기게 했던 마을 이미지의 출처 역시 그 시절 교과서였다. 이 기묘한 아이러니 앞에서 한동안 침묵하던 엄마가 낮게 중얼거렸다. "아이 적 경험이란 게 이렇듯 질기고 무섭구나."
유치원에 가고 학교에 다녀야 할 꼬마들의 일상이 뒤틀리기 시작한 지 일 년이 다 돼간다. 이틀 전, 길어지는 집안 생활로 인해 모종의 정서 장애를 겪고 있다는 후배 딸아이의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이 많아졌다. 노련하고 닳아빠진 촉수를 지닌 어른들은 어떻게든 상황을 바꾸고 털어낼 방도를 찾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의 파고에 무력하게 떠밀린 아이들은 다르다. 어쩌면 지금 이 시기가 그들의 미래 삶에 미칠 정신적·정서적 파급력은 우리의 예상을 훌쩍 뛰어넘을지 모른다. 누군가 팔 걷고 나서서 이 문제를 곰곰이 들여다봐 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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