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온천 지나면...1000년 잠 깬 미륵불과 2000년 옛길

입력
2021.02.03 04:30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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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충주 수안보면 미륵대원지와 하늘재

충주 수안보면 미륵대원지에서 문경읍 관음리까지 이어지는 하늘재 산책로. 약 2,000년 전 개설된 계립령의 일부 구간으로 문헌상 가장 오래된 길이다.

충주 수안보면 미륵대원지에서 문경읍 관음리까지 이어지는 하늘재 산책로. 약 2,000년 전 개설된 계립령의 일부 구간으로 문헌상 가장 오래된 길이다.

어떤 이는 한물간 ‘옛날 관광지’로 취급하지만 충주 수안보의 자부심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수안보는 온천수가 솟아나는 보의 안쪽 마을이라는 뜻에서 ‘물안보’ ‘물안비’라고 부르다가 한자로 바뀐 지명이다. 수안보 온천에 대한 기록은 ‘고려사’에 처음 등장한 이후 ‘동국여지승람’ ‘대동여지도’ 등 여러 문헌에서 확인된다. ‘조선왕조실록’에는 태조 이성계가 이곳에서 피부병을 치료했다는 내용이 있고, ‘청풍향교지’에는 숙종이 요양을 위해 찾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왕의 온천’이라는 수식이 단순한 홍보 문구가 아닌 이유다. 지하 250m에서 끌어올린 53도의 온천수는 지금도 충주시에서 중앙집중방식으로 관리해 호텔이나 대중탕에 공급한다.

수안보 물탕공원의 표지석. 겨울 성수기임에도 코로나19로 주변 거리가 스산하다.

수안보 물탕공원의 표지석. 겨울 성수기임에도 코로나19로 주변 거리가 스산하다.

코로나19는 겨울이 성수기인 온천에도 찬물을 들이부었다. 거센 눈보라 뒤 깜짝 한파가 몰아친 지난달 29일, 수안보 거리는 더없이 스산했다. ‘물탕공원’ 야외 족욕장의 쇠파이프는 차갑게 얼었고, ‘왕의 온천 수안보’라고 쓴 표지석 뒤로 이어지는 길거리에는 사람을 찾기 어려웠다. 3밀(밀집ㆍ밀접ㆍ밀폐) 공간을 피해야 하는 시기이니 대놓고 자랑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다행히 수안보는 물만 좋은 곳이 아니다. 월악산 자락이라 주변으로 조금만 눈길을 돌리면 한적하게 산책을 즐길 수 있는 관광지가 산재해 있다.

1000년 잠에서 깨어난 미륵대원지

수안보면 소재지에서 제천으로 이어지는 508번 지방도를 따라가다 지릅재를 넘으면 미륵리라는 작은 마을이 나타난다. 마을을 통과하면 아늑한 산자락에 미륵대원지(사적317호)가 자리 잡고 있다. 불교식 명칭인데 일반적으로 옛 절터에 붙이는 이름과는 조금 다르다.

마을 사람들은 논밭과 민가였던 이곳을 ‘미륵댕이’라 불러 왔다. 한국전쟁 직후 일부만 드러난 미륵불에 제를 올리던 암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1976년 집을 옮기는 과정에서 석물이 나왔다. 미륵대원이 천년의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이었다. 1977~1993년 수 차례 발굴 조사가 진행됐다. 1차 발굴에서 ‘명창3년 대원사 주지 승원명(明昌三年大院寺住持僧元明)’이라고 적힌 기와가 나왔다. 대원사라는 절터였음이 밝혀졌다. ‘명창’은 중국 금나라의 연호로 명창3년은 1192년이다. 창건 연대는 고려 태조가 후삼국을 통일한 즈음으로 추정할 뿐 정확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4차 발굴 때는 동쪽 언덕에서 원(院)이나 역(驛), 군사시설의 흔적이 발견됐다. 삼국유사 ‘왕력’편의 ‘계립령금미륵대원동령시야’에 기록된 미륵대원이 확인된 것이다. 그러니까 이곳은 사찰인 대원사와 관원들이 묵어 가던 미륵대원이 함께 있던 곳이다.

수안보면 월악산 자락의 미륵대원지. 절의 얼굴이라 할 석조여래입상은 보수 공사가 진행 중이어서 가려져 있다. 이르면 연말쯤 본래의 미소를 볼 수 있을 듯하다.

수안보면 월악산 자락의 미륵대원지. 절의 얼굴이라 할 석조여래입상은 보수 공사가 진행 중이어서 가려져 있다. 이르면 연말쯤 본래의 미소를 볼 수 있을 듯하다.


공사 가림막을 하기 전 미륵대원지의 석조여래입상.

공사 가림막을 하기 전 미륵대원지의 석조여래입상.


완만한 경사를 이루는 산기슭 절터에는 중앙에 오층석탑(보물 95호)이 자리잡았고, 그 뒤로 석등(충북유형문화재19호)과 석조여래입상(보물 96호)이 일렬로 늘어서 있다. 3면이 석실로 둘러싸인 10.6m 높이의 석조여래입상은 온화하고 그윽한 미소가 매력적이다. 머리에는 눈비와 햇살을 피할 팔각 보개가 얹혀 있다. 그러나 절터의 얼굴이라고 할 불상과 석실의 모습은 현재 가림막 외벽의 사진으로만 확인할 수 있다. 계획대로라면 2017년 보수 공사를 마무리할 예정이었지만 하염없이 늦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르면 올해 말쯤 경주 석굴암이나 서산 마애불처럼 지역을 대표하는 미륵불의 미소를 마주할 수 있을 듯하다.

오층석탑 앞에는 부러진 채 누운 당간지주가 있다. 예전에 동네 어느 집의 장독대로 쓰였다고 한다. 비석의 받침돌로 쓰였을 귀부(충북유형문화재 269호)도 눈길을 끈다. 당시 탑비의 받침돌은 대개 거북 모양에 용의 머리를 하기 마련인데, 이곳 귀부는 순한 거북의 얼굴 그대로다. 미처 올리지 못한 건지 도난을 당한 건지, 비석의 행방은 묘연하다.

석조여래입상은 제천 한수면 덕주사의 마애불과 마주보고 있다. 덕주는 신라의 마지막 왕 경순왕의 딸이자 마의태자의 동생이다. 미래를 기약하는 미륵불을 세웠다는 의미에서 마의태자가 금강산으로 가다가 지은 사찰이라는 설도 있지만 확인 불가한 이야기다.

미륵대원 중앙의 오층석탑. 신라의 석탑 양식이 가미된 고려시대 석탑으로 추정된다. 꼭대기에 머리 장식의 중심을 지탱하기 위해 세운 긴 쇠꼬챙이 모양의 찰간(擦竿)이 남아 있다.

미륵대원 중앙의 오층석탑. 신라의 석탑 양식이 가미된 고려시대 석탑으로 추정된다. 꼭대기에 머리 장식의 중심을 지탱하기 위해 세운 긴 쇠꼬챙이 모양의 찰간(擦竿)이 남아 있다.


미륵대원지의 석조 귀부. 몸돌(비석)을 세우기 위한 홈은 남아 있지만, 비석은 온데간데 없다.

미륵대원지의 석조 귀부. 몸돌(비석)을 세우기 위한 홈은 남아 있지만, 비석은 온데간데 없다.


2000년 잊혀진 옛길, 계립령 하늘재

미륵대원 터를 돌아 계곡을 따라 가면 하늘재로 오르는 산책로로 연결된다. 하늘재는 문경과 충주를 잇는 고갯길로 문헌상 가장 오래된 옛길이다. 삼국사기에는 신라 아달라왕 3년(156) 처음으로 고갯길을 개척했다고 기록돼 있다. 신라가 소백산맥 이북까지 세력을 확장할 수 있는 단초를 마련한 셈이다. 후일 고구려의 온달 장군이 잃어버린 영토를 회복하기 위해 애쓴 곳이기도 하다.

미륵대원지 뒤편 하늘재 산책로 초입의 미륵리 불두. 고려시대에 세운 미완성 불상으로 추정되는데, 현대 조각작품을 보는 것처럼 매끈하다.

미륵대원지 뒤편 하늘재 산책로 초입의 미륵리 불두. 고려시대에 세운 미완성 불상으로 추정되는데, 현대 조각작품을 보는 것처럼 매끈하다.

영주와 단양을 잇는 죽령 고개보다 2년이 빠르고, 조선 태종 14년(1414) 개설된 문경새재(조령로)보다는 1,000년 가까이 일찍 열린 길이다. 조선시대 들어 문경새재가 영남 유생의 과거 길로,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군사적 요충지로 부각되면서 하늘재는 용도가 줄어들고 서서히 잊혔다. 옛길 중에서도 옛길이 된 셈이다.

하늘재로 오르는 길은 이름과 달리 순탄한 편이다. 해발 380m 미륵대원지에서 530m 고갯마루까지 2㎞ 완만한 산길이 이어진다. 등산이라기보다 산책에 가깝다. 이정표에는 왕복 3시간으로 표시해 놓았는데 아주 쉬엄쉬엄 걸었을 경우다. 크게 경치가 빼어난 것도 아니고, 오랜 역사에 비하면 눈여겨봐야 할 유적이 남아 있지도 않다. 아무 생각 없이 울창한 숲길을 걷다 보면 몸에 약간 열기가 돌고, 이마에 땀방울이 살짝 내비칠 즈음 어느새 고갯마루에 닿는다.

계립령 하늘재 탐방로. 이렇다할 유적도 없고, 경치가 빼어난 것도 아니지만 호젓하게 숲길 산책을 즐기기에 부족함이 없다.

계립령 하늘재 탐방로. 이렇다할 유적도 없고, 경치가 빼어난 것도 아니지만 호젓하게 숲길 산책을 즐기기에 부족함이 없다.


하늘재 정상에 '계립령 유허비'가 세워져 있다. 하늘재 문경 구간은 정상 부근까지 도로가 나 있다.

하늘재 정상에 '계립령 유허비'가 세워져 있다. 하늘재 문경 구간은 정상 부근까지 도로가 나 있다.


하늘재 정상에서는 백두대간 포암산의 웅장한 바위봉우리가 병풍처럼 펼쳐진다.

하늘재 정상에서는 백두대간 포암산의 웅장한 바위봉우리가 병풍처럼 펼쳐진다.


정상에 산림청에서 세운 ‘백두대간 하늘재’ 비석과 문경시에서 세운 ‘계립령 유허비’가 마주보고 있어 잠시 헷갈린다. 계립령은 이곳 하늘재와 미륵대원에서 수안보면 소재지로 연결되는 지릅재, 제천 한수면으로 이어지는 닷돈재를 아우르는 개념이다. 하늘재를 넘더라도 남한강으로 이어지는 길이 만만치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하늘재 정상에서 왼편으로 오르면 포암산, 오른편으로 가면 부봉이다. 모두 해발 900m가 넘는 백두대간 산줄기다. 부봉으로 가는 등산로 초입의 계단을 오르면 커다란 바위를 품고 있는 포암산의 웅장한 자태가 한눈에 들어온다. 현재 문경에서 하늘재까지는 포장도로가 개설돼 있다. 옛길 모습은 미륵대원지에서 이곳까지만 온전히 남아 있는 셈이다. 걸어서 2㎞에 불과하지만 찻길로는 46㎞, 약 1시간 거리다.

미륵대원지 인근 만수계곡자연관찰로. 무장애 탐방로가 개설돼 있어서 편안하게 숲 산책을 즐길 수 있다.

미륵대원지 인근 만수계곡자연관찰로. 무장애 탐방로가 개설돼 있어서 편안하게 숲 산책을 즐길 수 있다.


미륵대원지에서 제천 방향으로 조금 이동하면 도로 바로 옆에 만수계곡이 있다. 월악산국립공원 포암산 자락의 작은 계곡이지만, 물과 공기가 맑아 한 바퀴 돌고 나면 장수를 누린다는 뜻에서 ‘만수(萬壽)’라는 지명이 붙었다. 등산로 초입에 개설된 ‘만수계곡자연관찰로’는 누구라도 부담 없이 걸을 수 있는 약 50분 코스 무장애 탐방로다. 작은 폭포와 울창한 숲이 어우러져 있어 하늘재 산책이 부담스러운 이들에게 훌륭한 대안이다.

작지만 꿈결 같은 풍경, 수주팔봉

최근 ‘차박 성지’로 널리 알려진 살미면 수주팔봉은 수안보에서 약 11㎞ 떨어져 있다. 수주팔봉을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물위에 선 여덟 봉우리’다. 남한강으로 흘러드는 달천 물길이 마을을 휘감아 돌고, 그 맞은편 바위 능선이 한 폭의 그림처럼 연결된 봉우리다. 봉우리 뒤편은 왕답마을인데 조선 철종이 꿈에 나타난 이 풍경을 보기 위해 직접 왕림했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수주팔봉의 끊어진 산허리에 최근 출렁다리가 놓였다. 마을 앞 백사장은 충주 상수원인 달천에서 유일하게 야영이 허가된 곳이다.

수주팔봉의 끊어진 산허리에 최근 출렁다리가 놓였다. 마을 앞 백사장은 충주 상수원인 달천에서 유일하게 야영이 허가된 곳이다.


팔봉마을에서 본 수주팔봉. 높지 않은 바위봉우리가 한 폭의 수묵화처럼 멋진 풍경을 자랑한다.

팔봉마을에서 본 수주팔봉. 높지 않은 바위봉우리가 한 폭의 수묵화처럼 멋진 풍경을 자랑한다.


마을 중앙의 팔봉서원에서 보면 낮지만 우람한 능선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팔봉서원은 조선 선조 때 건립됐고 현종이 사액했다. 삼정승을 두루 거친 노수신을 비롯해 이연경, 김세필 등의 위패를 모신 서원으로 대원군의 철폐령으로 사라졌다가 근래에 옛 모습으로 복원했다.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물가에서 잠시 벗어나 고요하게 수주팔봉을 바라보는 공간이다.

지금의 수주팔봉은 옛사람들이 본 그 모습이 아니다. 1960년대에 물이 들어찬 봉우리 반대편 땅을 농지로 활용하기 위해 산허리를 싹둑 잘랐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가슴 아픈 자연의 수난사지만, 덕분에 생긴 인공폭포로 수주팔봉의 명성은 크게 훼손되지 않았다. 최근엔 끊어진 능선을 출렁다리로 연결해 전화위복이 되고 있다. 주차장에서 계단을 오르면 한 농부가 부모의 은덕을 기리기 위해 지었다는 모원정이라는 정자가 있고, 출렁다리를 건너 능선을 따라 조금만 걸으면 전망대에 닿는다. 자갈과 모래가 섞인 넓은 백사장 뒤로 크게 곡선을 그리는 팔봉마을 전경이 아늑하면서도 여유롭게 보인다.

달천 물길이 크게 휘돌아가며 멋진 풍광을 빚은 수주팔봉. 백사장 차박으로 유명해진 곳으로 마을에도 글램핑 시설이 생겼다.

달천 물길이 크게 휘돌아가며 멋진 풍광을 빚은 수주팔봉. 백사장 차박으로 유명해진 곳으로 마을에도 글램핑 시설이 생겼다.


물맛이 달아 ‘감천(甘川)’ ‘달래강’이라 불리는 달천은 지금도 충주 시민의 식수원이자 달천평야를 적시는 충주의 젖줄이다. 전 구간이 상수원 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취사나 야영이 불가능하지만 유일하게 이곳만 개방하고 있다. 수주팔봉의 멋진 경치를 즐기는 것도 좋지만 환경보호에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할 곳이다. 5인 이상 집합금지가 시행 중인 현재 백사장 야영장은 일시적으로 폐쇄된 상태다.

충주=글?사진 최흥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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