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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의 大전략보다 小전략이 중요한 시대

입력
2021.02.02 18:50
26면

강대국 정권교체기 외교대전략 무용론
변화무쌍하고 긴급한 정세 대응에 한계
소전략 중심 기민한 외교 대응 강화해야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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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일 후 우리는 새로운 대통령을 선출한다. 누가 대통령이 되는가도 중요하지만 새로운 정부가 어떤 정책을 어떻게 실행하는가가 더 중요하다.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외교는 변화무쌍한 국제 정세에 대비해야 한다. 대선까지 각 대선캠프에서 만들어진 정책과 담론들은 2027년까지 5년간 한국의 외교 로드맵이 될 것이다. 인수위를 거쳐 정책 공약의 모태가 되는 캠프의 창조물은 사후 수정이 매우 어렵다. 집권 기간 동안 정책기조의 전면적 교체를 거부할 수밖에 없는 국내정치적 동학 때문이다. 결국 400일 동안의 노력이 예측 불가능한 5년을 좌우할 확률이 높다.

강대국들 역시 정권교체기에 다양한 중·장기 외교담론을 선보인다. 대표적인 경우가 미국 대선 후보들의 외교 대전략(grand strategy) 논쟁이다. 대전략은 군사용어지만 외교 부문에서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목적을 세우고 이를 현실화할 수단을 조응시키는 정책적 노력을 통칭한다. 변화하는 국제 정세를 정확하게 예측하고, 국민들이 합의할 수 있는 가치와 목적에 기반하고, 이를 뒷받침할 단단한 정부와 사회의 제도들이 갖추어질 때 가능한 일이다. 미국은 냉전기 공산권 봉쇄, 탈냉전기 자유주의 리더십 확립 등의 목적을 가지고 이론과 사실에 기반하여 국제사회를 설득할 수 있는 대전략을 제시해 왔다. 바이든 대통령은 작년 초부터 자신의 외교전략에 대한 전반적인 밑그림을 제시했다. 자유주의 국제 질서의 복원과 미국의 재건이다. 트럼프 대통령조차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구호를 국제사회에 깊이 각인시켰다.

우리도 대선 기간에 많은 정책 담론과 개념을 생산해낸다. 강대국은 엄청난 정책 자원과 영향력이 있기에 대전략을 밀어붙일 수 있는 추진력을 가진다. 중견국은 정책수단이 아무래도 부족하므로 정확하고 설득력 있는 정책을 생산해 승부해야 한다. 한국이 대선 때마다 동아시아 공동체에 관한 정책들을 내세우면 외국의 전문가들은 그러한 정책들을 뒷받침하는 이론과 사실의 기반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묻는다. 국내의 이념 경쟁과 국내정치 논리에 의해 급조되고 그나마 캠프들 간 서로 베끼기 경쟁으로 만들어진 정책 개념들은 머지않아 무력해진다. 5년의 로드맵이 되기는커녕 정책공약이라는 사실 때문에 실무 부서들의 힘만 빼기 일쑤이다. 대선 후보들이 캠프의 정책 내용에 충분히 공감하는가도 문제이다. 캠프 따로, 대선 후보의 생각 따로일 때, 대통령이 이해한 피상적 정책들만 살아남아 국내정치와 결합되기 때문이다.

트럼프 시대를 거친 미국에서는 '대전략의 종언'에 대한 논쟁이 활발하다. 국내정치가 둘로 쪼개지고, 미래 강대국들 간 세력 구도를 예측하기 어렵고, 코로나, 환경, 테러 등 전례가 없는 사태들이 국제정치에 난무하는 시대에서 대전략은 만들기도, 유지하기도 어렵다는 것이다. 어차피 대전략의 로드맵대로 되지 않을 바에야, 벌어지는 사태에 기민하게 대응할 수 있는 소전략의 대응팀이 더 중요하게 된다. 혁신기업들의 조직 개편과 같은 근본적인 정부 개편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다. 결국 어떤 정책이냐의 문제와 더불어 어떻게 정책을 추진하는가의 문제이다.

한국의 외교는 대통령과 청와대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의 통치 이념과 가치관이 외교의 지표가 되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대전략이 불가능해지는 시대, 모른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위협(unknown unknowns)이 도사리는 시대에 위계적 조직에 의한 외교는 성공하기 어렵다. 유통기한이 짧아져 가고 있는 대전략에 매달리기보다 기민한 소전략들을 만들고, 수평적 소통을 강화하는 정책인프라도 급선무다. 대선을 위해 급조되는 싱크탱크보다 평소 국내 전문가들의 역량을 모을 수 있는 정책 지식 인프라를 지원하는 것도 중요하다. 시대의 변화에 맞는 정부의 대응과 전문적인 정책 기반이 허약할 때, 대중에 호소하는 무의미한 포퓰리즘, 카리스마적 리더십이 외교를 압도하게 된다.



전재성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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