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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비부터 반납하시든가

입력
2021.02.09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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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협력이익공유제’를 제안했다. 여론은 시큰둥하다. 모노리서치 설문결과 20~30대 주식 보유자 4명 중 3명은 이익공유제가 주주 재산권 침해 소지가 있다고 답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협력이익공유제’를 제안했다. 여론은 시큰둥하다. 모노리서치 설문결과 20~30대 주식 보유자 4명 중 3명은 이익공유제가 주주 재산권 침해 소지가 있다고 답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지금으로부터 25년쯤 전 얘기다. 나왔다 하면 매진을 기록한 연극배우가 한 달 출연료로 1,000만원을 받는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됐다. 가뜩이나 어려운 연극계에서 섭외 경쟁으로 부익부 빈익빈 현상까지 만든다는 비판이었다. 세간의 걱정을 그 배우는 이런 말로 되받았다. “연극하면서도 많이 버는 배우가 있어야 재능 있는 후배들이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

이문열 작가가 기사 딸린 세단을 타고 인터뷰 장소에 나왔을 때, 김영하 작가가 연희동 ‘자가 주택’ 근처 카페에서 인터뷰하자고 했을 때, 저 말을 떠올리며 기분이 좋았다. 한국을 대표하는 1급 작가들인데 그 정도는 가져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작가가 세상의 춥고 배고픈 그늘도 써야겠지만, 비싸고 좋은 것도 보고 입고 먹어봐야 현실을 있는 그대로 쓸 수 있지 않겠나. 무엇보다 돈 걱정 없이 작품 쓸 수 있는 롤모델이 있어야, 머리 좋고 감각 있는 사람이 한국문학판에서 계속 분투하지 않겠나.

수년째 초?중?고등학생 장래 희망 상위권에 연예인이 있다는 사실은 저런 맥락에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요즘 아이들은 재능 있고 노력한다면 ‘개천에서 용 나올 수 있는’ 분야가 연예계라고 믿는 것 같다는 말이다. 특출난 아이들이 연예계에 몰리면서 이전과는 비교가 안 될 수준으로 산업이 커졌다. 극한의 부익부 빈익빈 구조는 개선해야 마땅하지만 한편으로 시장의 파이를 늘리는 고성과자에게 응당한 대우를 할 때, 탁월한 인재들이 그 분야에서 일하고, 다시 폭발적인 시장 성장으로 이어진다고 나는 믿는다.

코로나19 불황의 타개책으로 정치권이 기업 이익공유제를 제안했을 때, '반사이익'을 봤다는 기업에 지난 한 해 나라가 뭘 해줬는지 헤아려봤다. 그리고 저 배우의 말을 다시 떠올렸다. 각자도생으로 엄혹한 불황에도 이익을 낸 기업인, 투자한 주주가 제대로 보상 받아야 똑똑한 인재들이 ‘한국기업에서 일하겠다, 한국기업에 투자하겠다’ 할 거 아니냐는 말이다.

물론 ‘글로벌 스탠다드’에 한참 못 미치는 한국 기업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등 기업의 비재무적 가치)는 개선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선거 두 달 앞두고 정치권이 저런 요구를 하면, 민중은 손 안 대고 코 풀겠다는 말로 듣는다. 경쟁사만 못한 성과급 소식에 당장 ‘산출 기준을 공개하라’고 나온 젊은 세대는 이익공유제 제안을 공정이라 생각하지도 않는다. 기업들이 ‘밤 9시 이후 영업금지’ 조치나 자영업자 쥐어짜기로 최대 실적 낸 게 아니지 않나. 부작용을 계산하지 않고 정치권이 일단 밀어붙이고 보는 이익공유제는 '다 같이 잘 살자'는 말보다 '이 와중에 잘 사는 놈 보니 배 아프다'는 말로 들린다. 관련 기사에는 이런 댓글이 달렸다. ‘나 자영업자인데, 지원 필요 없다. 세금만 걷지 마라.’

정 그렇게 다 같이 잘 살고 싶다면 본인들이 앞장서시라. 국회의원 세비부터 반납하고(인상분 7만7,000원 기부하며 생색내지 말고), 무보직 재직자가 1,500명에 달하는 공공기관 구조조정 할 법안부터 논의하시라. 대선공약 안 지켜도 되니 지방대(한전공대) 새로 짓지 말고, 그 혈세 ‘공유’에 쓰시라. 저출산으로 있는 대학도 신입생 등록 미달 속출하는 마당이다. 제발 몸소 실천할 수 있는 것만 말씀하시라.

이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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