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비난에 등떠밀린 이스라엘… 팔레스타인에 백신 공급

입력
2021.02.02 11:47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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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회분 서안지역 통해 인도

지난달 28일 요르단강 서안지구의 한 팔레스타인 의료단지 중환자실에서 의료진이 코로나19 환자를 살피고 있다. AP 연합뉴스

지난달 28일 요르단강 서안지구의 한 팔레스타인 의료단지 중환자실에서 의료진이 코로나19 환자를 살피고 있다. AP 연합뉴스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진행 중인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에도 백신을 공급했다. 양측의 해묵은 갈등을 감안하면 인도주의적 선택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잇따른 국제사회 비난 여론에 등을 떠밀린 측면이 강하다.

이스라엘 국방부 산하 팔레스타인 민간협조관(COGAT)은 1일(현지시간) 코로나19 백신 2,000회분을 요르단강 서안지역을 통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의료팀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미국 제약사 모더나 제품으로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측에 백신을 공급한 것은 처음이다. 이스라엘은 조만간 3,000회분을 추가 제공한다는 방침이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측은 백신 수령 여부 관련, 확인도 부인도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70년 넘게 이어진 이-팔 갈등에 비춰볼 때 이번 결정은 이례적이다. 양측 관계는 1948년 이스라엘이 텔아비브에서 건국을 선포하고 해당 지역에 살고 있던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내쫓으며 본격화했다. 이후 이스라엘은 1967년 3차 중동전쟁에서 요르단강 서안, 가자지구 등 팔레스타인 땅을 강제 점령하고, 서안지역에 유대인 정착촌을 확대했다. 반면 팔레스타인은 이 지역에 독립국가 수립을 희망하면서 수없이 물리적 충돌을 빚었다.

지난달 20일 이스라엘 텔아비브 인근에서 한 시민이 코로나19 백신을 맞고 있다. EPA 연합뉴스

지난달 20일 이스라엘 텔아비브 인근에서 한 시민이 코로나19 백신을 맞고 있다. EPA 연합뉴스

다만 백신 공급은 자발적이라기보단 반강제적 성격이 짙다. 이스라엘은 전체 인구의 30%(308만1,000명)가 1차 접종을 마쳤을 만큼 빠른 속도로 백신을 접종하고 있다. 2차 접종까지 마친 인원도 179만명에 달한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서안ㆍ가자지구에 살고 있는 약 500만명의 팔레스타인 주민들에 대해선 백신 접근을 차단해왔다. 이들에게 접종 혜택을 줄 ‘법적 책임이 없다’는 이유지만, 유엔 등 국제기구 및 인권단체는 “이스라엘이 점령국으로서 도덕적ㆍ인도적 의무를 회피하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스라엘이 국제적 비난을 의식, 마지못해 팔레스타인에 백신을 인도했다는 인상을 피할 수 없는 대목이다.

한편 팔레스타인 정부는 세계보건기구(WHO)의 백신 공동구매 프로젝트인 ‘코백스 퍼실리티’를 통해 백신을 공급받을 예정이다. 그러나 구매ㆍ분배 진척 속도가 더딘 탓에 언제 백신을 받을 지는 장담할 수 없다. 콜드체인(저온유통) 미비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도 관건이다. 팔레스타인은 러시아산 스푸트니크 V백신도 별도로 주문했지만, 아직 물량을 공급 받지 못했다. AP통신은 두 나라를 일컬어 “백신경쟁의 결과가 어느 지역보다 극명하게 드러난 곳”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허경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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