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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의 기재부 때리기 유감

입력
2021.02.04 04:30
26면

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3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의 교섭단체 대표 연설을 듣고 있다. 뉴시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3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의 교섭단체 대표 연설을 듣고 있다. 뉴시스


'군군, 신신, 부부, 자자(君君, 臣臣, 父父, 子子)'

논어에 나오는 공자의 대화 중 이처럼 쉬우면서 명확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문구는 없을 것이다. 제나라 경공이 공자에게 정치에 관해 묻자,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한다'고 답했다는 얘기다.

'임금은 임금다워야 한다'는 데는 다양한 해석이 따를 수 있지만, 요즘 말로 바꾸면 각자 처한 자리에서 할 일을 묵묵히 해야 한다는 정도로 풀이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최근 유력 정치인들의 기획재정부 때리기 행태를 보면 2,500년 전 성인이 얘기한 이 같은 정치의 기본을 지키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정치인들이 기재부를 비판하는 가장 큰 이유는 경제위기가 심각한데 '나라 곳간`을 잘 열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랏돈이라도 많이 풀어 경제를 빨리 살려야 하는데, 곳간을 책임진 공무원들이 원리 원칙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이를 거부하고 있으니 답답해 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정치권이 요구할 때마다, 기재부가 현금 인출기처럼 돈을 뽑아댄다면 어떻게 될까. 그런 기재부라면 굳이 존재할 이유가 있을까.

'국가재원의 효율적 배분과 재정 건전성 확보'. 기재부의 주요 업무 중 하나다. 한마디로 나랏돈 함부로 쓰지 말고 재정이 바닥나지 않도록 신경 쓰라고 만든 조직이 기재부라는 것이다.

정치인 입장에서야 돈을 빨리 풀자는 자신들의 주장을 반대하는 기재부의 보수적인 재정 운용이 답답하고 못마땅할 수 있다. 하지만 기재부는 그렇게 하라고 만든 조직이고, 또 그 역할을 나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각자의 관점에서는 반대점에 서 있는 조직과 그 업무가 마음에 안 들겠지만, 그런 조직이 없다면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주의 가치는 유지되기 어렵다.

국회(정치인)가 기재부를 견제할 수 있는 수단도 이미 우리 법에 보장돼 있다. 예산은 기재부가 짜더라도, 실제 확정되기 위해서는 국회의 꼼꼼한 심사를 받아야 한다. 심사과정에서 국회 권한으로 예산이 늘기도 줄기도 한다. 이런 면에서 정치인들의 기재부 때리기는 공무원들을 욕보여 대중의 주목을 끌겠다는 '쇼잉 효과'외에 큰 의미를 찾기 어렵다.

정치인이 보기에 기재부가 정말 잘못된 판단을 하고 있다면 이를 정치인 답게 해결해야 한다. 가령 인사권자인 대통령에게 자신의 논리와 설명을 붙여, 즉 '정치력'을 발휘해 정부 경제팀 교체를 요구하는 게 더 '정치인' 다울 수 있다. 하지만 기재부 비판에 나선 여당 유력 정치인 중 기재부 장관을 지속적으로 '신뢰'한다는 대통령의 판단에 공개적으로 딴지를 건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4차 재난지원금 지급을 위한 추경 편성을 놓고 기재부와 여당이 또 갈등을 겪고 있다. 그동안 정치권 압박에 여러 차례 뜻을 굽혔던 기재부 장관은 강한 어조로 '여당의 대규모 추경 편성에 반대한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이 말이 전해지자 여당에서는 "능력 없으면 관두라"라는 등 격앙된 비판이 또 나왔다고 한다.

공자가 보기에 정치의 기본인 '군군, 신신, 부부, 자자' 원칙을 더 잘 지키고 있는 쪽은 어디일까. 정치인에 대한 그의 판단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기재부는 기재부다웠다고 공자는 인정하지 않을까.

민재용 정책금융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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