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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 눈치 본 대법원장, ‘몰래 녹음’ 폭로한 부장판사

입력
2021.02.05 04:30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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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언급 '거짓해명' 김명수 리더십 추락
임성근에는 '물타기' 비판... "판사임을 포기"
金-林 '진흙탕 싸움'에 사법부는 '참담' 반응

김명수 대법원장이 4일 대법원에서 퇴근하고 있다. 김 대법원장은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가 공개한 녹취록과 관련해 거짓 해명 논란에 대해 사과했다. 이날 기자들에게 보낸 입장문에서 김 대법원장은 "9개월 전 불분명한 기억에 의존해 (사실과) 다르게 답변한 것에 송구하다"고 밝혔다. 뉴스1

김명수 대법원장이 4일 대법원에서 퇴근하고 있다. 김 대법원장은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가 공개한 녹취록과 관련해 거짓 해명 논란에 대해 사과했다. 이날 기자들에게 보낸 입장문에서 김 대법원장은 "9개월 전 불분명한 기억에 의존해 (사실과) 다르게 답변한 것에 송구하다"고 밝혔다. 뉴스1

김명수 대법원장과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의 지난해 5월 22일 대화 녹취록 공개가 던진 파문은 단지 3일 김 대법원장의 ‘거짓 해명’에 그치지 않는다. 당시 김 대법원장의 ‘탄핵’ 언급 발언이 대단히 부적절했던 것은 물론, 사법농단 사태의 책임 문책엔 소극적이었던 그가 정치권 움직임에만 신경 썼다는 ‘민낯’이 드러난 셈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임 부장판사 역시 ‘법관 신분’을 의심케 할 정도로 대법원장과의 대화를 몰래 녹음한 데 이어, 자신에 대한 탄핵소추안 표결을 앞두고 이를 공개해 사태의 본질을 흐리려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두 고위 법관이 사법부 내부의 ‘진흙탕 싸움’을 초래했다는 데 일선 판사들은 참담해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4일 공개된 녹음 파일에 따르면, 우선 김 대법원장의 부적절한 발언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오늘 그냥 (사표) 수리해 버리면 (국회가) 탄핵 얘기를 못 하잖아”라는 말이 대표적이다. 또, “(정치권이) 탄핵하자고 설치는데, 수리하면 국회에서 무슨 얘길 듣겠냐”는 언급도 있었다. 사법부 수장이 원칙과 소신보다는, 정치권 눈치만 봤다는 비난을 받아도 할 말이 없는 처지다. 올해 시무식에서 “부당한 외부 공격에 의연히 대처하라”고 판사들에게 당부했던 것과는 배치된다는 비판도 있다.

'사법농단'에 연루된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4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법관에 대한 탄핵소추가 이뤄진 것은 헌정사에서 처음이다. 사진은 2012년 당시 임성근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이 대법원에서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대법원 국정감사에서 질의에 답변하는 모습. 연합뉴스

'사법농단'에 연루된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4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법관에 대한 탄핵소추가 이뤄진 것은 헌정사에서 처음이다. 사진은 2012년 당시 임성근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이 대법원에서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대법원 국정감사에서 질의에 답변하는 모습. 연합뉴스

재경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임 부장판사 사표를 반려한 건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고 전제하면서도, “다만 ‘당신 잘못이 있으니 사표는 못 받는다’고 꾸짖는 대신, 정치권 핑계를 대며 반려한 건 비굴한 행동”이라고 김 대법원장을 질타했다. 다른 현직 부장판사도 “대법원장이 ‘국가적으로 여러 혼란이 있으니, 사표 수리는 어렵다’고 설명했으면 모를까, 정치적 영향을 신경 쓰는 발언을 하다니 이해가 안 된다”면서 한숨을 쉬었다.

특히 사법농단 관련 법관들에 대한 ‘탄핵 검토’ 목소리엔 침묵하고, 자체 징계에도 미온적이었던 김 대법원장이 정치권 분위기를 ‘핑계’로 댄 건 앞뒤가 안 맞는다는 지적도 있다. 수도권 법원의 한 판사는 “김 대법원장은 사법농단 연루 판사들의 징계를 회피하고 뭉갠 장본인”이라며 “임 부장판사에게 ‘형사재판 진행 중이라 사표 수리는 안 된다’고 했어야지, 정치적 상황을 언급하며 중언부언한 건 대단히 부적절했다”고 말했다.

이와는 별개로, 임 부장판사의 ‘몰래 녹음 및 녹취 공개’ 행위에 대한 질타도 쏟아진다. 재경지법의 한 판사는 “판사이기를 포기한 것”이라며 “대법원장을 만나러 간 법관이 작정하고 대화를 녹음한 건데, 이제 누가 사법부를 신뢰하겠나”라고 토로했다. 심지어는 “임 부장판사에 대한 일말의 동정심도 사라졌다”는 격한 반응까지 나왔다.

김명수 대법원장의 ‘법관 탄핵’ 관련 주요 발언. 그래픽=송정근 기자

김명수 대법원장의 ‘법관 탄핵’ 관련 주요 발언. 그래픽=송정근 기자

하필 이 시점에 녹취록을 공개한 데 대해서도 냉담한 반응이 많다. 지방 소재 법원의 한 판사는 “임 부장판사의 재판 관여 행위가 탄핵 사유인지가 쟁점이었는데, 전형적인 ‘물 타기’로 본질을 가리고 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수도권 법원의 다른 판사도 “이번 사태는 임 부장판사가 헌법상 탄핵 대상인지를 판단하는 것과는 무관하다”며 “녹취록을 띄엄띄엄 푸는 것도 ‘논점 흐리기’를 노리는 협박범이나 하는 짓”이라고 꼬집었다.

김 대법원장의 ‘임 부장판사 사표 반려’를 둘러싼 논란도 거세다. 서울 소재 법원의 한 중견 법관은 “수장의 역할은 조직원 보호”라며 “김 대법원장 본인도 ‘탄핵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 사표를 안 받아준 건 어불성설”이라고 했다. 반대로, 소장 법관들은 “임 부장판사 문책이 제대로 안 됐는데, 사표를 수리했다면 오히려 더 큰 직무유기”라는 반론을 제기하고 있다.

최나실 기자
이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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