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

단독

배트맨 집사 '페니워스'의 리즈 시절... 슈퍼히어로물은 식상하지 않다

입력
2021.02.06 04:40
19면

<23> 웨이브 '페니워스'

편집자주

극장 대신 집에서 즐길 수 있는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OTT) 작품을 김봉석 문화평론가와 윤이나 칼럼니스트가 번갈아가며 소개합니다. 매주 토요일 <한국일보> 에 연재됩니다.


'페니워스'는 배트맨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집사인 앨프리드 페니워스의 젊은 시절을 그렸다. 웨이브 제공

'페니워스'는 배트맨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집사인 앨프리드 페니워스의 젊은 시절을 그렸다. 웨이브 제공


페니워스라는 성만 들으면 누구인지 모를 것이다. 앨프리드라는 이름을 들어도, '누구' 하지 않을까. 하지만 앨프리드 페니워스를 영화에서 최소 한두 번은 보았을 것이다. 주연은 아니지만 조연으로. 앨프리드 페니워스는 배트맨, 그러니까 브루스 웨인의 집사다. 팀 버튼과 조엘 슈마허의 '배트맨' 시리즈 4편, 크리스토퍼 놀런의 '다크 나이트' 3부작,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과 '저스티스 리그' 그리고 '조커'에서도 페니워스는 항상 등장했다. 배트맨의 저택에 그는 항상 있으니까.

웨이브에서 볼 수 있는 '페니워스'는 배트맨의 집사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드라마다. 집사의 이야기가 과연 재미있을까. 지금은 아니다. 배트맨의 사이드킥도 아니고, 충실한 집사로서의 직분에 충실할 따름이니까. 하지만 앨프리드가 단지 브루스 웨인을 보좌하며 가사를 돌보는 일만 하는 것은 아니다. 페니워스는 배트맨의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며 수트와 무기, 배트카 등을 정비하기도 한다. 컴퓨터에 능숙하여 기밀정보를 찾거나 배트맨의 잠입, 전투 시에 백업 역할도 한다. 만화에서는 저택에 침입한 악당과 샷건을 들고 싸우는 일도 꽤 있다. 격투도 벌인다.

대체 그는 누구일까. 어떤 이력을 가지고 있기에, 집사 이상의 역할까지 능숙하게 수행하는 것일까. 특수부대 출신이고, 배우를 하기도 했다는 정도는 알고 있다. 근래 영화에서 페니워스를 연기한 배우는 '다크 나이트' 3부작의 마이클 케인,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과 '저스티스 리그'의 제러미 아이언스였다. 배우가 곧 캐릭터는 아니지만, 최고로 멋진 배우들이 연기하는 페니워스를 보면서 궁금했다. 앨프리드 페니워스의 과거는 무엇일까.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


DC코믹스 슈퍼히어로 중 슈퍼맨과 양대 산맥을 이루는 배트맨의 곁에는 늘 충실한 집사인 페니워스가 있었다. 웨이브 제공

DC코믹스 슈퍼히어로 중 슈퍼맨과 양대 산맥을 이루는 배트맨의 곁에는 늘 충실한 집사인 페니워스가 있었다. 웨이브 제공


'페니워스'는 그의 젊은 시절을 그리고 있다. 시대 배경은 1960년대 런던이다. 우리가 아는 시대와 동일하지 않은, 일종의 대체 역사다. 여왕과 총리는 있지만 과격단체인 레이븐 소사이어티와 노 네임 리그가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레이븐 소사이어티는 국가와 민족을 내세우는 극우 단체이고, 노 네임 리그는 혁명으로 사회주의를 건설하자는 좌파 단체다. 페니워스는 막 군대에서 돌아와 직업을 찾고 있다. 그는 아버지가 귀족의 집사인 전형적인 노동계급 가정 출신이다. 영국 공수특전단(SAS) 출신 페니워스가 지금 하는 일은 클럽 경비원. 경호회사 명함을 파기는 했지만 별다른 일이 들어오지 않는다.

어느 날, 그는 클럽에서 토머스 웨인을 만난다. 후일 배트맨의 아버지다. 술과 마약에 취한 누이를 데려가려다가 곤란한 상황에 놓인 웨인을 도와준다. 페니워스는 명함을 건네고, 혹시 일이 들어올까 했는데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토머스 웨인을 쫓던 레이븐 소사이어티가 페니워스의 연인인 애스미를 납치해 웨인과 교환하자고 한 것이다. 난데없는 봉변을 당한 페니워스는 정보 수집, 잠입, 전투에 능한 SAS 경험을 활용해 전우인 데이브 보이, 바자와 함께 에스미를 구하러 간다. 일단 토머스 웨인도 확보하고.

페니워스는 애스미를 구했고, 웨인은 페니워스에게 빚이 생겼다. 하지만 레이븐 소사이어티의 여성 킬러 사이크스를 비롯해 많은 적이 생겼다. 일도 들어온다. 웨인의 소개로 미국의 사진작가 마사 케인이 찾아온다. 마사라는 이름을 들으면 기억이 날 것이다. 후일 배트맨의 엄마가 되는 인물이다. 마사 케인은 노 네임 리그를 도와주고 있다. 전혀 원하지 않았지만, 앨프리드 페니워스는 레이븐 소사이어티와 노 네임 리그의 진흙탕 싸움에 발을 들여놓고 말았다.


영국 특수부대 SAS에서 10년간 복무한 후 전쟁의 트라우마에 시달리던 젊은 날의 페니워스는 우연찮게 배트맨의 아버지인 토마스 웨인과 얽히게 된다. 웨이브 제공

영국 특수부대 SAS에서 10년간 복무한 후 전쟁의 트라우마에 시달리던 젊은 날의 페니워스는 우연찮게 배트맨의 아버지인 토마스 웨인과 얽히게 된다. 웨이브 제공


1960년대의 영국은 혼란스럽다. 좌우 이념을 내세우는 단체들은 이기심과 과도한 욕망에 사로잡혀 있고, 크롤리가 이끄는 사교집단도 득세한다. 총리도 별다른 신념이 없다. 페니워스는 전장의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눈앞에서 머리에 총을 맞고 죽은 전우 스패니시의 환영에 종종 시달린다. 그럼에도 페니워스는 긍정적이다. 인생은 비극이거나 희극인데 결국은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는 스패니시의 말을 떠올리며 자신은 희극을 택했다고 한다. 그래서 늘 웃는 것이라고. 아무리 참혹하고 비정한 현실을 만나도, 결국은 웃을 것이라고.

딱히 페니워스의 인생관만이 아니어도, 영국 특유의 뒤틀린 유머 감각은 '페니워스'에 흘러 넘친다. 보다 보면 페니워스는 배트맨보다 매력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언제나 냉정하고, 언제나 농담을 하고, 언제나 긍정적이다. 문제가 생기면 최선을 다해 해결하면 된다고 믿는다. 안 되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일단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원칙이 아니라면, 최소한의 윤리를 지킬 수 없다면 아예 하지 않는다.


'페니워스'에는 20대의 페니워스는 물론 배트맨의 부모인 토마스 웨인, 마사 웨인의 젊은 시절 모습을 보는 재미가 있다. 웨이브 제공

'페니워스'에는 20대의 페니워스는 물론 배트맨의 부모인 토마스 웨인, 마사 웨인의 젊은 시절 모습을 보는 재미가 있다. 웨이브 제공


레이븐 소사이어티의 여성 킬러 사이크스는 드라마에서 가장 매력적인 인물 중 하나다. 사이크스는 돈이나, 어떤 목적을 위해서 폭력과 살인을 서슴없이 저지른다. 납치한 애스미의 씩씩한 태도에 반해 애정을 표시하기도 하고, 모종의 일로 페니워스와 공동전선을 형성했을 때는 믿음직한 파트너가 된다. 페니워스가 잡아 포박한 악당을 보고 말한다. "10분만 줘." 이유는 간단하다. 나쁜 놈에게 고통을 주려는 것. 사이크스는 매 순간 심플하고, 감정에 충실하다. 생각을 하면 바로 행동으로 이어지는 캐릭터다. 사이크스를 연기하는 배우는 유명한 뮤지션인 팔로마 페이스다. 관능적이면서 도발적인 뮤직비디오에서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준 팔로마 페이스는 '페니워스'에서 아주 멋진 캐릭터를 창조했다.

'페니워스'의 크리에이터 브루너 헬러와 연출 대니 캐넌은 '고담'도 함께 만들었다. '고담'은 배트맨이 등장하기 이전 고담시의 모습을, 형사 제임스 고든을 주인공으로 그린 드라마다. 제임스 고든은 배트맨 영화에서 주로 경찰국장으로 등장하는데, '고담'에서는 갓 형사를 시작한 애송이로 나온다. '멘탈리스트'와 '로마'를 만들었던 브루너 헬러는 '고담'에서 부모의 죽음을 경험한 브루스 웨인이 성장하는 과정과 함께 캣우먼, 펭귄, 조커, 리들러 등 베트맨 시리즈의 빌런들이 어떻게 등장하며 고담이라는 지옥도가 형성되는지를 흥미롭게 보여준다. '고담'은 6시즌으로 끝났고,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다.


'페니워스'는 슈퍼히어로물의 조연 캐릭터를 활용해 전혀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웨이브 제공

'페니워스'는 슈퍼히어로물의 조연 캐릭터를 활용해 전혀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웨이브 제공


'고담'에도 당연히 페니워스가 등장한다. 40대 정도 된 웨인 가문의 집사다. 특수부대 출신인 페니워스는 부모의 죽음으로 충격에 빠져 방황하는 브루스 웨인을 도와주며 옳은 길로 이끌기 위해 헌신한다. 페니워스는 브루스 웨인의 집사이면서 스승이고, 친구다. 유사 아버지 역할도 한다. '고담'에 나온 페니워스의 과거를 보여주기 위해 브루너 헬너는 '페니워스'를 만들었고, 시청률과 비평 모두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다.

'페니워스'는 익숙한 슈퍼히어로 작품에서 조연으로 등장한 캐릭터를 활용해 전혀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슈퍼히어로물이 단지 선과 악의 대립이나 슈퍼히어로의 활약을 보는 것만이 아니라 다양한 소재와 주제로 무한하게 뻗어나갈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올해 디즈니플러스에서 공개한 '완다비전'을 비롯한 드라마에서도 슈퍼히어로물의 다양한 변주를 보여주고 있다. 슈퍼히어로물은 식상하다고 생각했다면,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미 코믹스에서는 소재와 주제에서 무수한 실험과 확장이 이뤄졌다. 영화는 슈퍼히어로물을 약간 비틀고 확장한 정도다. 아직 보여줄 것이 너무 많다,


김봉석 문화평론가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