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정 사상 초유의 법관 탄핵소추 의결 직전인 4일 오전 공개된 김명수 대법원장과 현직 법관의 대화녹취록 내용은 충격적이다. 4ㆍ15 총선 이후인 지난해 5월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의 사법농단 연루 판사 탄핵 요구가 분출할 때, 김 대법원장이 탄핵 대상으로 거론된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의 사표를 물리치며 여당 눈치를 보는 장면이 담겼기 때문이다. 사법부 독립을 지켜야 할 수장이 법관 사표 반려 이유로 구체화하지도 않은 여당의 탄핵 움직임을 들다니 참담하다. 이러고도 사법 독립을 운운할 수 있나.
당초 김 대법원장은 전날 임 부장판사의 사표를 반려하면서 '탄핵' 관련 언급을 한 사실이 없다고 했다가 녹취록이 공개되자 "불분명한 기억에 의존한 (사실과) 다른 답변"이라며 사과했다.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대법원장과의 면담 내용을 무단으로 녹취하고 이를 폭로한 임 부장판사의 행태도 문제지만 엄연한 사실을 부인한 김 대법원장의 행동은 더 큰 문제다. 특히 최근 임 부장판사 탄핵소추안 발의에 “탄핵 절차는 국회와 헌법재판소의 권한이고, 대법원이 입장을 밝히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형식적 답변으로 비껴갔던 터라 사법부 수장으로서의 처신에 의문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이런 가운데 국회는 이날 임 부장판사 탄핵 소추를 찬성 179표, 반대 102표로 가결했다. 헌법재판소 결정이 남았지만 국회에서 처음으로 법관 탄핵안이 통과됐다는 것만으로도 사법부로는 치욕스러운 일이다. 이 역시 사법농단 사건 당시 김 대법원장이 판사 징계 등의 조치를 방기한 책임이 없지 않다. 김 대법원장은 이번 사태로 야기될 모든 문제에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그 출발은 사법 독립과 개혁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한 지난 3년여에 대한 성찰이다.
이제 임 부장판사의 탄핵 여부는 헌재에서 가려지게 됐다. 임 부장판사가 이달 말 퇴직하므로 헌재 결정은 그 이후 내려질 공산이 크다. 하지만 헌재의 판단은 역사적 의미가 큰 만큼 오로지 헌법 정신에 비춰 판단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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