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 생태계'가 무너지고 있다

입력
2021.02.03 22:00
27면
서울 건대맛의거리에 걸린 현수막. 뉴스1

서울 건대맛의거리에 걸린 현수막. 뉴스1


식당 하는 친구 A가 전화를 걸어 왔다. 식당용품 거래처 소개를 부탁한다고 했다. 직감이 왔다. "너, 거래 끊겼지?" "…"

친구 B는 요즘 직접 장을 본다. 공급자가 거래를 끊어서다. 매일 쓸 양을 마트나 시장에서 조금씩 산다. 가격도 비싸고, 원하는 물건을 살 수 없어서 메뉴 가짓수를 줄였다. 팔던 메뉴가 없어지니 안 그래도 없는 손님이 더 떨어져나간다.

식당 하나의 흥망은 식당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여러 거래처에 촘촘하게 얽혀 있다. 프랜차이즈 가맹점이 아닌 식당은 대체로 공산품, 신선 채소, 정육, 수산물 도매 공급자와 각각 거래한다. 외식업이라는 생태계에는 재료 공급상이라는 보이지 않는 참여자가 있다. 이들 공급자는 두 가지 스트레스를 받는다. 하나는 매출이고, 다른 하나는 미수금이다. 식당은 진입 장벽이 낮아서 창업도 많은 반면, 폐업률도 다른 사업 분야에 비해 두 배 정도 높다. 폐업은 공급자들에게 미수금을 남길 가능성이 크다. 도매공급자는 이윤이 박한 데다가 미수금이 깔려서 이중으로 고통받는다. 미수금이 발생하는 걸 이들은 속어로 '물린다'고 말한다. 어감이 신랄하다. 공급자는 대체로 2개월 정도 미수금을 참다가 거래를 중지한다. 계속 공급해서 얻을 이윤을 놓치는 것보다 미수금을 '물리는' 게 더 두렵기 때문이다. 10개의 식당에서 이윤을 얻어도 1개 식당의 미수금이 주는 타격이 더 크다. 도매 공급자라 이윤이 낮기 때문이다. 공급자가 거래를 끊으면 식당은 일단 새로운 거래처를 찾게 된다. 공급자들 사이에서는 신규 거래처(식당)가 갓 창업한 곳이 아닐 경우 신경이 곤두선다. 거래처를 바꾸는 이유가 미수금에 따른 거래정지인지 따져보게 된다.

최근 식당가에서 가장 큰 외부 충격은 2008~2009년 리먼 브러더스 사태였다. 경기침체가 깊어지면서 식당이 문을 닫았다. 이때 미수금도 많이 발생했다. 미수금이 많아지면 도매공급자도 부도난다. 식당에 물건을 대는 공급자는 일종의 종합 백화점이어서, 개별 품목별로 상위 공급자와 거래를 한다. 당연히 상위 공급자도 부도에 영향을 받는다. 리먼 브러더스 사태보다 더 큰 충격이 시장을 덮치고 있다. 식당이 견디기 힘드니 참여자들 모두가 고통받고 있다.

지난 칼럼에서 외식업 적극 지원에 나선 외국 사례를 소개했다. 간단히 정리하자면, 독일의 경우 과거 매출의 75%까지 지원, 미국은 2.5개월치 직원 월급 지원과 기타 지자체 추가지원, 일본은 약 1,900여만원 지급 등이다. 반향이 컸다. '우리는 왜 지원하지 않느냐' '빚을 낼 때는 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마침 당정에서 이윤이 격감한 식당 등을 대상으로 지원책을 검토한다는 뉴스가 나왔다. 영업이익 손실을 보상한다는 취지다. 아직 논의가 확정됐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기왕 하려면 빨리 해야 한다. 그래야 무너진 식당업의 여러 참여자들을 고루 되살릴 수 있다. 1월 22일 발표된 당국의 통계에 의하면 코로나 집단감염 사례에 외식업은 불과 2%에 불과했다. 이는 그만큼 식당 영업제한이 감염예방에 효과적이었다는 뜻도 된다. 당국의 지침을 잘 따르고 있는 식당에 보상을 해야 하는 건 당연하다. 방역지침 불복종을 선언하는 업자들에게 심리적 동조를 하고 있는 외식업자들이 대다수다. 불길은 사전에 잡는 게 좋다.



박찬일 요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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